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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 빠진 급발진 조사…누구를 위한 조사인가?

급발진 규명한다더니 운전자와 싸움만…"제조사만 좋은 일"

[취재파일] 김 빠진 급발진 조사…누구를 위한 조사인가?
지난 5월 사상 최초로 정부가 급발진의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나선 뒤 첫 발표 현장.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 사고기록장치 분석 데이터 등 화려한 브리핑 뒤 마지막으로 정부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 ‘급발진 원인을 운전자 과실’이란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최선을 다해 객관적으로 조사했다지만 주위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제조사 편드는 조사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발선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단 한 번도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은 입증된 적도 없고 과학적으로 규명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국토해양부는 모든 전문가와 모든 과학적 수단을 총동원해 최근 논란을 일으킨 6건의 급발진 의심사고를 조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급발진을 일으키는 차량결함 원인을 밝혀내고 의혹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뒤 6건 중 두 건에 대한 첫 조사 결과는 결국 운전자 과실, 다른 말로 하면 ‘제조사는 잘못 없음’이었습니다.

지난 3월 용인시 풍덕천동에서 일어난 스포티지 급발진 사고는 사고기록장치(EDR) 분석 결과 운전자가 충돌 전까지 브레이크를 한 번도 밟지 않았고, 가속 페달을 4000RPM까지 밟아 급발진이 일어났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브리핑이 열린 국토부 기자실에서 지켜보던 스포티지 운전자 이모 씨는 “제 얘기도 들어보세요”라며 직접 단상 위로 올랐습니다. 우회전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았고 우회전이 끝난 직후 급발진이 발생했기 때문에 자신은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끝내 정부가 국민 편이 아닌 제조사 편이 돼 조사를 벌였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이후 정부측 전문가와 이 씨와의 설전, 공방이 1시간 가량 오갔지만 양측은 평행선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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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의 모양새가 이상했습니다. 목표는 세간의 의심을 받고 있는 ‘급발진’의 차량결함 원인을 규명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급발진 의심사고를 경험한 뒤 고통받고 있는 개인과 정부가 싸우는 모양새였습니다. 정부가 소비자나 국민의 편이 아닌 제조사의 편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도 남을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위한 조사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적지 않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제조사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란은 국토부 내부에서도 강하게 제기됐습니다. 국토부 담당부서의 한 직원은 “도대체 이걸 왜 정부가 나서서 하는지 나부터도 이해가 안 된다. 일이 커져버려 다른 업무를 못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도 “급발진 의심사건을 조사해보면 차량결함은 안 나타나고 운전자 과실만 입증되고 있어 우리도 답답하다”면서 “고생만 하고 성과는 없어 걱정이다”고 귀띔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정체성부터 확고히 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예산만 낭비하는 조사를 여기서 중단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대안도 있습니다. 대림대 자동차과 김필수 교수는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라면 차라리 급발진의심사고 관련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상설기구를 만드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급발진 의심사고 뒤 제조사를 상대로 대응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소송 밖에 없어 그에 따른 스트레스와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은데, 급발진도 소비자원이나 하자분쟁조정위원회 같은 역할을 해주는 기관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차량마다 사고기록장치를 필수적으로 장착하도록 의무화하고 소비자가 요청하면 반드시 공개하도록 법률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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