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바라기만 하는 그 사람, 너무 얄밉잖아요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SBS 뉴스

작성 2020.02.07 10:53 수정 2020.02.21 13:3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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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중한 (運中閑) 2편
'운전 중 떠오르는 한가로운 생각'이라는 뜻. 운전 중 발생하는 여러 에피소드를 회사 생활과 엮었다.



 퇴근시간이다. 또 다시 상당시간 운전을 해 집을 가야 한다. 시동을 걸고 서서히 차를 움직였다. 퇴근 길은 아침보다 훨씬 나았다. 좀 늦게 나와서인지 차가 많지 않아서 막히지도 않았고 웬일인지 신호등 때문에 멈추지도 않았다. 운전은 편안했으나 오늘 아침 대리점장과의 면담 후 후속조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는 묵직했다. 운전하면서 그의 얘기를 다시 정리해 봤다.

 한마디로 "돈이 안된다. 그러니 지원을 해 달라" 였다. 들어가는 돈은 많고 수수료가 너무 적으니 당연히 회사에서 보존해 줘야 한다는 투였다. 더 이상의 배려는 안하겠다고 다짐한 나는 다른 때와 달리 냉정한 표정으로 "그게 맞나요?" 라고 물었고 그는 약간 당황스러워 하면서 "이 지역은 외곽이어서 현재의 수수료로는 적자가 납니다. 그건 아니잖아요" 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시골은 도시보다 비즈니스 환경이 좋지 않다. 하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사업을 벌이는 다른 외곽 대리점들은 굳이 지사에 찾아와서 적자가 나니 지원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 수수료 수준으로도 자구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의 수익은 낼 수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나는 차갑게 말했다.

왜 점장님만 힘들다고 하나요?
혹시 대리점 경영에 문제가 있나요?
노력이 부족하진 않았나요?

 그러자 그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네 구역은 특히 더 어려운 지역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재차 요청했다. 나는 지원해야 하는 근거를 갖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톨게이트가 보인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속도를 줄여 게이트를 통과한 후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탔다. 나는 크루즈 기능을 켠 채 운전하면서 생각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나는 회사가 두드리면 돈이 나오는 곳이라고 착각하는 대리점장이,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또 한편으로는 그 뻔뻔함에 괘씸하기도 했다. 불현듯 아침 출근 할 때 한 라디오 아나운서가 말했던 '서유기' 얘기가 떠올랐다. 내용인 즉, 손오공이 삼장법사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을 알아볼 수 있는 행위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공양을 하는 것이란다. 손오공은 서천을 가는 내내 사부님을 배부르게 먹이기 위해 말이 공양이지 구걸 짓을 부끄러움 없이 열심히 했다고 한다.
회사가 두드리면 돈 나오는 곳이던가 (사진은 픽사베이)

 시주님 어디 가십니까? 밥이 있으면 빨리 동냥이나 좀 주십시오. 
이 시주님, 정말 답답하네! 정말 우리 사부님을 굶겨죽이겠단 말이오? 
여러 집 돌아다니느니 한 집에 눌러 앉아 있느니만 못하다는 옛말도 있듯이
여기서 잠시 기다리겠소.
 이 이야기는 손오공이 음식을 구할 때 시주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아나운서는 손오공이 공양을 거부한 집에 들어가 "옛 속담에 도사는 어질고 착한 자를 교화시키고 승려는 어리석은 자를 교화시킨다는 말이 있지"라고 말하며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밥 한 사발을 몰래 가득 퍼갔다" 라고 했다.

 아침에는 이 멘트를 듣고 아나운서가 의도한 대로 나 역시 "그러네, 손오공 고생했네" 라고 동의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행동은 적절치 않았다. 손오공은 음식을 달라고만 하면 자기 일은 끝나고, 공양은 속세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손오공의 이런 사고방식은 마치 데이빗 소로가 자신의 수필집 '월든'에서 소개한 어느 인디언 행상과 비슷하다.

"밥 있으면 빨리 동냥이나 좀 주십시오" (사진은 영화 '몽키킹 2')  얼마 전 한 인디언 행상이 우리 마을에 사는 유명한 변호사의 집으로 바구니를 팔러 왔다. "바구니를 사지 않겠습니까?" 하고 그가 물었다. "아니오, 살 생각이 없습니다"라는 것이 대답이었다. "뭐요? 우리를 굶겨 죽일 생각이오?" 하고 그 인디언은 외쳤다.

 인디언 행상 역시 바구니를 만들어 놓으면 자기 일은 끝난 것이고, 바구니를 사는 것은 백인의 임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소로의 지적대로 그는 남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바구니를 만들든가, 최소한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든가 또는 살 가치가 있는 어떤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대리점장도 회사에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 손오공도 시주에게 공양을 강요하기 전에 위와 같은 자력 갱생하겠다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도움을 주려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손오공, 인디언 행상, 우리 대리점장 같이 공짜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자신들은 큰 일을 하는 공무 수행자 아니면 사회적 약자 혹은 시대의 희생자이니 나라는, 부자는 혹은 이웃들은 당연히 자신들에게 물질적 지원과 특혜 그리고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돈이 되지 않는 공무를 수행하는 자, 어디 기댈 데 없는 사회적 약자 혹은 시대의 희생자는 우리가 반드시 돌봐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그러한 사람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이 있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한 푼이라도 아끼며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 흙수저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온갖 노력을 하며 무언가를 이뤄보겠다는 젊은이들, 정직하게 가급적 누구 도움 없이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우직한 소시민들...

 부아가 치밀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노력 없이 지원해달라는 그 대리점장이 너무 얄미웠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누군가의 땀방울을 훔쳐가는 불로소득자, 당장의 어려움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원을 해 달라는 의욕상실자, 자기들은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특혜를 달라는 기득권자, 그리고 이 환경을 조장하는 정책결정자, 모두 다 밉다.

 그런데 누가 그들을 파렴치한 사람들로 만들었지? 어, 지금 내가 못마땅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힐난하는 대리점장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나인데. 뭐냐 이거? 누구를 욕해야 하는 거지.
 

▶ 운중한 (運中閑) 1편 - 선의 베풀었더니, 선을 넘네?
▶ 운중한 (運中閑) 2편 - 바라기만 하는 그 사람, 너무 얄밉잖아요
▶ 운중한 (運中閑) 3편 - 겁쟁이는 여러 번 죽는다
▶ 운중한 (運中閑) 4편 - "나 없으면 회사 안 돌아가" 네, 착각입니다 

 
 
- 3편에 계속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인잇 시즌 2 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