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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근혜·황우여도 종북?

[취재파일] 박근혜·황우여도 종북?
정치권에 갑자기 '북풍(北風)'이 몰아닥쳤습니다. 이른바 '종북 논란'으로 시작된 '북풍'은 여야가 정치 공방을 벌이면서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킬 듯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대선이 가까워졌음을 실감케 합니다.

◆ 이석기·김재연 자격 논란이 발단

발단은 통합진보당 사태였습니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당선자가 결국 19대 국회에 입성하자, 새누리당은 '종북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종북 주의자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외교·안보 등 국가 기밀이 줄줄이 새나갈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새누리당은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 통합진보당 일부 의원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에서 배제하고, 아울러 이들의 대정부 자료 요구권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국회의원 자격 심사를 통해 이들의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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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그동안 통합진보당 사태는 물론 야권 내부 상황에 대해 입장 표명을 자제하던 박 전 위원장은 6월 1일 작심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또 국민들도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한 뒤 "이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지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연대에 힘입어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만큼 "민주통합당의 책임도 크다"고 공세를 폈습니다.

당사자인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김 의원은 이튿날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대학생 당원 집회에 참석해 "통합진보당에 빨갱이 종북 정당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야권연대를 흔들어 대선에서 어떻게 해서든 승기를 잡아보려는 너절한 속셈이 드러났다"면서 박근혜 전 위원장을 몰아붙였습니다.

◆ 임수경 '변절자' 발언…민주당에도 불똥

'종북 논란'의 불똥은 곧바로 민주통합당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번엔 임수경 의원의 술자리 발언이 원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임 의원은 지난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었습니다. 당시 전대협 의장이었던 임종석 전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의 추천으로 이번에 비례대표 의원이 됐습니다. 임수경 의원은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탈북자 출신 대학생에게 "근본도 없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대든다", "변절자들은 대한민국에 왔으면 입 다물고 조용히 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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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의원은 파문이 확산되자 곧바로 해명 자료를 냈습니다. 당시 탈북자 출신 대학생이 임 의원의 보좌관들에게 "북한에서는 총살감"이라고 말하자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나온 발언이었고, '변절자'는 탈북자를 지칭한 게 아니라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함께 하다 새누리당으로 간 하태경 의원을 지적한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상처를 입었을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이 가만히 넘어갈 리는 만무했습니다.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임 의원은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며,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공세에 나섰습니다. 하태경 의원도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들을 변절자라고 몰아붙이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탈북자들이 왜 변절자이고 누구를 변절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민주당의 역공…"박근혜·황우여도 종북"

민주통합당은 임수경 의원을 두둔했습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임수경 의원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해명을 믿는다"며 "당으로서 조치할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다만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공석과 사석을 막론하고 모든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환기시키도록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민주통합당은 이어 새누리당에 대한 역공에 나섰습니다. 박용진 대변인은 먼저, 박근혜 전 위원장이 지난 2002년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와 주체사상탑을 방문한 사실을 거론하며, 만경대와 주체사상탑에 왜 갔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박근혜 전 위원장이 방북기에 '북한은 우리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듯 보였다'고 적었다면서 북한을 찬양 고무한 것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박용진 대변인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에게도 공세의 화살을 날렸습니다. 황 대표도 지난 2006년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박 대변인은 특히 황 대표가 방문한 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취임일이었고, 관련 사진을 게재한 날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이었다면서 무슨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압박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의도가 박근혜 전 위원장과 황우여 대표에게 실제로 '종북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종북 주의자라고 믿을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민주통합당은 오히려 '종북 논란'과 이른바 '색깔 공세'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이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민주통합당에서는 최근의 상황과 관련해 "대선을 앞두고 색깔 공세를 펼 것이 아니라 정책 대결로 국민의 심판을 받자"는 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또 북의 위협과 북을 둘러싼 남(南)-남(南) 갈등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대북 이슈가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인지 야권에서는 '차라리 대북 이슈가 조기에 점화돼 본격적인 대선 국면 전에 정리되는 것이 대선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 터져 나온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분석도 당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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