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자식 가운데, 어느 종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지 우문을 던졌습니다. “다 아름답게 들리죠”가 현답일 줄 알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대답 전 한참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고개를 갸우뚱,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고민 끝의 한 마디는, 아직 마음에 드는 소리가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없어요, 아직 없어요… 애착이 가는 종소리도 없다고 했습니다. 보신각종을 만든 이도 그 소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서울 종로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종소리를 묻어버리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는 듯 했습니다. 대한민국 범종의 장인은 아름다운 소리에 대한 50년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수수께끼를 푸는 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종소리가 얼마나 미묘한지 드러내는 한 마디입니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는 이른바 맥놀이 현상과 관련있습니다. 맥(脈)은 한자고, 놀이는 순우리말입니다. ‘맥’은 ‘맥박’이라고 할 때의 그 맥입니다. 주기적인 파동입니다. 주기적인 파동이 자유롭게 노는 것처럼 소리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보신각종이야 도심 한복판에 있어서 차분하게 듣기 힘들지만, 산 속 절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를 들어보면 맥놀이 현상을 몸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종을 치고 조금만 기다리면 웅~ 웅~ 웅~ 마치 사람이 슬프게 우는 것처럼 주기적인 울림이 느껴집니다. 무척 낮은 음이어서, 귀보다는 몸으로 듣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보신각종도 요즘 날마다 정오에 타종식을 하는데, 가까이에서 들어보면 이런 맥놀이 현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종의 미세한 진동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종은 육중한 몸뚱이를 부르르 떨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단서는 종의 어디를 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당좌’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운이 좋게도, 명장의 작업장에는 중국식 종도 걸려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주문이 들어와 만들어놓은 종이라고, 원 선생님은 설명했습니다. 중국 종의 당좌는 가장 아래 부분입니다. 종의 밑동을 때리는 식입니다. 딩~ 하고 종을 치면 소리는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반면 우리 종은 소리가 사그라지는 것처럼 시늉을 하다가도, 다시 살아나서 울고, 이걸 여러 번 반복합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만 1분 가까이 가고, 몸에 들리는 소리까지 2분 가까이 이어집니다. 맥놀이가 제대로 연출되면, 소리가 멀리 가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 보신각종 소리는 그래서 반경 3km 안의 사대문 안을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내려면 종 밑에서 3분의 1정도 지점을 쳐야 합니다. 당좌의 위치입니다. 에밀레종도 바로 여기를 칩니다. 이 지점을 기준으로, 종의 위와 아래의 무게는 같습니다.
다른 단서는 종의 두께입니다. 중국 종은 위로 올라갈수록 두께가 급격하게 얇아집니다. 그러니까 종의 아래를 상대적으로 두껍고 무겁게 만들어놓고, 그 부분을 때리는 겁니다. 중국 종 아래에 손을 넣어보면 두께가 금세 얇아지는 게 한 손바닥 크기에서 느껴질 정도입니다. 반면 우리 종은 위로 올라갈수록 두께가 얇아지는 정도가 크지 않습니다. 범종의 밑동 두께는 보통 20cm가 넘는데 이 정도 두께가 서서히 얇아집니다. 높이 3.75m의 에밀레종은 25cm에서 11cm까지 천천히 얇아집니다. 그래서 같은 크기면 우리 종이 중국 것보다 무겁습니다. 에밀레종은 18.9톤, 보신각종도 19.66톤에 달합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이런 내면도 맥놀이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장인의 작업장에는 올해 강원도 양구로 향할 범종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직 약품 처리를 하지 않아 종에서는 노란 금빛이 났습니다. 조만간 한 교수가 소리를 ‘잡으러’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범종의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쳐보면 유독 떨리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겁니다. 그 무진동의 영역을 찾아내, 종의 표면을 살짝 갈고 진동을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만든 종은 10년 정도 지나야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장인은 그걸 “쇠가 풀린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쇠가 풀리길 기다리는 종 가운데 낙산사 종도 포함돼 있습니다. 2005년 화재로 망가진 낙산사 종을 다시 만들어줄 때, 하나 더 만들어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주문 없는 제작, 종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충북 진천에는 벌써 종 박물관이 세워져 그가 기증한 수많은 범종이 화음을 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범종 제작 기술은 보신각종을 새로 만들던 1985년보다 한층 나아졌습니다. (옛날 보신각종은 지금 박물관에 있습니다.) 거대한 범종의 일부를 따로 따로 조각해 전체를 맞춰나가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6년 전엔 특허도 냈습니다. 어렵사리 기술을 전수해 놓으면 쪼르르 나가 따로 사업을 차리는 악순환이 반복돼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기술은 나아졌지만, 진화를 계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성종사’ 직원은 10명이 조금 넘습니다. 막내는 50대고, 40대도 없습니다. 60대가 청년회장 한다는 시골 마을 같습니다. 범종 하나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 정도입니다. 그 1년 동안 동시에 3개 정도 만들어야 회사가 돌아갑니다. 최근에는 중국이나 대만에서 고가의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회사 운영에 큰 걱정은 없고, 장인도 수수께끼를 연구하며 재미있다고 했지만,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은 어쩔 수 없습니다. 수수께끼는 누가 풀어낼 수 있을지. 우리 범종 맥놀이의 맥이 언제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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