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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경제] "기름 사면 돈 드립니다" 대체 무슨 일?

[친절한 경제] "기름 사면 돈 드립니다" 대체 무슨 일?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20.04.22 10:16 수정 2020.04.23 10:4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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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권애리 기자의 친절한 경제 시작합니다. 권 기자, 밤사이 국제유가가 또 폭락했어요. 어제(21일)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가격까지 보이면서 웃돈을 얹어줘야 기름을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좀 알려주시죠.

<기자>

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기존의 경제위기들과 다른 특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마이너스도 아니고 그 직전에 배럴당, 리터로는 158.9리터당 18달러에서 마감됐던 가격이 미국 시간으로 20일에 마이너스 38달러로 하루 만에 56달러가 떨어졌죠.

원유 158.9리터를 팔려면 기름과 함께 38달러를 얹어서 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상황은 사실상 원유를 팔았다기보다는 '나 이 기름 버려야 되는데 어디다 버리지? 이것 좀 처리해 주세요.' 처리해준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내가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이 원유 158.9리터당 38달러까지 치솟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앵커>

네, 대충 무슨 얘기인지 감은 오는데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코너 이름답게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면 좋겠네요.

<기자>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한창인 세상이 기름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 매일 "원유가 얼마에 거래됐습니다" 할 때의 그 거래는 진짜 기름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은 다음 달에 이만큼의 기름을 가져간다는 권리를 미리 사는 것입니다.

이 권리를 미리 사는 사람들, 원유시장의 선물 트레이더들은 아주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자기 창고가 없는 유통업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들은 보통은 기름을 직접 볼 일도 없습니다.

미리 사놓은 미래의 기름에 대한 권리를 원유가 실제로 필요한 정유사에 넘기면서 돈을 버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 권리를 받겠다는 데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정유사들도 이미 막대한 양의 사놓은 원유를 그냥 쌓아놓거나 사실상 손해를 보면서 휘발유로 만들고 있거든요.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나는 수준입니다.

최근에 원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20달러 선에서 오르내렸죠. 그런데 전에 훨씬 더 비쌀 때 사서 운반해서 휘발유로 만들고 있자니 국제시장에서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16~2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친절한 경제] '기름 안 쓴다'…원유보다 싸진 휘발윳값
밀가루는 150원쯤 하다 100원이 됐는데, 150원 때 들여놨던 밀가루로 각종 비용을 더 들여서 만들고 있는 빵값이 90원쯤 하고 있는 시장인 것입니다. 빵을 먹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요.

비행기도 안 뜨고, 배도 안 다니고, 미국과 유럽은 셧다운 상태죠. 다들 집에 있습니다. 차도 안 다닙니다.

이런 상황에 미리 5월 기름에 대한 권리를 사놓은 사람한테 창고도 없고 유조차도 없는데 산지에서 독촉까지 옵니다.

"약속한 대로 기름을 가져가달라, 우리도 더 둘 데가 없어서 사정을 봐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입니다.

미국 시간으로 21일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 WTI 5월물의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 어제 그 대혼란장이 펼쳐진 것입니다.

<앵커>

그래서 이 5월분 권리, 5월분을 살 권리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선물 만기일에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팔자, 이렇게 나선 것이군요?

<기자>

사놓은 선물에 대한 권리를 던지거나 마찬가지인 것이죠. 그래서 하루 만에 원유 1배럴당 가격이 56달러나 곤두박질치면서 마이너스로 깊숙이 진입하는 그야말로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코로나19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다시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일단 오늘부터는 두 달 뒤 기름 6월물에 대한 권리가 훨씬 더 많이 거래되고 있습니다만, 사실상 매수를 꺼리는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6월물도 배럴당 11달러 선에서 거래를 마쳤습니다. 원유 1리터로 치면 1리터당 100원이 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요즘 기름값이 물값보다 싸다는 비유를 많이들 하는데, 그 비유를 하기도 무색한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7월물, 12월물 먼 미래의 원유에 대한 권리일수록 값은 조금은 더 높습니다. 이런 것을 '콘탱고' 현상이라고 합니다.

[친절한 경제] '기름 안 쓴다'…원유보다 싸진 휘발윳값
12월쯤에는 그래도 코로나19가 해결돼 있겠지, 그때는 기름을 달라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지금 권리를 확보해 놔야지 이런 기대인 것이죠.

그런데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어제 같은 일이 또 생길 수도 있습니다. 기름시장 상황은 앞으로도 종종 전해 드려야 할 것으로 보이고요.

사실 최근에 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 말고 가장 화제였던 것은 원유에 투자하는 파생상품들이었습니다.

주식값이 급락할 때 삼성전자에 몰린 것처럼 기름값이 급락하니까 '지금 투자해야 이익이 크겠지' 몰린 것이죠.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개인 투자자들이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해 왔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손실을 회복하기 힘든 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품들에는 단순히 나는 '저가 매수'하는 거야 라고 뛰어들기에는 좀 더 복잡한 조건들이 붙어 있거든요.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투자하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가격이 급락한 자산들이 보인다고 미래를 약간 공격적으로 점치면서 투자한다면 사실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투자는 각자 하는 것이지만 신중한 것이 좋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네, 그만큼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 이렇게 보면 되는 것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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