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로 햇살이 들어오면 아버지가 피우시는 담배 연기가 아른아른 무늬를 만들어내던 모습, 제 인생에 가장 먼저 접한 ‘담배’는 이렇듯 ‘간접 흡연’이었습니다. 대여섯 살 땐 아버지에게 담배 연기로 동그란 도너츠 모양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유아가 있는 집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던 모습, 1980년대에는 별로 이상한 장면도 아니었죠. (이후 사회 분위기가 바뀌는 걸 반영하듯, 아버지는 흡연 장소를 베란다로 바꾸셨고,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16년 전쯤 완전히 담배를 끊으셨습니다.)
우리가 담배를 처음 접하는 계기는 이렇듯 ‘부모의 흡연’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자라면서 접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에 담배의 이미지는 더욱 미화되고, 멋진 이미지의 담배 광고와 세련된 디자인의 담배 포장은 ‘한 번 피워 보라’고 유혹합니다.
*** 영국, 청소년 동승 땐 차안에서 흡연 금지
영국 정부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흡연자’로 자라나는 걸 차단하는 조치에 착수했습니다. 청소년들을 ‘부모의 흡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6살 이하의 청소년이 차에 함께 타고 있을 경우, 흡연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올해 안에 만들기로 했습니다. 또 호주처럼 담뱃갑 포장도 단일화할 예정입니다. 청소년들이 새롭게 흡연자 대열에 들어서는 것을 막겠다는 겁니다. 영국 정부는 이미 지난 해 4월부터 슈퍼마켓에 담배를 진열해 팔 수 없도록 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아래 사진 속 금연 캠페인처럼 흡연, 특히 미성년자의 간접 흡연에 대한 경고를 계속 보내왔습니다.) 담배로 인한 질병과 사망,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흡연에 대한 규제는 이미 전세계적인 추세입니다. EU 집행위원회도 앞서 지난 해 12월, 담뱃갑 포장 규제(포장의 7%를 흡연 경고문과 사진으로 채워야 함)와 첨가물(박하, 바닐라, 딸기 향이나 색소) 금지 등 금연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 호주, 담뱃갑 포장의 혁신
지난 해 가장 화제가 됐던 건, 뭐니 뭐니 해도 호주의 정책이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담배 포장 단일화 조치를 단행했죠. 이 사진처럼 말입니다.
호주에서 판매되는 담배는 모두 똑같은 황록색 포장에 경고사진과 문구를 커다랗게 표시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담배 피울 맛이 뚝 떨어질 것 같은데, 흡연자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회사도, 브랜드도 예외는 없습니다.
세계적인 유명 담배 회사들은 이 정책에 반발해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호주 대법원은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디자인을 규제하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가 아니라는 겁니다.
*** 다른 나라들도 동참 움직임
호주의 정책은 세계 각국에 신선한 ‘충격’과 ‘귀감’이 됐습니다. 뉴질랜드 보건부도 호주처럼
모든 담배 포장에서 상표를 빼고 건강 경고문만 크게 넣는 단순 포장 방식 도입하기로 하고 올해 말까지 관련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기로 했습니다. 캐나다도 호주 방식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호주가 단행한 ‘담배 포장 단순화’의 효과는 연구로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흡연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브랜드 중독성을 낮출 뿐 아니라, 흡연자들끼리의 동질감을 낮춘다고 영국 스털링 대학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흡연 왕국’ 으로 불리는 러시아에서도 공공 장소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푸틴 대통령이 지난 달 25일 최종 서명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오는 6월부터 학교와 각종 문화 체육 시설, 정부기관, 공항 등에서 흡연이 금지되고 회사나 사무실은 흡연실을 마련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모든 언론매체의 담배 광고 금지하고 길거리 간이 매대에서 담배를 파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 한국은?
한국은 어디쯤 있을까요? 보도국 흡연자들의 담배를 모아 한 번 찍어봤습니다. 담뱃갑 디자인도 예쁘고, 이름도 멋지고, 경고 사진도 없고, 경고 문구는 별로 와닿지 않네요.
세계 보건기구는 ‘저 타르’, ‘라이트’, ‘마일드’처럼 담배의 해악을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오도 문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85개 나라가 ‘오도 문구’를 정책적으로 막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규정이 아직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흡연율은 44.3%. OECD 34개 가운데 무려 2위입니다.(OECD 2011년 발표 자료)
1위 그리스(46.3%)와 근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궁금하시죠? 일본은 38.9%, 프랑스는 30.6%, 영국은 22.3%, 미국은 17.9% 로 나타났습니다. OECD회원국 중 가장 흡연율이 낮은 나라는 스웨덴으로, 13.5%입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실내 금연이 확대되고, 버스 정류장이나 강남대로 등지에서 흡연이 금지되는 등 흡연자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보건기구는 한국의 금연 정책이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