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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2019 예산, 국회는 이렇게 심사했다

2019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마침] 2019 예산, 국회는 이렇게 심사했다
◎ 왜 또 '국회 예산 심사'인가

'혈세'(血稅). 세금은 피처럼 소중하다 하여 흔히 '혈세'라 부른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세 수입은 약 280조 원, 소득 대비 세금 비율인 '조세부담률'은 20% 정도다.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 세수를 바탕으로 정부는 매년 지출 계획을 짜고 헌법 54조에 따라 국회 심의를 받는다. 이 국회 심의가 매년 11월이면 기사가 쏟아지는 '새해 예산안 심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예산은 성실하게 일한 국민과 기업이 빚어낸 결실입니다. 정직하게 세금을 납부해 주신 국민과 기업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그 결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가 세금을 허투루 쓰려고 하진 않았는지, 우선순위에 맞게 예산 편성을 했는지 잘 살펴보고 조정하는 건 국회의 책무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지난해(2018년) 1월, 국회의 2018 예산회의록을 분석해 보도했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특정지역만을 위한 사업 예산을 새로 배정받거나 때로는 법과 예산 편성 원칙을 어기면서, 혹은 편성해도 사용할 수 없다는데도, 어떤 경우엔 논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심사했다는 점을 확인해 지적했다.

그로부터 1년, 여느 해처럼 국회 심사를 거쳐 새해 예산이 확정됐다. [마부작침]은 이번에도 국회의 예산회의록을 살펴봤다. 1년 전과 같은 기준으로, 국회 각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 내역을, 전체 회의록 5,453페이지를 근거로 분석했다. 그리고 질문을 또 던진다.

"의원님, 이번에는 예산 심사 제대로 하셨습니까?"

어떤 답이 돌아왔을까.

● 469.6조 원 '슈퍼예산'…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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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8일, 2019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확정됐다. 법으로 정한 시한을 엿새 경과한 뒤였다. 2019 예산의 총 규모는 469조 6천억 원이다. 정부 제출 예산안에서 5.2조 원 감액했고, 국회에서 4.3조 원 증액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국회 심의를 거쳐 정부 예산안에서 0.9조 원 순감했다.

그럼에도 2018년 본예산 총지출보다 2019년 예산은 40.7조 원, 9.5%가 늘어났다. 역대 최대 '슈퍼 예산'이라고 불릴 법하다. 2018년 예산과 비교해 금액으로 가장 많이 늘어난 분야는 사회복지로 15.1조 원, 11.3%가 늘었다. 산업·중소·에너지 분야는 전년 대비 15.4% 증가해(2.5조 원) 증가율이 가장 컸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 처음으로 예산 규모가 300조 원을 돌파했는데, 그로부터 6년 만인 2017년 400조 원을 넘어섰고, 2019년엔 약 470조 원에 이르렀다. 이 추세대로면 2021년 이후엔 500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해 12월, 2019 예산안 통과 뒤 낸 보고서에서 "국회 감액 사업의 실제 내용을 분석해보면 불요불급한 부분을 삭감하는 실질적 감액보다 회계적인 숫자만 감액한 부분이 많고 증액은 지역구 SOC 위주의 실질적인 증액"이라며 "국회에서 정부 예산안을 감액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통계적 착시 효과일 수 있다"라고 국회 예산심사 결과의 맹점을 지적했다.

● 국회 예산 심사 중 발언 빈도 1위 단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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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클라우드(Word Cloud)는 단어를 시각화하는 기법이다. 워드클라우드 방식으로 2019 예산회의록 중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예산안등조정소위 회의록 1,773페이지를 분석했다. 위 그래픽은 가장 빈번하게 쓰인 단어 상위 50개를 빈도 수에 따라 크기로 표현한 것이다.(사람 이름과 조사 제외)

2019년 압도적인 언급 수 1위는 '일자리'였다. 고용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 새해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산회의록에도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일자리'는 2018 예산회의록에서도 많이 언급됐지만(501회) 2019년 회의록에서 2.5배 이상 언급 횟수가 늘었다.(1,318회) 2018 회의록 최다언급 단어였던 '공무원', '최저임금', '일자리' 중에서 '일자리'만 크게 증가했다.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화해와 협력 분위기 덕분에 2018년 회의록에 없던 '남북협력기금', '남북관계', '판문점' 등이 새롭게 50위권에 진입했다. '미세먼지', '원자력', '태양광', '유치원'도 2019년 회의록에선 언급 빈도가 높은 편이었다.

● '국회발 신규사업'은 왜 끊이지 않나
마부작침_회의록
야당 의원이 산업단지 폐수를 재이용할 수 있는 방안 연구에 20억 원 예산이 필요하다고 요구했고, 정부도 동의했다. 정부예산안에는 빠져 있었지만 국회의원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예산 심사 단계에서 추가하는 '국회발 신규사업'에 예산이 편성되는 통상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회의에서 의원들 반응은 위와 같았다. 야당 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선 이후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 당적의 구미시장이 나온 것과 구미 지역 신규사업의 예산 반영이 관련 있다고 주장하고 정부 대표와 여당 의원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 요청보다는 조금 줄어 10억 원의 예산이 확정됐다.
마부작침 예산
필요한 모든 곳에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면 최선이다. 하지만 재원은 한정돼 있고 예산을 원하는 곳은 많기에 정부는 언제 어디에 먼저 예산을 투입할지 순위를 정하고 계획을 세운다. 위 사업에 대한 정부 입장은, 아직 두 공항의 통합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라 당장 활주로 연장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소위원회보다 더 적은 인원(통상 여야 간사와 위원장, 정부 대표 등)이 모여 논의하는 '소소위원회'에서도 정부 의견대로 하자고 결론 내렸지만, 한 의원이 반발하자 소위원장은 기본계획 비용만 반영하자고 정리했다. 그렇게 확정된 금액이 5억 원. 반발했던 의원은 무안공항과 인접한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을 지역구로 한 윤영일 의원(민주평화당)이다.

위의 두 사업 모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9 예산안엔 없던 사업이었다. 국회에서 필요하다며 추가한 사업, '국회발 신규사업'이다. 2019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국회가 추가 편성시킨 신규사업은 453개다. 편성 확정된 것만 그렇고 정부 동의를 받지 못했거나 국회 심사에서 제외한 것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신규사업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꼭 필요한 사업인데도 정부가 간과해 예산안에서 누락했다면 국회가 이를 보완하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다만 헌법 57조(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에 따라 '국회발 신규사업'은 정부가 동의해야만 예산 편성이 가능하다. 그러니 453개는 정부가 동의한 사업의 수인 셈이다.

● '국회발 신규사업' 75.5%는 '지역성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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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예산의 '국회발 신규사업' 453개는 2018 예산에 비해 개수로는 6개가 늘어난 수치다. 예산 규모는 전년보다 2,651억 원이 줄어든 9,929억 원으로 조사됐다.

부처별로는 국토교통부가 86개로 가장 많았고, 환경부 49개, 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 41개 순이었다. 예산액은 보건복지부가 최다인 2,858억 원, 교육부 1,259억 원, 국토교통부 1,168억 원 순으로 많았다. 2018년에도 국토부 사업 수가 가장 많았고(122개) 사업 규모도 가장 컸다.(2,617억 원) 복지부 소관 신규사업의 예산 규모는 1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 이는 아동수당 지급대상 확대 때문이다. 여기서만 2,356억 원, 전체의 82.4%를 증액했다. 교육부는 국립대학 BTO 소송 지급금 850억 원이 추가되면서 역시 규모가 폭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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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은 '국회발 신규사업' 중에서 '지역성 사업'을 따로 분류했다. '지역성 사업'은 특정 지역에 뭔가를 짓거나 조사하는 등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인데, 지역구 의원의 성과와 밀접하게 연관된 사업으로 볼 수 있다. 2019년 '국회발 신규사업' 중 '지역성 사업'은 342건, 75.5%로 나타났다. 2018년엔 447건 중 331건, 74.0%로 1년 새 큰 변화는 없었다. 2019년 '지역성 사업'에 편성된 예산은 5,093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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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발 신규사업과 '지역성 사업' 데이터 전체보기-> http://bit.ly/2U5Q20p

● "줘도 못 쓴다"는데도 굳이 편성하는 예산들


ㄱ 차관 "2016년, 2017년, 2018년 반영했는데 전부 쓰지 못했습니다. 수용 곤란합니다."

ㄴ 차관 "거쳐야 할 절차가 많아서 내년에 예산 편성해봤자 불용 가능성 높습니다."

ㄷ 의원 "정부가 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예산 집행의 주체인 정부는 쓰지 못할 것이라는데 심사의 주체인 국회가 편성을 요구하며 받아들이라고 설전을 벌인다. 이는, 헌법에 따라 예산 감액은 국회 권한으로 가능하지만 증액은 정부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일만 횡단 고속도로 사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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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포항 고속도로와 포항-영덕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영일만 횡단고속도로 혹은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사업. 2016년과 2017년 기본설계비 20억 원씩, 2018년에도 10억 원이 편성됐지만 모두 쓰지 못했다. 사업 자체에 경제성이 있는지 따져보는 예비타당성 조사, 사업적정성 검토에서 번번이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는 빠져 있었는데 국회에서 계속 추가해온 신규사업이다.

이번 예산심사에서도 국회는 편성을 요구했고 정부는 수용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공개된 회의록엔 '수용 곤란'으로 정리됐다고 기록됐다. 그런데도 최종 결과는 지난해처럼 10억 원 증액이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이번에는 쓸 수 있을까? 지난 3년 상황으로 미뤄 짐작해보면 '불용'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엔 단양군 의료원 사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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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료원을 설립하려면 거쳐야 할 절차가 많다. 사업 타당성 검토, 설립 심의 등을 해결하고 난 뒤에 복지부와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된다. 국민이 있는 곳이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겠으나 세금을 투입하는 만큼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양 의료원 신설에 대한 정부 입장은, 다른 문제를 제쳐놓더라도 2019년엔 실제 건립을 시작하기 어렵다는 것. 편성해봐야 못 쓴다는 것이다. 김명연 소위원장도 "담당 공무원이 한심한 민원 냈다"고 지적했지만 "절차가 되면 하겠다는 의지를 정부에게 확인하고 넘어가겠다"며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 최종 결과는 20억 원 증액이었다. '일단 밀어넣고 보자'는 것일까. 해당 지역 의원에게는 예산 심사에서 올린 성과 중 하나겠지만, 사용 못 한 예산은 국고로 반납할 따름, 다른 데 쓸 수 없다.

● '예산 확보' 알리는 보도자료... '불용 예산' 커지면 기회비용도 늘어날 뿐

이렇게 의원들이 노력해 예산을 따낸 '지역성 사업'의 공통점 중 하나, 보도자료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지역에 투입하는 사업 예산을 확보했다며 자신의 성과를 홍보하는 내용이다. 박명재 의원(자유한국당, 경북 포항남·울릉)은 2019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8년 12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포항의 국비 예산이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1,516억 원, 21건이나 증액됐다"면서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사업은 4년째 국비 반영"이라고 밝혔다. 김정재 의원(자유한국당, 경북 포항북구)이 같은 날 낸 보도자료도 유사한 내용이다. 이후삼 의원(더불어민주당, 충북 제천·단양)은 12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단양군 보건의료원 건립 국비 20억 원을 확보했다"고 알렸다.

정부 판단이 전부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불용 가능성이 높다 해도 2019년에 상황이 바뀌면 사업 진행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지역성 사업'이 끼어들면 밀려나는 다른 사업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고 반납하는 건 그만큼의 기회비용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불용 가능성이 높다고 하거나 사업성이 떨어져서 예산을 배정해도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하는데도 국회에서 2019년 예산에 반영한 신규사업은 11개, 131억 원 규모다. 모두 '지역성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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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 낮고 못 쓴다는데도 밀어붙인 사업 데이터 전체보기 -> http://bit.ly/2AVAXr2

● 법령을 또 어긴 의원들...이유는?

ㄱ 기자 "시행령을 완전히 무시한 거 아닙니까?"

ㄴ 의원 "조금 벗어나긴 했지만 시급성 여부를 따져서 요청을 했고요."

ㄴ 의원 "보조금법 시행령을 고치는 게 맞고요."


1년 전 환경노동위원회의 2018년 예산안 심사. 정부안에 없던 서울시 하수처리장 확충사업 예산 836억 원이 국회에서 추가됐다.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에 어긋난 예산 반영이었다. 서울시 하수처리장 확충 사업은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닌데도, 이를 무시하고 편성한 것이다. 이에 대한 [마부작침]의 질문에 돌아온 답은 "시행령을 고치는 게 맞다".

2019년 예산심사에서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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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은 시행령에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범위와 보조금 비율을 정해놓고 있다. 2018년 11월 13일 환경노동위 예산소위원회에서 논의한 '하수관로 정비' 사업은, 개량인 경우 광역시 보조율 20, 도청 소재지 30, 시·군 50%다. 국비로 보조할 수 있는 사업비의 비율이 저만큼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제한해놓지 않으면 어떤 지자체든 국비로 다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기에 상한선을 정해놓은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특별시는 아예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400억 원 반영을 요구했다. 법령 위반을 근거로 제시하며 이를 거부해야 할 정부 대표,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광역시 비율인 20%를 적용해 266억 원으로 편성하자고 제안했다. 왜 그렇게 답변했냐는 [마부작침]의 질문에 박천규 차관은 "대변인과 얘기하라"며 답변을 피했다. 환경부의 공식 입장은 "예산 심의권한을 가진 국회의 결정에 따랐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391억 원으로, 의원들 요구 수준에 가깝게 확정됐다. 2018 예산에서 서울시 하수관로 정비에 반영했던 391억 원과 같은 액수다. 시행령을 어겨가며 2년 연속 예산에 반영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서울 지하철 1~4호선 시설개량 사업은 국회에서 추가해 308억 원 예산이 반영됐다. 도시철도 시설개량은 아예 보조금 지원 사업 범위에 없다. 경부선 철도지하화 등 시설효율화 연구용역 사업은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철도건설법) 철도 이설을 요구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원인자로서 이설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국가 예산에서 35억 원 반영됐다.

2019년 예산에 서울시 노후하수관로 정비 사업을 반영하자고 요구한 의원은 6명으로, 서울 지역구의 박홍근, 전현희, 한정애 의원, 경기 지역구의 설훈, 조정식 의원, 그리고 비례대표 송옥주 의원이다. 6명 모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2018년 예산 심사에서 서울시 하수처리장 정비사업 예산을 요구했던 한정애 의원은 이번에도 시행령에 맞지 않는 예산을 또 요구했다. "안전 문제이기 때문에 법령에 어긋나더라도 지원을 요구했다"는 게 한 의원 측의 설명이다.

● 법령 고치겠다지만 개정 전에는 어떻게?

한정애 의원은 서울시 하수관로 정비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현행 법령을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한 법 개정안을 2016년 12월 발의했고, 개정안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서울시민 안전을 위해 노후 하수관로를 정비하는 사업은 물론 해야할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보조금법 시행령에서 서울시 지원을 제한하는 취지는, 재정자립도가 전국 17개 시도 1위인 서울시의 경우 다른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고 해당 예산을 배정하는 게 맞다는 의미다. 적어도 법령으로 금하고 있는 예산 편성을 밀어붙이기 전에, 먼저 법령부터 바꾸는 게 순서 아닐까.

이처럼 법과 시행령을 위반하거나, 정부 예산 편성의 기본 원칙들을 무시한 신규사업은 37개, 1,002억 원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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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나 예산 편성 원칙 무시한 사업 데이터 전체보기->http://bit.ly/2AVBglG

● 통 크게, 한꺼번에 처리하는 '뭉텅이' 사업 심사
마부작침
어떤 사업은 여러 차례 회의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기도 하고 어떤 사업은 일괄 처리한다. 그만큼 덜 중요한 사업이라서인가, 다들 만족하는 사업이라서인까. 2018년 11월 8일 국토교통위 예산소위에서도 그런 장면이 펼쳐졌다. 이혜훈 소위원장은 "3,200만 원짜리를 언제 다 논하고 있겠느냐"며 표로 정리해오면 그것을 보고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지역 공영주차장 조성 사업에 대한 논의는 회의록에 이게 전부였다. 결과는 119억 원 확정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심사한 '뭉텅이' 신규사업은 114개, 1,046억 원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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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텅이 처리' 사업 데이터 전체보기 -> http://bit.ly/2R1IPMV

● '해외 건설·플랜트의 날' 있는데 또 '해외 건설인의 날' 만들자?

지난 1월 7일은 '해외 건설인의 날'이었다. 정부 공식기념일은 아니다. 한국기업의 최초 수주 해외건설 사업에 인력 송출을 시작한 날인 1월 7일을 '해외 건설인의 날'로 제정하자는 취지의 결의안이 지난해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건설노동자 출신인 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이 제안했다.

매년 6월 18일은 '건설의 날', 11월 1일은 '해외건설·플랜트의 날'이다. 모두 국토해양부가 기념행사를 주관한다. '해외 건설인의 날' 제정촉구 결의안 당시, 비슷한 취지의 날이 중복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해외건설·플랜트의 날'이 이미 있는데 두 달 만에 비슷한 '해외 건설인의 날'을 지정하는 게 필요하냐는 반론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의안은 통과됐다. 정부 제출 예산안에 들어간 적은 없지만 국회는 2017년부터 3년째 예산을 요구했고 반영됐다. 2017년 2.8억, 2018년 3억 원, 모두 쓰지 못했다. 2019년 역시 3억 원이 반영됐다. 정부가 '해외건설인의 날'을 공식기념일로 지정하지 않는다면 올해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에도, 올해도 예산안에 넣지 않았는데 국회에서 연속 추가한 사업들이 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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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기사에서 지적했던 사업들 일부는 여기에도 포함된다. 서울시 노후하수관로 정비는 정부는 제외시키고 있지만 국회가 현행 법령을 어기면서 계속 반영 중이다. 교사겸직원장 지원비와 부산항축제 지원 사업은 2015년부터 5년 연속 '국회발 신규사업'으로 반영됐다. 영일만 횡단 고속도로는 4년 연속, 해외건설인의 날과 청소년트로트가요제, 서울 K-POP 공연 지원은 3년 연속이다.

● 정부는 빼고 국회는 넣고 정부는 또 빼고 국회는 또 넣고!

정부 담당자들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법령 위반이라, 지원 시기가 지났는데, 지역 사업이라, 예산 편성 원칙 위반이라...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안에 넣을 수 없지만 국회가 계속 요구하니 매년 되풀이되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시에서 요청하지만 보조금법 시행령 위반이라 정부안에는 넣을 수 없다" (서울시 노후 하수관로 정비)
"2014년 한시적 지원이었는데 국회가 계속 편성 요구해 반영하고 있다" (교사겸직원장 지원비)
"여수엑스포 이후 일정 기간만 지원하기로 한 거라 정부안에 넣을 수 없어 국회가 요구하고 있다" (동북아 해양관광레저 특구 조성지원)
"부산 축제라는 상징성이 있는데 지역사업이라며 정부안에 안 넣어줘서 국회 도움을 받고 있다" (부산항축제 지원)
"지역사업이라 수용 곤란한 면이 있는데 지역 의원 요청 와서 들어간다" (청소년트로트가요제, 서울 K-POP 공연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가 끝나지 않아 지원받을 수 없는데 국회에서 반영했다. 조사 안 끝나면 쓸 수 없다" (빛그린산단 광주방면 진입도로)
"5개년 계획에 빠져서 원래 안 되는데 국회에서 사전 조사비 명목으로 편성했다" (제2경춘국도 사전기본 조사비)...


국회에서 신규사업으로 예산 반영한 사업의 75.5%가 '지역성 사업'인데, 연속 사업 역시 대부분 '지역성 사업'이다. 지역의 요구는 이렇게 예산에 반영된다. 그리고 의원들의 치적, 성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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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이상 연속 국회발 신규사업 전체보기 -> http://bit.ly/2FNyhPI

● 잘 모르는데도 6억 원 주겠다는 차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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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3일 문화체육관광위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여느 신규사업처럼 정부도 수용한다고 하니 넘어가려는 찰나, 한 의원이 예산 지원을 받는 곳이 어떤 단체냐고 물었다. 그런데 정부 대표인 문체부 차관은 "잘 모른다",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예산 반영을 요청한 최경환 의원(민주평화당, 광주 북구을)은 전임 위원장의 요구였다고 털어놨다. 이건 좀 심하다고 느낀 것일까? 의원들은 이런 단체에 6억 원씩 예산을 배정할 순 없다며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결과는 잘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코미디 같았다.

● 신규사업 예산 편성에 적극적인 의원들은 누구였나

"일반국도 순창지역의 인계-쌍치 도로인데요, 전북 동부지역이 굉장히 취약하고 낙후돼 있습니다. 어렵게 하나 요구 들어왔는데 소액이라도 좀..."

"유강IC 진출입 램프 설치, 아주 굉장히 심각한 지역이니까 꼭 좀..."

"국도 22호선 전남 영광 신천지구 교차로 사업, 좀 더 성의를 보이셔서..."

"국가지원지방도 강하-강상, 이 사업 구간에 설계비 10억 원 반영 요청이 있는데 이것도 좀..."

"국가지원지방도 미로-하장, 좀 더 성의를 봐줄 수 있으면 좀 더 보태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국지도 고서-대덕 이게 호남지역의 낙후지역인데 수용곤란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좀 긍정적으로 검토해 줬으면..."


송석준 의원(자유한국당, 경기 이천)이 신규사업에 예산 반영해달라고 요구하는 발언을 모은 것이다. 2018년 11월 13일 단 하루 회의에서 나온 말들이다. '성의를 보여라', '좀 더 보태 달라',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송 의원이 요구한 사업 6개는 다 국회에서 추가한 신규사업이자 '지역성 사업'이다. 경기 양평, 강원 삼척, 전북 순창, 전남 영광, 전남 담양, 경북 포항까지 6개 지역에 걸쳐 있다. 경기 양평 외에는 자기 지역구와 가깝지도 않다. 왜 저렇게 요청했던 걸까. 송 의원은 [마부작침]과 통화에서 "평소 지역균형 발전에 관심이 많아서 SOC 확충 같은 사업을 적극 요청했다"면서 자신의 지역구 외 사업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부탁을 받고 검토해본 뒤에 요청했다"고 답했다.

[마부작침]은 각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회의록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신규사업 예산 편성에 적극성을 보였던 의원들이 누구였는지 확인했다. 예결위 회의에서는 신규사업 이름을 언급한 게 거의 없어 대부분 상임위 심사 때 발언 중심이다.

신규사업 편성을 주장해 반영시킨 의원 수는 71명, 사업 수는 75개, 3,678억 원 규모였다. 이중 '지역성 사업'은 48개, 64%에 이른다. 당별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38명, 야당인 자유한국당 24명, 바른미래당 4명, 민주평화당 3명, 정의당 2명이다. 초선 의원이 46명으로 전체 의원의 64.8%였다.

'국회발 신규사업'에 예산 배정이나 증액을 3건 이상 주장한 의원들은 7명이었다. 초선 의원은 3명이다. 위에 예로 든 송석준 의원이 6건으로 가장 많았고,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부천소사) 5건, 최경환 의원(민주평화당, 광주 북구을) 4건, 김영주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영등포갑), 박경미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박덕흠 의원(자유한국당,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신동근 의원(더불어민주당, 인천 서구을) 각 3건씩이다.

다만, 이렇게 신규사업 편성을 적극 주장한 것으로 드러난 의원들이 전원 다 특정단체나 특정지역의 이해만 고려했다고 말할 순 없다. '국회발 신규사업' 중 가장 예산규모가 큰 '아동수당 지급' 사업(2,353억 원)은 김상희, 신동근 의원 등이 편성을 요구했는데 여야가 만 6세 미만 소득 하위 90%에게 지급하던 수당을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기로 결정하기로 합의하면서 추가한 것이라 여타 신규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 위의 집계는 어디까지나 회의록에 남아있는 내용만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적잖은 예산 증액 신청이 서면질의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 회의록에 나오지 않은 예산 편성도 많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의원들의 서면질의 요청은 2019년 1월 말 현재도 대부분 공개되지 않아 분석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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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사업 반영 적극 주장한 의원들 전체보기 -> http://bit.ly/2RIyGtI

● 회의록과는 다른 결과... 어디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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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그런데 결과는 또 바뀌었다. 2018년 11월 13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 경기 남양주 유소년축구센터 건립에 50억 원, '수용 곤란'이 갑자기 '수용'이 됐다. 해당 지역에서 여러 번 당선됐던 여당 의원의 요구였다. 야당 의원은 과하다며 삭감 의견을 냈고 회의록만 보면 그렇게 정리된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21.5억 원 반영이었다.

같은 날,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 정부 입장이 오전과 오후 정반대로 뒤집혔다. 친환경쌀전통민속주 제조장 및 체험장 건립 사업에 대해 정부 대표인 농축산부 차관은 4년 전 사례를 거론했다. 2015년에도 비슷한 사업 예산이 반영됐지만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 "수용 불가"라고 했다. 오후에 속개된 회의, 다시 묻자 "수용"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회의록에 없는 이른바 '물밑 논의'의 결과다.

● 논의 흔적 없는 신규사업, 2.5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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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 분석 결과, 2019년 예산에 반영된 453개 '국회발 신규사업' 가운데 회의록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사업은 128개에 이른다. 전체의 28.3%, 예산 규모는 2,200억 원이다. 2018년 예산에서 논의 흔적 없는 사업이 51개, 11.4%였던 것과 비교하면 사업 수로는 2.5배, 예산 규모는 6.4배가 증가했다. '깜깜이 신규사업'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논의 흔적 없는 신규사업 중 103개, 80.5%가 '지역성 사업'이었다.

국회가 예산심사를 하고 그 회의록을 남기는 건, 의원들이 어떤 근거와 논리로 예산 심사를 했는지 국민에게 공개한다는 취지다. 내가 낸 세금을 어디에 쓰겠다는 건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고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은 이를 엄정하게 심사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국회발 신규사업'의 30% 정도는 전혀 편성 근거나 이유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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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흔적 없는 신규사업 전체보기 -> http://bit.ly/2W7S5mx

● 그들이 '소소위'를 400회나 외친 이유는

ㄱ 의원 "그러면 지금 말씀드린 모든 내용 감안해서 소소위에서 결정 하시지요."

ㄴ 의원 "합의 안 나는 문제인데 보류하고 소소위로 넘기시지요."

ㄷ 의원 "그것은 추가로 논의를 하는 거지요, 소소위에서."


국회법 57조(소위원회) 1항은 "위원회는 특정한 안건의 심사를 위하여 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이다. 소위원회 구성은 위원회에서 합의로 정하며 소위원회 회의는 공개가 원칙이다. 속기를 통해 회의록도 남긴다. 그럼 '소소위'는 뭘까. 소소위원회는 소위원회의 소위원회 격이다. 국회법은 물론 어느 법령에도 근거 규정이 없지만 국회 예산심사 기간에 관행적으로 운영한다. 소위원회보다도 더 작은 규모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들과 기재부 차관 등 소수만 참여한다. 비공개에,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소소위 심사를 '밀실 심사', '깜깜이 심사'라고 부른다.

[마부작침]은 2019 예산회의록에서 '소소위'가 언급된 횟수를 세어봤다. 전체 회의록 5,453페이지 중에 발언자들이 '소소위'라고 말했던 건 400회였다. 개별 상임위원회 중에는 의원들의 '지역성 사업' 예산 편성 요구와 반영이 가장 많았던 국토교통위원회에서 69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1회가 나왔다. 나머지 330회는 예산결산특위 예산조정소위 회의록 933페이지에 집중됐다. 2.8페이지에 1회꼴이다.

왜 이렇게 소소위를, 특히 예결특위의 소위원회에서 자주 언급했을까. 결국은 심사의 효율성 때문이다. 예결특위 전체 위원 수는 50명, 예산조정소위 위원 수도 10명이 넘는다.(이번 예산심사에선 각 당별로 소위 위원 수를 몇 명으로 할지를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각 당이나 예결위원들, 정부 입장이 엇갈려 합의점을 찾지 못할 때 더 적은 인원이 모여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사업 예산의 필요성보다는 각 당 혹은 지역별 나눠먹기 등 타협점을 찾기 수월한데다 그런 과정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니 비판도 크게 줄일 수 있다.

ㄹ 의원: "좀 토론을 해요. 자꾸만 소소위에 넘겨 가지고, 진짜 저희가 지금 해결이 안 돼요."

ㅁ 의원: "여기에서 결정할 수 있는 건 결정을 하고 넘어가야지 이걸 다 소소위에다가 넘기는 건 이거야말로 무책임한 겁니다."

ㅂ 의원: "정부 예산을 감액·증액하는데 아무도 모르게, 국회의원들 모르게 하는 거야말로 있을 수 없다. 국민들도 알아야 되고 국회도 알아야 된다. 국회의원 전체가 알아야 됩니다. 과거에 소소위에 넘겨서 심의를 정말 얼렁뚱땅하고 아무도 모르게 하고 그런 거야말로 하나의 적폐다. 이건 개선해야 된다."


위의 발언은 실제로 지난 예결특위 소위 심사 중에 의원들이 했던 말이다. 이처럼 소소위 심사 비중이 늘어나는 데 대한 안팎의 비판이 나오고는 있지만 매년 이런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뭐가 있을까.

● 470조 예산을 9일 만에 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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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새해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국가재정법 33조) 국회의 예산심사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90일 전까지였던 정부의 예산안 제출시한을 2014년부터 한 달 앞당긴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8 예산안은 2017년 9월 1일, 2019 예산안은 2018년 9월 3일에 제출했다. 이때부터 심사한다면 3개월의 심사기간을 확보하는 셈이다.

하지만 예산안 심사는 11월부터 시작한다. 9월 정기국회가 열리면 대정부질문이 있고 곧이어 국정감사가 이어지기에 예산 심사를 바로 착수하지 못한다. 국정감사 끝나고 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이후 각 상임위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과 2018년 모두 11월 1일에 시정연설을 했다. 그러면 1개월의 심사시간이다.

상임위의 예비심사 다음 실질적인 본 심사라고 할 수 있는 예산결산특위 예산소위 심사가 관건이다. 2018 예산소위 심사는 11월 14일부터 시작했는데 2019 예산소위 심사는 소위원회 정수 조정 문제 탓에 전년보다도 8일 늦게 시작했다.

문제는 또 있다. 이렇게 시작이 늦더라도 끝은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2014년부터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되면서 예산안 심사기한은 11월 30일이 됐다. 이때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다음 날인 12월 1일, 바로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해마다 예산 심사가 늦어져 새해 1월 1일 새벽에야 예산안 처리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나라살림을 더 일찍 결정하자는 좋은 취지였으나 현실은 졸속 심사를 강화하게 돼 버렸다.

결국 2019 예산안의 본 심사는 사실상 겨우 9일 동안 진행한 셈이다. "소소위에서 결정하자", "소소위로 넘기자"는 말들이 400회나 나왔던 까닭이다.

◎ "의원님들, 예산심사 다음에도 그렇게 하실 건가요?"

[마부작침 ]은 2018년 1월, 2018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기사를 통해 국회의 부실한 예산 심사 행태를 비판했다. 특히 국회발 신규사업의 4분의 3은 '지역성 사업', 법령과 예산 편성 원칙을 어긴 예산 편성, 사용할 수 없다는데도 의원의 성과를 위한 예산 편성, 회의록에 논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깜깜이 심사' 행태 등을 지적했다.

그로부터 1년, 개선된 부분이 없진 않다. 앞서 ⑥ 신규사업 예산 편성을 적극 주장한 의원들은 누구인가에서 예로 들었던 '옛가요보존회' 지원 예산 6억 원은 전액 삭감됐다. 지난해 기사에서 지적했던 무예진흥원 건립 예산 5억 원은, 2017년 11월 심사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법 개정을 통한 지원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원들이 2019 예산에 추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2019 예산회의록에 드러난 국회의 심사 행태는 1년 전과 유사하다. '국회발 신규사업'은 여전히 4분의 3이 '지역성 사업'으로 분류된다. 법령과 예산 편성 원칙을 어기거나, 사용할 수 없다는데도 의원의 성과를 위한 예산을 편성하거나, 회의록에 논의 흔적 없는 '깜깜이 심사' 행태는 여전했다. 특히 신규사업 중에 회의록에 전혀 언급 없이 예산이 편성된 사업 수는 2.5배나 증가했다. 예산 심사 기간이 더욱 줄어들면서 '법 위의 소소위'로 쟁점 논의가 쏠리는 건 더 심해졌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단기적으로 예산심사 기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9월 정기국회는 '예산 국회'라고도 불리고 법적으로는 90일이 확보돼 있다. 하지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때문에 실질적인 예산심사는 11월에 들어서야 시작된다. 국정감사 일정을 조정해 9월 국회에서는 예산 심사에 전념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상설 국정감사까지는 못 하더라도 현재 국정감사를 6월 정도로 앞당기고 9월부터 예산 심사를 시작하는 등 충분한 심사 기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소소위'에서 중요한 감액·증액 심사가 대부분 이뤄지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 최소한 회의 내용이 공개되는 소위원회가 예산 심사의 중심으로 바로 자리잡아야 '밀실 심사', '깜깜이 심사'라는 비판을 줄일 수 있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hyeminan@sbs.co.kr)
브랜드디자인: 한동훈·장유선
인턴: 박지영

▶ 470조 예산심사 회의록 분석…"의원님, 왜 또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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