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XXX, 너 뭐야"…택시기사가 '그날 밤' 영상 공개한 이유

[취재파일] "XXX, 너 뭐야"…택시기사가 '그날 밤' 영상 공개한 이유

"경찰 믿었는데…기사 폭행 다시는 없기를"

안희재 기자 an.heejae@sbs.co.kr

작성 2021.06.13 17:32 수정 2021.06.13 21:34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이른 새벽 걸려온 전화 한 통

"밤잠을 설쳤어요.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하는데…." 지난 2일 이른 새벽, 수화기 너머 택시기사의 첫 마디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영상이 공개되겠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전해지던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 안 폭행 당시 생생한 순간은 택시기사의 굳은 결심이 있고 몇 시간 뒤, 그렇게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 [단독] 이용구, 목 조르고 욕설…37초 블랙박스 입수
 

"진상 규명, 경찰을 믿었는데…"

이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의혹이 불거지고 약 6개월. 어떠한 설득에도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만큼은 언론에 내줄 수 없다던 그였습니다. 한창 진행 중인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경찰이 나섰으니 곧 진상을 규명해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느껴졌습니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 기사 폭행 블랙박스 영상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엔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법무부 차관이 된 가해자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사건을 맡았던 서초경찰서 경찰관과의 지루한 진실 공방만 이어진 겁니다. 그 사이 폭행 피해자는 사건 은폐에 동조한 증거인멸 혐의 피의자가 됐습니다.

30여 초에 불과한 폭행 상황을 여러 차례 수십 시간에 걸친 경찰 조사에서 거듭 설명하고 검찰에도 같은 내용을 진술했지만 답답한 상황은 계속됐습니다. 정작 가해자인 이 전 차관은 의혹이 불거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한 차례씩 검경에 나와 조사를 받았을 뿐입니다.
 

"거짓 진술을 제안한 건 이 전 차관이지, 내가 아닙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낀 건 이즈음이었습니다. 이 전 차관이 경찰에 "택시기사가 먼저 사건에 대해 거짓으로 진술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경찰 추궁에 기사는 그저 황당했다고 토로합니다. 거짓 진술을 종용한 건 오히려 이 전 차관이었고, 자신은 그 제안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 [단독] 경찰 조사 전 "뒷문 열고 깨운 걸로 해 달라"
 
" 기사님이 내려서 뒤에 문을 열어 날 깨우는 과정에서 내가 멱살 잡은 걸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래요. 영상도 다 찍혔는데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속으로 생각했지."
- 택시기사

앞서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담당 형사가 보고도 "안 본 걸로 하겠다"며 내사 종결한 과정과 관련해, "기사가 먼저 영상을 안 본 걸로 해달라고 했다"는 주장이 나와 한껏 시달린 터였습니다. 사건 이틀 뒤 자신을 찾아와 요구한 적도 없는 합의금을 건네며 고개를 숙이던 이 전 차관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가해자가 아닌 자신에게 오히려 거짓말탐지기를 들이미는 경찰의 태도에 믿음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지난달 31일 경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이용구 당시 법무부 차관 (사진=연합뉴스)
집 앞에 매일 같이 진을 치는 취재진만큼이나 견디기 어려웠던 건 '거액의 합의금을 챙기곤 이제와 딴 소리를 한다' 식의 비난 여론 그리고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이 결국 현직 정부 고위인사라는 데서 오는 부담감이었다고 기사는 말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건은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블랙박스 영상을 꺼내든 이유입니다.  ▶ 택시기사도 '증거 인멸' 입건…"본질은 운전자 폭행"
 
" 고위 공직자의 운전자 폭행과 윗선에 의한 은폐 시도라는 의혹의 본질이 자꾸만 잊혀지는 것 같았어요. 경찰의 책임을 전가하려고만 하고, 꼬리 자르기하려고 말이야."
- 택시기사
 

"XXX" 영상 공개…수리된 법무부 차관의 사표




파장은 컸습니다. (변호사 시절 일이긴 했지만) 현직 법무부 차관이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택시기사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운전자 폭행죄를 누구보다 잘 아는 법률가인 이 전 차관이 연락해 "택시가 서 있는 상태에서 잠든 승객을 깨우다가 벌어진 일로 진술해달라"는 취지로 제안했다는 폭로도 여론을 흔들었습니다.
 
"어떠한 이유라도 사람을 폭행한 사실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잘 알고 있고, 특히 아무런 잘못이 없는 택시기사분에게 피해를 입힌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택시기사분께 사과드립니다."
- 이용구 전 차관 입장문 중 (2021년 6월 3일)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 전 차관은 SBS 보도 다음날 두 쪽 분량의 입장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전 차관은 "만취해 사람과 상황을 착각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사람을 폭행한 사실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잘 알고 있고, 특히 아무런 잘못이 없는 택시기사에게 피해를 입혀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또 제3자에게 유포될까 우려돼 영상 삭제를 지워달라는 등 요구를 한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영상 삭제의 대가 같은 조건부로 합의 의사를 타진한 사실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 폭행 영상 공개되자 사표 수리…"피해자에 사과"

청와대도 이날 이 전 차관의 사표를 공식 수리했습니다. 이 전 차관의 폭행 당시 택시가 운행 중이었는지 논란 역시 공개된 영상을 통해 사실상 일단락되면서 진실 규명에 기대감이 모아졌습니다.
 

경찰 "윗선 개입 없었다. 꼬리 자르기도 아냐"…남아있는 의구심

그러나 일주일 뒤 나온 경찰의 진상 조사 결과는 석연치 않습니다. 특히 사건이 내사 종결 처리되는 과정에 어떠한 외압이나 청탁도 없었다는 결론이 빈축을 샀습니다. 담당 형사가 영상을 확인하고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고, 이 전 차관의 요구에 따라 기사가 영상을 지워 정식 수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담당 형사는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이 전 차관과 기사는 각각 증거인멸교사와 증거인멸 혐의로 검찰에 넘기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서초경찰서장과 간부들에 대한 감찰이 남아있지만 사실상 개인의 일탈로 마무리한 셈입니다.

이용구 차관 택시기사 폭행 논란
의구심은 여전합니다. 사건 관계인들이 일부 통화 내역을 삭제했고, 무엇보다 이 전 차관이 사건 당시 출범을 앞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점을 경찰 간부들도 익히 알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상황. 경찰은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보고가 생명인 경찰 조직에서 이 전 차관의 기사 폭행사건을 윗선이 과연 몰랐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더구나 이 전 차관이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정책보좌관과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 역시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 "사건 뒤 추미애 보좌관과 통화"…법무부 알았나 (이 전 차관은 폭행 한 달여 뒤 추 전 장관의 추천을 거쳐 법무부 차관이 됩니다.)

이 같은 의심은 공을 넘겨받은 검찰에 시선이 쏠리게 합니다. 서울중앙지검은 경찰과 별개로 이 전 차관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와 외압 여부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해왔습니다. 경찰의 결론대로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숨기기 위한 부당한 개입 내지 시도가 정말 없었던 건지, 보다 꼼꼼한 수사와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나도 책임져야지, 하지만…"

택시기사는 이번 경찰의 발표에 대한 의견을 묻는 SBS 취재진에게 말을 아꼈습니다. 공적 기관의 수사 결과에 일일이 반박하고 대응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대신 검찰의 수사를 차분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알지 못하는 '높으신 분들' 사이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를 알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운행 중인 택시기사를 때리는 일이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내 사건이 알려진 뒤에도 반년 동안 기사 폭행사건이 끊이질 않았어요. 숨진 분도 있었다고. 이 전 차관에게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렇게 하겠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버스든 택시든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손대는 일만큼은 제발 없어지길…."
- 택시기사

※ 택시기사의 첫 정식 인터뷰 풀 버전은 SBS뉴스 유튜브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단독 인터뷰] 이용구 차관 피해 택시기사 "거짓 진술 종용도"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