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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불법촬영범 10명 중 9명은 집으로…국민은 성큼, 판결은 제자리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①

[마부작침] 불법촬영범 10명 중 9명은 집으로…국민은 성큼, 판결은 제자리
"여자화장실을 몰래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에게 처음으로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법원은 영화관 화장실에 침입,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이 구형된 피고인(32, 회사원)에게 형법상 건조물침입과 방실침입죄를 적용,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1998년 6월 10일, 매일경제신문 31면에 실린 기사다. 기자는 "몰래 촬영에 유죄가 인정된 첫 사례"라고 적었다. 해당하는 법이 없어 '불법'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그해 12월 2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14조 2항 (카메라등 이용촬영)이 신설되면서 비로소 '불법 촬영'이 됐다.

그로부터 20여 년, 불법촬영(카메라등이용촬영) 범죄는 전체 성폭력 범죄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2018년엔 불법촬영 편파 수사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가 6차례 벌어졌고 이를 전후해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방지 대책과 근절 성명을 발표했다.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고 공유하는 '웹하드 카르텔' 사건이 터졌고 가수 정준영 씨 등 연예인의 불법촬영과 유포·집단 성폭행 사건도 발생했다. 그리고 갓갓, 박사, 왓치맨 등이 주도한 이른바 'n번방', 집단 성착취 사건까지 상상 그 이상의 성범죄가 폭로됐다. 정부는 또다시 디지털 성범죄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쌓여왔던 문제가 이제 곪아 터지는 과정인 걸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일까.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불법촬영 범죄를 분석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공분이 모아졌는데, 우리 법원의 판결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요 분석 대상은 2019년 한 해 동안 서울 지역 5개 법원에서 선고된 불법촬영 사건 1심 판결문 413건(피고인 419명)이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 불법촬영범 10명 중 9명은 집으로

그의 첫 범행은 2012년 5월이었다. 밤 9시쯤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옆칸 여성이 용변 보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동영상 촬영했다. 마지막 범행은 6년 뒤인 2018년 4월 22일, 새벽 5시쯤 역시 여자화장실에서 용변 보던 여성을 몰래 촬영했다. 그렇게 공소장에 담긴 범행만 139회, 무려 2천 일에 걸친 불법촬영이었다.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그는 2015년 같은 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번 판결에 나온 범행 기간에 받은 처분이었다. 기소를 면하고도 범죄 행각은 멈추지 않았던 이 피고인에게 법원이 내린 선고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촬영된 영상이 다른 곳에 유포되지 않았다는 게 주요 감경 사유였다.

마부작침 분석 결과, 2019년 불법촬영 사건에서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가장 많이 선고됐다. 전체 판결의 49.2%, 절반에 해당했다. 다음은 36.8%인 벌금이었다. 징역형 실형은 12.2%. 실형을 제외한 나머지를 합하면 87.8%다. 대략 불법촬영으로 재판 받은 10명 중 9명 정도는 재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평균 형량은 실형 13.3개월(1년 1개월), 벌금은 435만 원이었다. 집행유예는 평균 징역 8.7개월에 집행유예 24.9개월이었다.

● 2%p만큼의 진전!

전보다 나아졌을까, 아니면 나빠졌을까. 마부작침이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을 같은 기준으로 분석했을 때는 벌금형이 가장 많았다. 46.8%, 절반에 육박했다. 다음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40.7%, 실형은 10.0%였다. 2019년 분석과 비교해 보면 벌금형이 줄어든 만큼 징역형이 늘어났는데 대부분 집행유예가 된 셈이다. 그중에서 실형의 비중은 2.2%p 증가했다.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①
한국여성변호사회와 여성정책연구원은 각각 2011~2016년, 2017년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을 수집해 분석한 바 있다. 마부작침 분석과 함께 견줘보면 5%대에 불과했던 실형 비중이 10%대로 커졌고 72.0%에 이르렀던 벌금형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도 15% 남짓에서 49.2%로 크게 늘어났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특히 법원이 불법촬영을 무겁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 2019년 불법촬영 검거 5,881명.. 전체 성범죄의 18.4%

서두에 언급했듯 불법촬영을 처벌하는 법이 처음 만들어진 게 1998년 12월이다. 법 제정 전 '첫 유죄' 사례로 신문에 실린 32세 회사원은 일본에서 가져온 카메라 장비를 몰래 촬영에 사용했다고 한다. 공식 집계된 불법촬영범은 스마트폰 대중화와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2012년 2천 명대였던 불법촬영범, 2013년엔 5천 명에 육박했고 그 뒤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6천 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에서 불법촬영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2014년 20%대를 넘어섰는데 2019년엔 조금 줄어 18.4%였다. 감소하는 추세라지만 최근 수년 새 불법촬영을 비롯한 성범죄에 관심이 쏠린 데 비하면 더딘 감이 있다. 왜 그런 것일까.

● 4명 중 3명은 다시 범행... 재범률 75%

한 가지 설명은 불법촬영은 재범률이 특히 높다는 점이다. 즉, 한 번 저지르면 같은 범죄를 또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법무부의 <2020 성범죄 백서>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가운데 불법촬영의 재범률이 가장 높아 75.0%나 됐다. 4명 중 3명은 또 범행한다는 뜻이다. 그다음으로 높은 건 강제추행으로 70.3%, 다음은 통신매체이용음란 48.2%, 성매수 38.2%, 성폭행은 32.3% 순이었다.

마부작침의 2019 분석에서 불법촬영 재범으로 추정되는 피고인은 82명이다. 이들이 선고받은 형은 징역형 실형 27명(32.9%), 집행유예 39명(47.6%), 벌금 16명(19.5%)이었다. 평균 형량은 실형 13개월(1년 1개월), 벌금 484만 원으로 전체 평균 형량과 유사하다. 전체 형의 분포에 비하면 벌금 비중이 낮고 실형 비중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재범을 막을 정도로 높은 것 같진 않다.

● 피고인 86%에게 있는 형 감경 사유

또 다른 설명은 형량에 반영되는 가중·감경 사유다. 판사는 피고인의 형을 정할 때 책임을 증가시키는 가중 사유와 책임을 감소시키는 감경 사유가 뭐가 있는지 따진다.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2019년 불법촬영 판결문에 반영된 감경 사유에서는 "잘못 반성하거나 범행 인정"이 가장 많았다. 피고인 333명(79.5%)이 해당했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며 형을 깎아준 것이다. 다음은 "불법촬영 관련 전과 없음", 282명(67.3%)의 판결문에서 언급됐다. "피해자와 합의"가 105명(49.3%)으로 뒤를 이었다.

잘못을 반성하면서 전과 없는 경우, 즉 상위 2개의 감경 사유가 함께 반영된 건 256명(61.1%)이었고 상위 3개가 함께 반영된 건 76명(18.1%)였다. 감경 사유가 단 하나도 없었던 건 58명(13.8%)뿐이었다. 이들을 제외한 361명(86.2%), 즉 불법촬영범 10명 중 9명가량은 어떤 이유로든 형을 감경받았다.
판결문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반면 가중 사유 중에 가장 많은 건 "죄질이 좋지 않음"으로 253명(60.4%)의 판결문에서 언급됐다. "피해자의 고통이 크거나 충격이 심하다"가 110명(26.3%), 불법촬영 전과가 있는 건 82명(19.6%)였다. 상위 2개의 가중 사유가 반영된 건 95명(22.7%), 상위 3개가 함께 반영된 건 15명(3.6%)이었다. 역시 반대로 가중 사유가 단 하나도 없는 건 113명(27.0%)이었다. 4명 중 1명은 형이 깎이기만 했을 뿐 가중되진 않았다는 말이다.

● "디지털 성범죄에 말도 안 되는 감경을 해왔다"

불법촬영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대체로 가중 사유보다는 감경 사유가 많이 반영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불법촬영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에 적용하는 양형 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성폭력 범죄의 양형 기준을 가져다 준용하고 있으니,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2018년 분석과도 달라지지 않은 점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유승진 사무국장은 "가해자들에게 엄벌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디지털 성범죄 규모가 커지지 않았을 텐 데 초범이라서, 반성을 해서, 피해자와 사귀던 관계라서, 합의했다는 이유 만으로 (판사들이) 말도 안 되는 감경을 해왔다"라고 지적했다. 유 사무국장은 또 "불법촬영은 온라인 유포를 통해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성을 고려해서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며 "판사들이 좀 더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취재: 심영구 디자인: 안준석 인턴: 이유민, 이승우

▶ [마부작침] 불법촬영범 4분의 1이 재판도 안 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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