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 눈치가 빠른 분들이야 바로 알았겠지만, 사실 두 지역 모두 일반인에게는 무척 생소한 지명입니다. 제주도 산간, 그것도 1700m 가까운 고지대에 있는 곳인데요. 이 지역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엄청난 비 때문입니다. 100mm도 큰 비인데 1000mm 가까운 비가 기록됐으니까요.
큰 비가 내릴 것 같다고 이미 전해드린 적이 있지만 사실 이 정도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말이 1000mm이지 불과 이틀 사이에 이 정도의 비가 내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거든요. 서울은 물론 전국 대부분 지방의 연 평균 강수량이 1200에서 1400mm 수준이니까 일년에 내릴 비가 단 이틀 만에 쏟아졌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꼽으라면 오래 이어진 비이면서도 지역적으로 강수량의 차이가 컸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서울에도 60mm가 넘는 비가 내리는 등 전국적으로 50mm 안팎의 비가 내렸는데 유독 남해안과 제주도 산간에는 폭우가 이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높은 산에 둘러쌓인 지역에 비가 집중됐습니다.
하동과 보성에 300mm 안팎의 엄청난 비가 쏟아졌고 순천과 남해 장흥과 완도 등 대부분의 남해안에는 200mm 안팎의 비가 기록됐습니다. 놀라운 것은 제주도 산간의 강수량인데요. 윗세오름과 진달래밭에 900mm 안팎의 비가 내린 것입니다. 특히 윗세오름에는 970.5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는데 월요일(27일) 하루만 810mm의 호우가 기록됐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기록이 두 번째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2004년 8월 18일에 878.5mm의 비가 쏟아진 것이 최고 기록이고 이번이 그 다음이라는 것이죠. 2004년 8월에는 태풍의 북상에 따라 태풍 앞에서 발달한 먹구름이 장대비를 퍼 부은 것이고 이번에는 한 여름도 아닌 초여름에 발달한 호우구름이 엄청난 양의 물폭탄을 터뜨린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 여름의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죠. 이미 두 지점 모두 올 한해 2000mm 가량의 비가 기록된 이후여서 올해가 끝날 무렵에는 연 강수량이 5000mm를 웃돌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비가 올 수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두 곳의 지형적인 특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 포탈이 제공하는 지도에서 두 곳을 찾아보면 윗세오름은 한라산의 서쪽에 진달래밭은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고도로 따지면 윗세오름이 조금 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은 백록담이 있는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가파르게 솟는 지형을 갖고 있는데요. 두 지역 모두 이런 가파른 지형의 시작점과 매우 가깝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비구름이 발달하려면 강한 상승기류가 있어야 하는데 두 지점 모두 해상에서 불어온 바람이 높은 산에 가로막혀 급격하게 상승하는 지점으로 공기가 강제로 상승할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급격하게 발달한 먹구릉에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와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수치를 그대로 믿어야 할까요? 두 지역 모두 기계가 자동으로 관측하는 곳이어서 기계의 오차는 없는 것일까요? 기상청에 문의를 했더니 매우 당당하게 기계 오차를 고려한 관측치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제대로 기록된 강수량이라는 것이죠. 여러 차례 검증을 거쳤고 학계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내린 비의 양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일 강수량 기록은 2002년 태풍 루사때 강릉이 기록한 870mm입니다. 이 때 강릉 전체가 물에 잠겼고 수조 원의 재산피해도 발생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재해였는데 아무리 제주도가 물이 잘 빠지는 용암지대라고 해도 같은 양의 비에 피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는 아닙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직접 확인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강수량은 지구가 둥근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요.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