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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의 우담바라 '장생(長生)'

바둑에서 돌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집이 필요하다. 상대방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몰리는 쪽은 집을 만들려고 하고, 잡으려고 하는 쪽은 상대방 집을 없애려고 한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더 이상 서로 물러설 수 없을 때 장생은 등장한다. 말 그대로 오래 산다는 의미지만 바둑에서 통용되는 뜻은 조금 다르다. 같은 형태가 반복되면서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영원히 승부를 끝낼 없는 상태를 말한다.

주로 책으로 전해졌던 장생이 얼마 전 실전에서 등장했다. 지난 달 29일, 2013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최철한 9단과 안성준 4단과 대국에서 역사는 만들어졌다.

바둑판 좌측 상단에서 백이 흑을 잡기 위해 공격을 시작한다. 흑은 살기 위해 최선의 수로 대응한다. 그런데 모양이 이상하다. 같은 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흑도, 백도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바둑 규칙은 무승부를 선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1993년과 2009년 두 차례,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살아있는 기성(棋聖)’ 오청원 9단은 회고록에서 “장생은 백만판을 둔다고 해도 나타나기 어렵다. 만약 생긴다면 경사스러운 일로 팥밥을 지어 축하해야 할 일” 이라고 적었다. 그만큼 드문 일이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징조로 여겨진다.

생전 만나보기 어렵다는 장생. 재밌는 건 장생의 역사적 출현은 흑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백이 흑을 잡으러 왔을 때, 다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신의 한수를 추구하는 프로바둑 기사들도 제한시간 때문에 모든 수를 다 생각할 수 없다. 순간의 선택이 기묘한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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