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스미싱 피해도 아닌데…나도 모르는 소액결제?

[취재파일] 스미싱 피해도 아닌데…나도 모르는 소액결제?
"저도 당했습니다."

휴대전화 소액결제 사기 브리핑에서 만난 경찰이 한 말입니다. 사건 관련 이모저모를 묻고 한참 취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눴는데 자신도 피해자라며 쑥스러운 듯 문자를 보여주더군요. 경찰뿐만이 아닙니다. 제 가족과 친구 중에도 휴대전화 소액결제 사기를 당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해온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나름 경찰서를 출입하고 있는 기자인지라, 이런 상황에서 어찌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는데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뭐, 딱히 어찌할 방법이 없어... 신고해도 보상받긴 쉽지 않을 거야."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경찰도 당했다는데 기자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당장 제가 피해를 봐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 걸요. 물론 긴긴 과정 끝에 환불을 받아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량 업체에 걸린 경우 피해 구제가 쉽지 않습니다. 당한 이들의 얘기를 종합해봤을 때 소액결제 피해를 보면서 가장 답답한 건 ‘언제 어떻게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는 부분입니다. 결제 대행사에 전화를 해보면 “고객님께서 동의하셔서 출금된 겁니다.”라는 말만 수없이 반복하는데, 도대체 나는 '동의한 적이 없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얘기였습니다. 문자를 잘못 누르면 휴대전화에 악성 코드가 심어져 돈이 빠져나간다는 ‘스미싱’ 피해를 당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언제 어디서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걸까요?


# '공짜' 유혹 넘어갔다가 덜컥 ‘소액 결제 승인’

스팸 캡쳐_500
시작은 이렇습니다. 인터넷 웹하드 업체에서 최신 영화 무료 다운로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회원가입만 하면 일주일 동안 돈을 내지 않고 최신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유혹하는 거죠. 가입 화면엔 ‘무료 체험’, ‘무료 회원 가입’ 등 공짜라는 홍보 문구가 가득합니다. 이 내용에 혹한 사람들은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휴대전화 인증번호까지 입력합니다. 일반적인 인터넷 사이트 회원 가입 절차와 비슷하기 때문에 가입자들은 ‘무료 회원 가입’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휴대전화 소액결제’의 시작입니다. 자기 손으로 결제 승인을 내린 셈이죠.

무료라고 홍보해놓고 돈을 받으면 안 되지 않느냐고요? 여기에 업체들의 꼼수가 숨어 있습니다. 가입 화면 아래쪽에 보면 아주 작은 글씨로 이런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무료 체험 이벤트 기간 일주일이 지나면 매달 11,000원(vat별도)씩 자동 결제됩니다."

얼른 회원가입을 하고 최신 영화를 볼 생각에 가입화면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가입자들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영락없이 소액 결제 사기를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당한 사람이 14만 4천4백 명. 이번에 경찰에 적발된 인터넷 웹하드 업체가 소액결제로 챙긴 돈은 43억 원이 넘습니다.


# 무심코 넘긴 스팸 문자가 결제 통보 내용?

이번 사기로 피해를 본 사람 가운데는 무려 2년 동안 소액 결제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경우도 있습니다. 휴대전화 요금에서 매달 만 원 넘는 돈이 스물네 번 빠져나가는 동안 깨닫지 못하고 있던 셈이죠. 소액 결제를 하면 문자로 과금 내역을 통보하게 돼 있는데 피해자들은 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여기서 업체들의 두 번째 꼼수가 나타납니다.

[안내] 초특가대박 이벤트 11000원 결제 무제한정액제 ㅇㅇ박스 문의 0000-0000

자, 여러분이 이런 문자를 받으셨다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들겠습니까. 지나가는 시민 몇 분에게 문자를 보여줬더니 홍보성 스팸 문자 아니냐며, 이런 문자를 괜히 클릭했다간 소액 결제 사기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예 지워버리거나 넘긴다고 말하더군요. ‘이벤트’, ‘문의’라는 단어 때문에 스팸 문자로 여겨지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자는 ‘ㅇㅇ박스’라는 업체에서 ‘무제한정액제’ 상품을 구입해 ‘11000원’이 ‘결제’됐다는 내용입니다. 당신의 휴대전화에서 11000원이 자동결제로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리는 통보 문자인 겁니다. 황당할 노릇이지만, 전자상거래법상 의무 위반으로 과태료만 낼뿐 법적으로 처벌할 수단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 업체들의 '꼼수' 영업.. 법적 판단은?

경찰은 이렇게 꼼수로 영업한 인터넷 웹하드 업체 관계자들을 입건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량 업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액 결제를 할 수 있게 계약을 유지한 결제 대행사 직원 3명도 '사기 방조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작은 글씨로나마 고지의 의무를 다했고 문자 발송 규정도 어기지 않았다며 요리조리 혐의를 피해 나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꼼수 영업에 대한 법적 판단은 어떻게 될까요?

경찰 설명에 따르면 아직 이런 신종 수법에 대한 형사 판례는 없다고 합니다. 경찰은 다만, 비슷한 민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이들의 행위가 법적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진 모르지만, 1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눈 뜨고’ 사기를 당했단 사실로 미뤄봤을 때 이들 업체의 꼼수 영업이 소비자들을 기만한 행위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손해배상 [대법원 2008.12.24, 선고, 2008다58961, 판결]

원고가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무료로 가입하여 1주일 동안 유료회원의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이 사건 이벤트를 실시하면서 그 인터넷 사이트 화면에서 ‘무료체험’, ‘공짜’라는 문구를 크게 강조하는 반면에 ‘7일 무료체험 후에는 자동 정회원으로 전환되어 월정액 2,000원이 부과됩니다’라는 안내 문구는 이용자가 인지하기 어렵게 화면 하단에 작은 글씨체로 표기한 것은 이용자가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부주의로 이벤트에 참여하게끔 유도한 것이며, 또한 원고가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자동결제 유료회원들에게 매월 회비 결제시에 ‘〈자동맞춤짝 서비스 원고 주식회사〉 원고 주식회사 모바일 회원인지 메시지 2,000원 피고 주식회사’ 또는 ‘맞춤짝이 나타났습니다 원고 주식회사 2,000원 결제 피고 주식회사’라는 문구로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것은 자동결제를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이를 받아보는 사람이 스팸 문자메시지 또는 결제 승인 요청 메시지인 것처럼 오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매월 자동결제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리지 않은 것이므로, 이러한 원고의 행위는 전자상거래법 제21조 제1항 제1호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하여 소비자를 유인 또는 거래하거나 청약철회 등 또는 계약의 해지를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고.. (후략)


# 주민등록번호·인증번호 요구하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국전화산업결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소액결제 피해 사례는 16만 9천8백28건입니다. 2011년 3만 6천2백39건, 2012년 7만 8천9백36건에 비하면 해마다 두 배 이상 늘고 있는 셈입니다. 범죄가 지능화되는 만큼 이에 대처하는 이용자들의 자세도 주의 깊게 변해야 할 때입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피해를 막으려면 말이죠.

한국전화결제산업협회 조용태 사무국장은 "인터넷 사이트 가입 시 주민등록번호와 휴대전화 인증번호를 함께 요구하는 경우 90퍼센트 이상 결제로 이어진다고 보고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사전 예방책으로는 소액 결제 한도를 낮추거나 아예 차단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사후에라도 피해가 장기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요금청구서 세부 내역서를 꼼꼼히 살피고 내가 승인하지 않은 자동 결제가 이뤄진 것은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소액 결제 사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예외일 것’이란 생각을 버리고 사소한 부분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습니다. 일단 지금이라도 무심코 넘겼던 휴대전화 요금 명세서를 살펴보고 내가 모르는 소액 결제 금액이 빠져나가고 있진 않은가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