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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징역 천 년' 받은 방송사 사장 기사 뒷얘기

혐의 50개에 각각 20년 형...전체로는 징역 1056년 형

[취재파일] '징역 천 년' 받은 방송사 사장 기사 뒷얘기
미국의 한 방송사 사장이 아동 음란물을 소지한 죄로 징역 1천 년이라는 천문학적인 형량을 선고받았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사건 내용은 좀 황당합니다. 지난 2011년에 대학 캠퍼스 안에서 아동음란물을 인터넷에서 내려받다가 체포됐는데 조사를 해보니 책상 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여직원들의 치마 속을 촬영한 사실까지 드러났다고 합니다. 경찰이 압수 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폐기하려다 발각되는 바람에 수사 방해, 증거인멸 혐의까지 추가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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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사진에 나오는 피터 멀로리가 바로 이 사건의 장본인입니다. TV 33이라는 지역 방송사 전직 사장이고요 (당연히 이런 불미스러운 범죄로 체포됐으니 사장은 그만뒀겠죠), 평생 사회적으로 공헌해온 점 등을 감안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오히려 그런 사회적 지위를 감안해 중형이 선고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약간 바뀌는 것 같기도 하지만 대체로 힘 있는 사람에게 ‘사회적 기여’ ‘경제 발전에 기여’ 등의 명분을 붙여서 관대하게 처벌하는 우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죠. (또, 형사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의 실명에 사진까지 공개되는 것도 우리와는 많이 다른 부분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사실 이 사건 자체는 아닙니다. 징역 1천 년이라는 천문학적인 형량과, 그리고 이 사건을 선고한 법원에 대한 국내 기사들의 오류를 보면서 우리와는 다른 미국의 법원 체계를 간단히 설명드리려는 겁니다.

기사 원문을 찾아보니 이 사건 판결 자체는 시간이 좀 지난 것이더군요. 연합뉴스가 처음 보도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는데, 실제로 판결이 선고된 것은 지난달 12일입니다. 판결을 선고한 곳은 미국 조지아주의 트룹 카운티(Troup county) 법원입니다. 법원의 명칭은 ‘Troup County Superior Court’입니다. (아래 사진이 문제의 법원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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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사를 보면, 오늘 아침 조선일보 1면에서는 ‘트루프 카운티 고등법원’이라고 썼습니다. 뉴욕 특파원을 비롯한 3명의 기자 이름이 바이라인에 올라있습니다. 연합뉴스와 동아일보는 ‘트룹 카운티 최고법원’이라고 썼네요. 하지만 이 법원의 명칭은 그냥 ‘트룹 카운티 법원’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원은 주 차원의 사법 체계에서 1심을 담당하고 있는 법원이니까요. 여기서 말로리가 항소를 하면 주 항소법원으로 올라가고 그다음에 주 대법원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물론 말로리가 연방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연방법원으로 갈 수도 있죠.

미국에서는 1심 법원이 참 중요합니다. 사실 심리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1심에서 끝난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배심원이 등장하는 재판은 1심입니다. 형사 사건의 경우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검찰은 항소도 못합니다. 그걸로 끝이죠. 그래서 1심에서는 강력한 증거조사와 심도 있는 집중적인 심리를 벌이게 됩니다. 일부 작은 주에서는 가운데의 항소법원이 없어서 1심 이후 곧바로 주 대법원으로 가는 곳도 있습니다.

이처럼 1심 법원이 중요하다보니 명칭도 대단합니다. 이번에 재판을 한 곳은 Superior Court였죠. 그러니 최고법원, 고등법원 같은 것으로 오해한 거죠. 뉴욕주의 경우는 1심 법원이 Supreme Court입니다. 우리 대법원 명칭이 바로 Supreme Court죠. 미국의 경우도 연방대법원의 명칭도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입니다. 그러다보니 뉴욕주에서 1심 판결이 난 경우 종종 뉴욕주 00카운티의 ‘대법원’에서 이러이러한 판결이 났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하지만 미국 뉴욕주의 주 대법원은 Court of Appeals입니다. 얼핏 보면 이게 항소법원 같죠. 나름의 전통이 있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사진이 미국 뉴욕주 대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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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멀로리에 대한 형량 얘기입니다. 무려 징역 1천 년입니다. 우리의 경우 유기징역 상한이 기본 30년에 특별한 가중 요건이 갖춰지면 50년으로 올린 것이 지난 2010년의 일입니다. 그 전에는 유기징역은 기본 15년에 가중을 할 경우 25년으로 되어 있던 것에서 그나마 크게 올린 거죠. 하지만 지금도 그 이상의 형은 무기징역과 사형입니다. 무기징역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수감 생활을 하고 나면 유기징역으로 감형되고 또 결국에는 가석방도 가능해집니다.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사형제도의 여러 문제점에는 동의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 집행 방식으로 볼 때 무기징역형을 대안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미국의 양형 방법을 참고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각각의 형량을 모두 더하는 방식입니다. 멀로리의 경우 모두 60개의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다고 합니다. 아동 음란물을 여러 개 소지했는데 각각이 독립된 범죄로 인정됐다는 겁니다. 판사가 50개의 죄목에 대해 각각 20년씩을 선고하니 합산하면 1천 년이 되는 겁니다. 나머지 10개의 죄목에 대해서는 각각 5년씩의 형을 선고했는데 그건 동시에 형기가 진행되도록 했답니다. 어차피 1천 년에 50년 형을 별도로 추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겠지요. 사생활 침해죄에 대해서도 5년 형을, 증거 훼손에 대해서도 1년 형을 선고했는데 역시 형기는 동시에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실제 선고의 총량은 1천 56년인데 56년을 깎아준 셈이네요. (아래 사진은 이 사건을 자세하게 전한 현지 인터넷 기사인데, 천문학적인 형이 선고된 직후의 멀로리의 모습이 실려 있습니다. 원래의 기사는 http://lagrangenews.com/view/full_story/21701020/article-Full-story--Mallory-sentenced-to-1-000-years?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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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성범죄에 대한 대응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해외 주둔 미군들이 현지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가장 관대한 처벌을 받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모든 나라들의 경우를 비교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짧은 징역형에 심지어는 집행유예까지 선고되는 건 거의 우리나라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조건 중형이 능사는 아니지만 우리가 성범죄에 대해 너무 사회적으로 관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 인도의 버스 성폭행 등의 기사를 쓰면서 인도 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관대한 분위기가 이런 황당한 범죄의 한 사회적 요인이라는 기사를 썼는데 우리는 과연 인도를 그렇게 훈계할만한 처지가 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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