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국민은 원내 3당이 된 통합진보당에게 그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다. 지난 22일 밤 방송된 토론 프로그램에서 한 시민논객이 던진 물음도 그런 연장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일 통합진보당 이상규 국회의원 당선자와 시민논객의 문답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의구심만 키운 꼴이 됐다. 뭐가 문제였는가?
◈ "입장이 뭔가요?"… "사상 검증 반대!"
그날 시민 논객이 던진 질문은 이랬다. "당권파의 종북주의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통합진보당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당권파의 종북주의 때문이 아닌가하는 의혹이다. 북한 인권이나 북핵, 3대 세습 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당일 토론 주제가 '통합진보당, 어디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상규 당선자 입장에서 다소 뜻밖의 질문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광의로 보자면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이 당선자는 종북이라는 말이 횡행하는 것 자체가 유감이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또 여전히 남아있는 사상 검증은 양심의 자유를 옥죄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질문과 프레임이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이 당선자는 "북한에 방북기회가 있었다. 그때 북한의 느낌은 회색빛이었다. 콘크리트 색깔이 없어 회색빛이었는데 이런 광경이 충격적이었다. 있는 그대로 북에 대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동포애적 관점, 통일의 상대방으로서 협력과 교류하는 동시에 비판할 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눈으로 북한을 이해하자는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인 셈이다.
하지만 시민 논객은 "말을 돌리시고 계신 것 같으니 질문에 명확한 입장을 밝혀달라. 유권자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전 국민이 궁금한 사안이니 답변을 부탁한다"고 다시 한 번 질문했다.
함께 출연한 진중권 교수도 "국회의원은 유권자를 대변하는 것이다. 유권자 앞에서 양심의 자유를 말할 수 없다. 유권자에게는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밝혀야 한다.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공직에 나오면 안 된다"고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북한 인권, 북핵, 3대 세습 등 이 세 가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사상 검증으로 여겨진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적인 관계로 끌고 갈 것인지 악화된 상황으로 갈 것인지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며 답변을 유보했다.
전후 사정상 이상규 당선자로선 당혹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다. 나름대로 답변을 했음에도 되묻는 시민논객과 이를 거드는 진중권 교수의 지적이 이 당선자 입장에선 뭔가 자기 고백을 강요하는 듯이 느껴졌을 수 있다. 이 당선자가 사상 검증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나며 양심의 자유를 거론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 대중 정치인과 국민 눈높이
이상규 당선자는 며칠 뒤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당시 받았던 북한 관련 질문에 대해 답을 내놨다. 언제든지 답변할 수 있는 사안이고 또 선거과정에서 개별적으로 설명했던 사안이었지만 토론 주제와 상관없이 정말 당신이 종북주의자인지 아닌지 한 번 들여다보자는 식의 의도가 읽혀 답을 하지 않았다는 게 이 당선자의 설명이었다.
사상 검증을 꼭 공안기관만 하는 법이 있는 건 아니니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아니 대중을 상대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사안을 보다 큰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형식을 따지기에 앞서 논객의 입을 통해 나온 의문점이 뭔지 알았다면 그에 답하는 게 옳았다. 이 당선자 본인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그런 질문이 유권자들로부터 많이 나왔고 거기에 대해서 계속 답변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방송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매체다. 질문의 방식이나 의도가 다소 언짢았더라도 국민이 궁금해하는 점이 뭔지 알았다면 답을 하는 게 대중 정치인의 자세다. 해당 논객과의 '갑론을박'은 차후 문제다. 평범한 (이 부분에 이 당선자가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시청자 입장들은 그렇게 받아들였으리라고 본다.) 시민이 던진 질문에 국회의원 당선자가 '사상 검증'이니 '양심의 자유'니 하며 반발하는 모습을 국민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었을까. 자고 나니 '뿔 달린 종북주의자'가 돼 있었다는 이 당선자의 말이 이를 반증한다.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을 포함해 진보세력이 원내에 진출해 활동한지도 10년이 다 돼 간다. 제도권 정당으로, 원내 제3정당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춘 의정 활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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