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한민국 육군 중위였습니다. 군 복무 2년 4개월 동안 보급품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새 침낭과 새 매트리스, 새 군장 등은 간부들에게 우선 지급됐기 때문입니다. 그 외 다른 보급품도 닳거나 없어지면 바로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구멍난 양말을 신고 있는 소대원, 밑창이 너덜너덜한 활동화(운동화)를 신고 있는 소대원에게 새 보급품을 주기 위해 노력하진 못했습니다. 추가 보급이 거의 불가능했던 군대 현실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인 겁니다. 제가 부족하지 않다고 부족한 소대원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소대장의 자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군대가 12년 전 소대장이었던 저와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당시의 제가 이렇게 부끄러울 수 없는데 과연 군도 부끄러워할까요?
군은 예산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군이 책정한 운동화 한 켤레 예산은 1만1천 원인데 실제 구입 단가는 1만6천 원이라 5천 원의 차이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결국 3천7백만 원의 예산이 부족해서 구입을 하지 못했다는 건데요, 군은 장병들 복지에 쓴다며 작년보다 9백억 원의 예산을 더 받아냈습니다. 각 예산마다 지정된 지출 항목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천7백만 원조차 긴급 조달하지 못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군이 너무 경직돼 있거나 장병들에 대한 성의가 없었던 건 아닐까요?
더구나 군은 지난 3월부터 이 같은 ‘운동화 사태’를 예견해서 조달청에 긴급 조달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자신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알아달라는 건데요, 결과적으로 무능함을 자인한 꼴이 됐습니다. 지금은 7월입니다. 군은 넉 달 동안 과연 무엇을 했을까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6월 5일 이후 입소한 훈련병에겐 정상 지급했다면 못 받은 훈련병들에게 늦게라도 줬어야 하지 않았느냐고요.
카메라 렌즈에 담긴 훈련병들은 짧은 머리에, 까무잡잡한 얼굴, 잔뜩 얼어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숲 속에서 가만히 그들을 지켜만 보는데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데 무겁고 눅눅한 전투화를 계속 신고 있어야 하는 그들이 참 안쓰러웠습니다. 그들의 가족이 그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다행히 군은 운동화를 못 받은 훈련병에게 7월 말까지 모두 보급을 마치겠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언론에 떠밀려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진작에 했어야 합니다. 우리 훈련병들, 청춘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시절을 한 움큼 잘라내 나라에 헌납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군이 그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