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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잘나가는' 로스쿨 모범생의 '초라한' 윤리의식

[취재파일] '잘나가는' 로스쿨 모범생의 '초라한' 윤리의식
# 시험 문제 훔치려고 교수 컴퓨터 해킹?

연세대학교 로스쿨 학생이 교수 연구실 컴퓨터를 해킹하고 시험지를 빼내려다 적발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의혹이 알려진 건 한 인터넷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면서부터입니다. 지난 16일 낮 법학전문대학원생 인터넷 커뮤니티 '로이너스'에는 연세대 로스쿨 1학년 학생이 2학기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빼내려고 교수 연구실에 몰래 들어갔다가 적발됐다는 소문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은 이후 삭제됐지만 다른 커뮤니티에까지 빠르게 퍼지면서 기사화됐습니다. 유명 사립대 로스쿨 학생이 시험지를 훔치려 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교수 컴퓨터를 해킹하는 대담함까지 더해져 해당 소문의 진위 자체가 논란이 됐습니다.

취재 결과, 연세대 로스쿨에서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연세대 로스쿨 1학년생 24살 최 모 씨는 지난 10일 밤 교수 연구실에 잠입했습니다. 평소 교수가 출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교수가 사무실을 비운 사이 몰래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몇몇 학생들이 사무실 복도를 지나치면서 출입문 마스터키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이를 수상히 여겨 보안업체에 연락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나온 보안 업체 직원들이 문을 따고 들어가면서 사무실 안에 숨어 있던 최 씨는 덜미를 잡혔습니다.

발각 당시 최 씨는 훈계를 듣고 귀가했는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건 해당 교수 컴퓨터에 꽂혀 있던 USB가 발견되면서부터입니다. 교수가 USB 안에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몇몇 학생들에게 물어봤는데, 알고 보니 해당 프로그램은 컴퓨터의 내용을 한 시간마다 다른 곳으로 전송하는 '해킹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최 씨는 교수의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와 파일들을 실시간으로 자신의 컴퓨터에 전송받으면서 시험문제를 미리 알아내려고 한 겁니다.

해당 교수가 얼마 전 컴퓨터를 포맷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시험에서부터 이미 부정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다른 교수들의 컴퓨터엔 악성 코드가 이미 심어져 있고, 해당 교수의 컴퓨터는 최근 포맷돼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하려고 침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실제로 최 씨는 지난 학기 전체 과목에서 최고 학점 A+를 받았습니다.


# 학내 처분이면 충분하다?

결국, 학교 측은 기말고사 문제를 다시 내고 최 씨에 대한 징계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최 씨가 실제로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하려고 했는지 확인 중이며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확인되면 모든 과목 성적을 'F 학점' 처리하고 이에 따른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교 측은 오는 23일 예정된 징계위원회에서 최 씨의 진술과 지도교수의 의견, 사실 관계 여부 등을 종합해 학칙에 따라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형사 처벌 여부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면 따로 수사 의뢰를 하지 않겠단 겁니다.

학교 측의 대응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물론 형사 처벌이 능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학생의 철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이기엔 도를 한참 넘어섰습니다.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 무단으로 접속해 정보를 빼내는 행위는 명백한 사이버 범죄입니다. 시험에서 일어난 부정행위는 학교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컴퓨터 해킹과 같은 문제는 단순한 학칙 위반을 넘어선 위법행위이므로 조금 더 철저한 수사와 대응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할 성인이, 게다가 법조인이 되고자 공부하는 대학원생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법은 한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한 최소한의 약속이자 규범입니다. 학교 측은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에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 서울변호사회는 논평을 통해 "그동안 로스쿨들이 '시험에 의한 선발'이 아닌 '교육에 의한 양성'을 강조해 왔는데, 과연 법조인의 기본소양이 제대로 교육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로스쿨 측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학교 입장에선 학생 한 명의 잘못에서 불거진 문제로 비난받는 것이 억울하고 뼈아플 수 있지만 꼭 새겨들어야 할 비판입니다.


# 공부만 잘 하면 된다?

최 씨는 서울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연세대 로스쿨에 진학했습니다. 개인적인 배경까지 알 순 없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며 ‘모범생’으로 살아왔을 이력은 눈에 선합니다. 부정행위만으로 쌓아올린 탑은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 그는 과정보다 결과를, 노력보다 점수를 중시하는 사회 문화에서 어떤 가치관을 배워왔을까요. 

혹시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다른 잘못들은 묵인되고 용서되는 문화에서 자라오진 않았을까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선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이 문제가 비단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단 생각이 듭니다. 오로지 점수만을 중시하는 지금의 잘못된 교육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그릇된 윤리의식을 심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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