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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우편함에 꽂힌 내 TMI…그게 최선입니까?

[인-잇] 우편함에 꽂힌 내 TMI…그게 최선입니까?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뉴스

작성 2020.09.16 11:15 수정 2020.09.16 14:3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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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우편함에 꽂힌 내 TMI…그게 최선입니까?
​얼토당토않은 일로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는 분을 조력한 일이 있었다. 경찰에 출석해서 수사를 받는 일까지는 그래도 참으셨는데, '사건처리결과 통지' 우편이 문제였다. 경찰 수사 결과를 우편으로 받아 본 그분의 어머니가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것이다. 분노를 내뿜는 그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내가 조력을 잘 못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경찰 수사 결과가 집으로 통보될 것이라는 말을 미처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근 필자는 피의자가 되는 경험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수사가 다 끝난 이후 해 볼 기회를 가지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경찰의 '사건처리결과 통지'에 대한 이야기만 먼저 해보려고 한다.

** 인-잇 편집자 주 : 최정규 변호사는 2018년 발생한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피의자를 변호하며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 정황이 담긴 영상을 모자이크나 변조 없이 언론에 제보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 '사건처리결과 통지'라는 편지가 준 무시무시한 공포

지난주 우리 집 우편함에는 9월 3일 제작된 서울 영등포경찰서장 명의의 편지 한 통이 꽂혔다. 경찰청 마크까지 선명히 찍혀 있는 편지 한 통. 그건 바로 '사건처리결과 통지', 최근 고소를 당해 수사를 받은 사건의 처리 결과를 알려주는 편지였다. 이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의도는 사건 처리 결과를 경찰서에 연락해 확인하는 수고를 덜어주려는 친절한 서비스의 하나로 도입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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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제도는 원래 의도와는 달리 당사자인 나에게는 매우 불쾌함을 주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검찰청에 송치했다는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이미 통보받았고, 수사관에게 연락하여 그 결과도 확인했는데,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결과 통지서가 등기우편도 아닌 일반우편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집으로 배달되는 '성적표', 불합격 통지서', '건강검진 결과' 등. 가족과도 그 내용을 공유하고 싶지 않아 내가 가장 먼저 우편함에서 발견하고 싶은 편지들, 그래서 그 편지가 올 것 같은 날엔 우편함 앞에서 언제 도착할지 모를 우체부 아저씨를 마냥 기다렸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늘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 따르는 건 아니다. 이번에도 그런 행운은 나에게 없었다. 그 편지가 우체통에 꽂혔을 때 나는 사무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아내였다. 다행히 충격을 받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리 경찰 수사 과정과 결과를 아내와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내로부터 건네받은 편지에는 내가 무슨 죄명으로 조사받고, 어떤 의견으로 송치되었는지에 대한 내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다 적혀 있었다. 등기우편도 아닌 일반우편으로 보내진 이 편지가 우체통에 꽂아 놓은 분들의 사소한 실수로 옆집에 꽂혀 있고, 옆집 아이가 자기 집에 온 편지라 생각하고 그냥 뜯어봤다면 내 개인정보는 그대로 옆집 사람들에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옆집 사람들을 비밀침해죄로 처벌해달라고 할 수도 없을 노릇이다.

다음 날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옆집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인사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혹시 옆집 아이가 우편함을 착각해 편지를 열어 본 것은 아닐까? 아니 뜯어보지는 않았더라도 발신인 란에 커다랗게 그려진 경찰 마크를 보고 나를 경계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나의 이런 상상은 내가 요즘 예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로소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경찰이 일반우편으로 보내주는 '사건처리결과 통지'는 과연 친절한 행정 서비스일까?"


■ 친절한 행정 서비스? 또는 불필요한 개인정보 침해?

당사자가 문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일정 기한 내에 의견을 보내야 하는 이유로, 관공서에서 보내는 통지서는 불가피하게 당사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송달되어야 한다. 법원에서 보내는 재판 관련 우편물이 그렇고 검찰청에서 사건 관계자에게 보내주는 통지서도 그렇다. 그 문서를 송달받은 날을 기준으로 권리행사 마감 기한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보내주는 사건처리결과 통지는 앞에서 설명한 공문서와 다르다. 그저 결과를 알려주는 것일 뿐 통지서를 제대로 받거나 받지 않거나 법적 효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하니 등기우편도 아닌 일반우편으로 발송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직접 통지 방법을 선택하도록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수령지를 사무실로 바꿔도 된다. 굳이 당사자가 모든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고도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전달받아야 할 내용이 아니다.

관공서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시민들에게는 친절한 서비스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폭력처럼 느껴질 수 있다. 수사 관련 사건 당사자에게 일반우편으로 보내는 사건처리결과 통지 제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의 '국민제안'을 통해 경찰청에 제도 개선을 공개 제안했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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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겪어 보니 알게 된 '피의자의 권리'

법관들이 사법농단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으면서 비로소 형사사법 체계가 피의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지를 알았다고 한다. 어떤 의사는 자기가 아파 수술을 받기 전 주치의가 수술 중 발생하는 상황들(죽을 수도 있음도 포함)이 깨알처럼 적혀 있는 수술 동의서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하는 순간이 너무나 공포스러웠다고 고백하며 자기가 환자들에게 무감각하게 전달한 무수한 공포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넓이와 깊이만큼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처음 이야기한 의뢰인이 겪은 일을 통해서 보이지 않았던 '피의자의 인권.' 내가 경찰서에서 조사받은 사실과 그 결과, 그리고 소중한 개인정보가 내 가족과 이웃에게 알려질까 두려운 결과 통지서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호받을 권리'가 내가 피의자가 되어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깨달음이 다른 법 위반도 아닌 바로 '개인정보호보호법' 위반 사건으로 고소되어 조사받는 과정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얻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도종환 시인의 시에 적힌 시구가 떠오른다.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 편집자 주 : 최정규 변호사는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사건 △성추행·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노동자 사건 △신안 염전 노예 사건 등의 변호를 맡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인잇 네임카드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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