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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어머니, 철가방 배달 꾸며 대학 잠입한 까닭은

<앵커>

참 대학이 뭐길래, 수험생과 그 어머니가 철가방으로 위장까지 하고 대학 사무실에 잠입했습니다.

교육담당 이대욱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이 기자.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겁니까?



<기자>

네.

이 학생은 입학사정관제 지원학생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지원 서류 가운데 하나인 생활기록부를 깜박 한 겁니다.

학생은 추가로 서류를 제출하려 했지만 이미 마감시한이 지나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부터 두 모녀의 007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고향인 부산에서부터 중국집 철가방과 오토바이 헬멧을 준비했습니다.

마치 배달 때문에 온 것처럼 위장하려 한 겁니다.

모녀는 새벽 청소를 위해 사무실 문이 열릴 때를 노렸고, 세 차례 시도 끝에 잠입해 성공해 생활기록부를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지원서류 가운데 일부를 또 가지고 나온 겁니다.

첨부 서류는 50장까지 내도록 돼 있는데, 이 학생은 100장이 넘는 서류를 냈었고,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겁니다.

그런데 또 막상 서류를 갖고 나온 뒤엔 혹시 학교 측이 서류가 없어진 걸 알아챌까 걱정이 된 겁니다.

그래서 다음 날 새벽, 다시 서류를 가져다 놓기 위해 잠입했다 경비원에 적발이 된 건데요.

그런데 학교 측은 두 모녀가 사무실에 잠입하기 전에 이미 서류 전산입력 작업을 끝낸 뒤여서 어차피 두 모녀의 007작전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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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근데 내야 될 서류가 50장이나 될만큼 많이 필요한가요?

<기자>

기본적으로 자기소개서, 생활기록부가 있을 테고요.

그리고 그 내용을 입증하는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10개에서 15가지 종류의 첨부 서류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요.

요즘 학생들 봉사활동이야 너무 흔하고, 영어 공인점수에 각종 경시대회 입상 실적까지, 증빙 서류를 채우려면 수험생들은 이른바 스펙 꾸미기에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범/교육평론가 : 내 친구는 경시대회 준비를 해서 입상 경력이 있어요, 그 경력을 써먹으려고 하는데 나는 경력이 없어요, 어떤 생각이 들까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고등학생 모의재판 경시대회 모습입니다.

[원고 소송 대리인 김 원고 변호사입니다. 원고도 참석하였습니다.]

[피고 측 소송대리인 : 네, 박 피고 변호사입니다.]

학교에서 이런 경시대회 일일이 챙겨주는 건 불가능합니다.

스펙 치장을 노린 각종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각종 경시대회를 위한 사교육 시장에는 고시 합격자까지 동원되는 실정입니다.

[현직 고교 교사 : 스펙을 쌓아야 하니까 얘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혼자 준비하면 입상하기 힘들겠죠.]

자기소개서라는 건 자기가 어떻게 생활했고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솔직하게 써내는 거죠.

그런데 최근엔 자기소개서 경연대회까지 생겼습니다.

자기소개서의 어떤 기준으로 가린다는 건지 어처구니없을 뿐입니다.

<앵커>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뭔가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좀 이상하게 변질되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기자>

네.

입학사정관제는 학교 성적, 시험 점수로 줄세우기 하는 기존의 입학 전형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무엇보다 학생의 인성, 잠재력이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여야 합니다.

그런데 상당수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를 성적 좋고 집안 좋은 학생을 뽑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정병오 대표/좋은교사운동 : 좋은교사운동 면접관들이 충분히 검증하는 면접을 하면 아이의 내면을 알 수 있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죠.]

즉, 학생의 내면을 꼼꼼히 살펴보려면 심층면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많은 노하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대학은 편하고 안전하게 가는 길을 택하는 건데, 스펙에 점수를 매기는 게 대학 입장에선 가장 편한 방법이었겠죠.

제가 만난 한 대학생은 면접 때 들은 질문이 집이 어디냐, 취미가 뭐냐 이런 질문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대학 스스로 과연 학생의 잠재력을 들여다 볼 능력이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보완을 하던지, 아니라면 학생과 학부모 부담만 높이는  입학사정관 선발 비율을 줄이는 게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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