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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하 47도에도 견뎠는데, 인간의 탐욕 앞에선…

붉은점모시나비 부활을 꿈꾸다

[취재파일] 영하 47도에도 견뎠는데, 인간의 탐욕 앞에선…
“새하얀 모시 적삼에 붉은 점을 찍은 것 같은 고운 자태”

“붉은점모시나비”의 이름에 담긴 의미다. 그러나 같은 나비를 보고도 서양에서는 다른 이름을 생각해 냈다. “Apollo Butterfly”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의 신”인 아폴로(Apollo)에서 따온 것인데 반투명한 흰색 날개 위의 붉은 점을 보고 태양을 떠올린 듯싶다.

“태양 나비” “강렬한 붉은색” 이름의 어감과 빛깔의 분위기 탓에 무더운 기후를 좋아할 것 같지만, 그런 선입견과 달리 이 나비는 추운 곳을 선호하는 한지성(寒地性) 곤충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추위를 견디는 능력만 놓고 본다면 감히 신(神의) 이름을 사용해도 불경스럽지 않을 만큼 탁월하다.

붉은점모시나비의 자세한 생활사와 생체능력은 최근에야 부분적으로 자세히 밝혀지고 있다.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라는 민간 곤충연구소가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 7년째 붉은점모시나비의 증식 연구를 진행하면서 밝혀낸 사실들은 매우 특이하고 놀랍다.

붉은점모시나비는 5월에 교미하고 6월 전후로 산란을 마치고 죽어 버린다. 여느 나비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후부터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 나비는 얼마 후 알에서 깨어나 다시 애벌레-번데기-성충의 단계를 거치면서 1년에 몇 번씩 번식하지만 붉은점모시나비는 6개월 이상 알 상태로 있으면서 초겨울을 맞이한다. 이후 겨울이 깊어가는 12월에 부화해 애벌레 상태로 한겨울을 맞이한다. 추위에 맞서면서도 조금씩 성장해 늦은 봄 번데기를 거쳐 5월 중.하순 성충으로 부화하는데 알에서 다시 알 상태로 한살이 하는데 꼬박 1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다. 호랑나비가 1년에 3번, 배추흰나비가 4~5번 번식하는 것에 비하면 더뎌도 너~무 더딘 편이다.

번데기나 알 상태로 겨울을 나는 일반 나비와 달리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보내기 때문에 추위에 견디는 능력은 탁월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홀로세생태보전연구소가 연구한 결과 알 상태로는 영하 47.2도까지 견디고 1령의 애벌레상태로도 영하 35도의 강추위에도 살아남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밤나방이 영하 12~13도, 배추좀나방이 영하 7~8도를 견디는 것에 비하면 가히 놀랄만한 능력이다.

추위에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건 이 나비가 가지고 있는 내동결(Antifreezing) 물질 때문이다. 보통의 곤충이 기껏 1~2종만 가진 것에 반해 이 나비에게는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4종류의 내동결 물질이 있다고 한다. 추위에 견디는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다른 나비와 달리 1년에 1번만 번식하는 게 아닌가 추정된다.  

이 나비의 독특한 생태는 먹이활동에서도 확인된다. 애벌레 단계에서는 “기린초”라는 식물만 먹고 자란다. 그런데 성충이 되면 먹이 식물이 바뀌어서 “엉겅퀴”나 “쥐오줌풀” 같은 식물의 꿀을 빨아 먹고 산다. 이 때문에 먹이식물의 존재 여부에 따라서 이 나비의 생존이 좌우되곤 한다. 

1년에 1번밖에 번식하지 못하는데다 특이한 먹이 습성,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이 나비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멸종위기종으로 귀하게 대접받고 있다. 게다가 추위에 견디는 탁월한 능력이 오히려 최근에 진행되는 지구온난화에 더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1970년대 전국적으로 폭넓게 분포하던 붉은점모시나비는 지난 2002년에 단 10곳에서만 관찰되었고, 다시 9년 뒤인 2011년엔 단 3곳에서만 확인됐다. 기후 온난화도 문제지만 인간에 의한 희생이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개설과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됐고, 아름답고 귀한 만큼 과도한 채집이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나비가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이 나비에 대한 표본 수요가 많아 불법 채집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나비 날개의 붉은 점이 일본 국기의 태양을 연상시킨다며 일본인들이 더 이 나비에 집착한다고 한다. 

현재 남한에서 이 나비의 최대 서식지는 강원도 삼척이다. 지난 2002년 처음 이 서식지가 확인됐는데 2004년 모니터링 결과 316개체가 확인됐다. 그러나 이곳에 붉은점모시나비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개체 수는 해마다 줄어들었다. 2007년엔 153마리, 2009년엔 80마리, 급기야 2010년엔 31마리까지 급감했다.

붉은점나비 캡쳐_5


원주지방환경청은 이곳의 개체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병행했다. 우선 서식지 환경을 개선했는데 주변 토지를 임차해 농약이 살포되지 않게 하고 애벌레 먹이식물인 기린초와 성충의 먹이식물인 엉겅퀴를 대량으로 식재하고 관리했다. 동시에 인공으로 증식시킨 나비를 해마다 방사했다. 2011년에 암수 10쌍, 2012년 암수 20쌍, 그리고 올해는 암수 30쌍을 이곳에 풀어줬다. 나비 불법 채집을 막기 위해 감시 초소를 설치하고 감시 인력도 배치했다.

다행히 노력의 결과로 줄었던 개체 수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39마리, 올해는 168마리까지 이곳에서 관찰됐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이 사업이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고 강원도내 다른 지역까지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보다 다양한 서식지가 확보돼야 이 나비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 동안의 연구로 인공증식 방법도 알아냈고, 서식지 환경 개선 사업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추가 사업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인간의 욕심이다. 일부 탐욕스런 사람들의 불법 채집을 막지 못한다면 아무리 개체수를 많이 늘여도 멸종 위기의 꼬리표는 떼기 어려울 것이다. 여린 생명체로 영하 30-40도의 추위도 충분히 이겨내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것을 보면 인간의 탐욕은 한겨울의 그 매서운 혹한보다 더 가혹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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