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자동차 업계에서는 길거리에서 특정 회사의 자동차가 눈의 띈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시장 점유율이 3%는 돼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프랑스 시장에서는 기아자동차가 1.3%, 현대자동차가 0.9%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아직 두 회사를 다 합쳐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은 안됩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점유율이 갑자가 프랑스 자동차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돼버렸습니다. 최근 푸조 시트로엥이 올 상반기에만 8억 1천만 유로, 우리 돈 1조 1천억 원이 넘는 엄청난 손실을 보면서 8천명 규모의 대규모 감원과 공장 폐쇄 등 충격적인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 정부와 노조는 경영진이 자기들의 배당은 챙겨가면서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들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자동차 판매상황이 알려지고, 상반기 손실 규모가 발표되자 더 이상 구조조정을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습니다.
문제는 푸조 시트로엥 자동차의 경쟁력이 약화된 것은 명백한데, 그럼 원인이 무엇이냐 입니다. 아르노 몽트부르 생산성재건(산업부) 장관은 의회에서 2010년 한국과 EU가 FTA를 체결한 이후 한국산 자동차의 수입이 급격하게 늘고 있으며, 특히 디젤 소형차 부문에서는 1,000%가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한-EU FTA 때문에 프랑스 자동차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푸조 시트로엥 구조조정 사태가 발생했다는 얘기죠. 그래서 EU에 한-EU FTA를 점검해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프랑스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세이프가드, 즉 긴급 수입제한 조치 적용 등을 검토하겠다는 것입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신장세가 눈의 띄는 것은 사실입니다. 올 상반기 푸조 시트로엥은 자동차 판매가 21.6% 감소하고 르노도 18.6% 줄었지만, 현대자동차는 35%, 기아자동차도 23.4% 판매가 늘어난 것입니다. 물론 2011년 6월 이전에 비해 2~3% 인하된 가격이 판매율 신장에 기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프랑스 언론에서도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국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은 관세인하가 핵심이 아니라 다양한 원가절감 효과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체코에, 기아는 슬로바키아에 공장을 세웠고, 프랑스 시장에 수입되는 자동차의 상당수 역시 인도에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7년간 무상 AS 보장’ 등 공격적인 마케팅 역시 프랑스 업체들이 따라가지 못한 요소일 것입니다. 결국 프랑스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력 저하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 마케팅 등 다양한 요소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좀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FTA를 계기로 한국 자동차의 저가 공세 때문에 프랑스 자동차가 팔리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은 아무리 봐도 억지입니다. 정치적인 공세일 뿐이죠.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을 생각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정확한 원인을 모르면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