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불법촬영범 4분의 1이 재판도 안 받는 이유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②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20.05.17 09:00 수정 2020.05.18 11: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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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마부작침] 불법촬영범 4분의 1이 재판도 안 받는 이유
"여자화장실을 몰래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에게 처음으로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법원은 영화관 화장실에 침입,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이 구형된 피고인(32, 회사원)에게 형법상 건조물침입과 방실침입죄를 적용,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1998년 6월 10일, 매일경제 31면에 실린 기사다. 기자는 "몰래 촬영에 유죄가 인정된 첫 사례"라고 적었다. 해당하는 법이 없어 '불법'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그해 12월 2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14조 2항 (카메라등 이용촬영)이 신설되면서 비로소 '불법 촬영'이 됐다.

그로부터 20여 년, 불법촬영(카메라등이용촬영 죄) 범죄는 전체 성폭력 범죄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2018년엔 불법촬영 편파 수사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가 6차례 벌어졌고 이를 전후해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방지 대책과 근절 성명을 발표했다.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고 공유하는 '웹하드 카르텔' 사건이 터졌고 가수 정준영 씨 등 연예인의 불법촬영과 유포·집단 성폭행 사건도 발생했다. 그리고 갓갓, 박사, 왓치맨 등이 주도한 이른바 'n번방', 집단 성착취 사건까지 상상 그 이상의 성범죄가 폭로됐다. 정부는 또다시 디지털 성범죄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쌓여왔던 문제가 이제 곪아 터지는 과정인 걸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일까.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불법촬영 범죄를 분석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공분이 모아졌는데, 우리 법원의 판결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요 분석 대상은 2019년 한 해 동안 서울 지역 5개 법원에서 선고된 불법촬영 사건 1심 판결문 413건(피고인 419명)이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 불법촬영은 했지만 재판 안 받는 그들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불법촬영 혐의로 붙잡힌 한 피의자의 불기소 결정서다. 결정서에 따르면 검찰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피해자의 치마 속을 촬영"했다는 피의사실은 인정되나 초범에, 피해자와 합의했고, 잘못을 반성하며 성폭력 재범 방지 교육에 성실히 임할 것을 다짐했다는 이유로 기소를 유예했다.

기소 유예란 국가를 대신해 재판에 회부하는 공소권을 가진 검사가 기소, 즉 재판에 넘기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죄는 인정되나 재판 회부는 보류한다는 뜻. 기소가 유예되면 재판도 없다. 따라서 징역이든 벌금이든 아무것도 없다. 형사소송법 247조(기소편의주의)에 따라 검사는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에 따라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불법촬영 범죄는 지난 기사에서 살펴봤듯 2014년 이후 크게 늘어났고 이에 대한 선고 형량도 어느 정도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재판 받은 자들에 대한 얘기다.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0년 검찰청에 접수된 불법촬영 사건 666건 가운데 484건을 기소해 기소율 72.7%였다. 그런데 이 기소율, 차츰 낮아진다. 2015년에 이르면 접수 사건은 5,101건인데 기소는 1,596건, 기소율 31.3%를 기록했다. 2010년에 비해 사건은 8배 넘게 늘었는데 기소율은 반 토막 난 것이다. 2017년 이후 다시 40%대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절반은 기소하지 않고 있다.

불기소 처분엔 기소유예만 아니라 '혐의없음'도 있다. 경찰이 불법촬영 죄로 입건해 송치했으나 검사가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없음' 판단하는 경우도 있어 이를 제외하고 보면 2017년 기소유예 비율은 31.1%, 2018년은 21.7%였다. 기소유예는 죄가 인정됐으나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불법촬영범 10명 중 2명은 죄는 인정됐지만 재판 없이, 아무런 처벌 없이 풀려난 셈이다.

● 불법촬영 -> 인터넷 상담 -> 변호사 조력.. 시스템 갖춰져

"단순 호기심과 순간 충동이었다"
"평생을 바르게 살다가 인생이 끝난 건가 싶어 두렵다"
"실형이라도 나오면 너무 가혹할 것 같아 걱정된다"
"공무원 준비 중인데 임용이 배제되나?"
"벌금이 너무 많이 나왔는데 깎일 수 있을까?"
"피해자와 100~150만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없을까?"...


한 인터넷 법률상담 사이트에 올라온 불법촬영 범죄 상담 내용 중 일부를 모은 것이다. 올해 게시된 상담글만 2백여 건에 이를 정도로 많다. "미성년자인데 선행상과 장학금 받으면서 착실하게 살았다", "17살인데 부모님도 알고 있다", "중3이고 화장실에서 찍다 걸려서 도망쳤다", "고등학생으로 여학생 다리를 찍다가 들켰다"처럼 10대의 상담글도 적지 않았다.

10년 전 한 포털 사이트에 만들어진 '성범죄 지식 공유' 인터넷 카페는 회원 수만 2만 5천 명에 이르고 하루에 백여 건 넘는 글이 작성될 정도로 회원 활동이 활발하다. 운영 주체는 로펌이다. 불법촬영를 비롯한 성범죄 자체가 늘다 보니, 적발된 이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상담하고 과거 사례를 찾아보고 또 곧바로 변호사와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이 로펌의 정이훈 변호사는 "하루에 보통 2-3건 정도 상담한다"면서 "디지털 성범죄는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행위를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형량이 어떨지 궁금해 하는 가해자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또 "예전엔 혼자 가서 조사 받았는데 요즘엔 경찰 단계부터 변호인이 대동하는 사례가 많다"라고 전했다.

헌법에 따라 누구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자기가 지은 죄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 상황은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피하는 게 맞다. 문제는 불법촬영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기소와 양형이 범죄의 특성에 맞게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물망이 성기다 보니 이를 빠져나갈 틈새를 조언하는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 형사처벌 전력 없다며 감경... 또 불법촬영으로 이어져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2014년부터 5년에 걸쳐 버스정류장·지하철 등에서 35회 불법촬영을 해온 피고인, 서울 서부지법은 지난해 7월 그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과거 형사처벌 전력이 없었다는 점이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됐다. 그런데 이 피고인은 이미 같은 범죄로 붙잡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일이 있었다. 처분 이후에도 계속 범행하다 다시 체포됐는데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며 감경받은 것이다.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9년 판결문의 피고인 282명은 이처럼 형사처벌 전력 없는 점이 양형의 감경 사유로 반영됐다. 하지만 실제는 재범과 다름 없는 경우가 19명(6.7%)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에 실형이 선고된 건 단 2명뿐이었고, 13명은 징역의 집행유예, 4명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재범률이 75%에 이를 정도로 높은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이 기소와 양형에 잘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정이훈 변호사(성범죄 전문)는 "기소유예 등으로 형벌을 직접 받지 않으면 또 해도 되나 하고 착각하는 범죄자들이 늘고 있다"면서 "디지털 성범죄는 재범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위험성을 면밀히 따져 봐서 처분을 좀 신중하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폭력 검찰통계 분석2> 보고서는 대검찰청 협조를 받아 2018년 불법촬영 피의자 4,948명 자료를 분석했는데 절반인 2,561명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1,211명, 24.5%다. 보고서는 "피해 부위가 성관계 영상이고, 유포매체가 피해가 광범위하게 커질 수 있는 웹하드·불법포르노 사이트에 유포한 경우이고, 촬영횟수가 100회 이상, 유포횟수가 100회 이상임에도 기소유예나 혐의없음으로 불기소한 경우가 있었다"면서 "기소/불기소에 대한 명확하고 엄격한 기준이 절실하다"라고 지적했다.

①번 기사: [마부작침] '불법촬영범 10명 중 9명은 집으로…국민은 성큼, 판결은 제자리' 보기

[좀더갈자] 합의가 불가능한 범죄… 양형은 어떻게?

2016년부터 2년에 걸쳐 기차역과 지하철, 버스 등에서 23회 불법촬영하고 촬영한 사진을 음란사이트에 게시한 피고인. 지난해 4월 서울 동부지법은 그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같은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벌금형에 그쳤는데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가 1명도 없었다. 모두 '성명불상'이었다.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 중 하나는 불특정 피해자, 즉 '성명불상'이 많다는 점이다. 마부작침의 2018년 판결문 분석에서는 성명불상 피해자가 포함된 판결이 54.2%였는데 2019년 분석에서도 50.8%로 절반이 넘었다. 특정 피해자를 노리기보다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범행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수십, 수백 명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런 점이 판결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 피해자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게 피해자가 없는 것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성명불상' 포함 판결문의 실형 비율은 11.7%로 전체 실형 비율 12.2%와 큰 차이가 없고 집행유예는 53.9%로 전체 49.2%보다 약간 높은 정도다. 벌금 또한 33.8%로 비슷했다.(전체 36.8%) 평균 형량도 대동소이했다.

판결문 중에는 다수의 성명불상 피해자를 대상으로 범행하다 최종 피해자가 알아채고 신고하면서 범행이 중단된 경우가 적지 않다. 신원이 확인된 단 1명의 피해자와 합의했다고 해서, 그외 성명불상 피해자와는 누구와도 합의할 수 없었는데도 형을 감경받는 판결, 2018년에도 2019년에도 많았다.

● 오는 8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확정한다는데...

범죄 정도에 비해 가벼운 처벌, 혹은 들쑥날쑥한 양형은 결국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을 반영한 양형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지난해 5월 출범한 7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년 임기의 전반기에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하기로 결정하고 추진해 왔다. 6월 22일, 위원회 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관계기관과 각계각층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8월 확정된 양형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양형기준이 마련되면 관련 법이 바뀌지 않더라도 형량이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과거 성폭행이나 강제추행도, 양형기준이 생기자 법정형은 그대로인데도 선고형량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양형위원회은 지난 4월 20일 회의에서 "기존 판결례는 물론, 법정형이 동일·유사한 다른 범죄에서 권고되는 형량 범위보다 높은 양형을 권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유승진 사무국장은 "뭐니뭐니 해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으니까 저희는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양형기준이 잘 세워져서 새로 만들어질 법들이 살아있는 법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는 하나의 예방책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인 김영미 변호사는 양형기준에 대한 기대와 함께 "수사기관이나 판사들이 최근 사태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가 정말 성폭행 못지 않게 큰 피해를 줄 수 있구나 하고 본격 자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앞으로 판결에 인식의 변화가 반영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전망했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의 김한균 연구위원은 "양형기준은 1심 법원의 양형 자료를 기초로 편차를 줄이기 위해서 만든 거라 새로운 범죄 현상에 대응하기도 어렵고 디지털 성범죄에 더 높게 정당한 처벌 하라는 것을 반영하기 어렵다"면서 "법관들의 양형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겠냐는 부분에 의문이 간다"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또 "이번 양형기준은 최근 상황을 반영한 게 아니라 위원회 일정에 맞춰서 준비 중인 건데 과연 국민 기대에 맞을까 의문"이라며 "기대에 못 미치면 양형기준 수정을 바로 시작해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취재: 심영구 디자인: 안준석 인턴: 이유민, 이승우   

▶ [마부작침] 불법촬영범 10명 중 9명은 집으로…국민은 성큼, 판결은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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