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 살인? 사령 카페?
그리고 2일. 용의자들이 붙잡혔습니다. 놀랍게도 용의자는 10대 남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살인에 관여한 10대 대학생도 붙잡혔습니다. 살해에 관여한 사람은 10대 남녀 고등학생과 대학생, 이렇게 3명이 됐습니다. 수사 초기에는 남녀 관계 때문에 생긴 ‘치정 살인’일 가능성에 무게가 갔습니다. 숨진 김 씨가 두 남녀 고등학생에게 헤어지라고 종용했고, 만일 헤어지지 않으면 둘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하자 김 씨를 살해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김 씨를 살해한 이들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믿는 온라인 공동체, 이른바 ‘사령 카페’의 회원이었고,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겁니다. 숨진 김 씨의 친구들의 증언도 이어졌습니다. 김 씨의 전 여자친구도 사령 카페에 가입해 있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 씨가 이를 말렸고, 이 과정에서 김 씨에게 불만을 품은 10대 3명이 김 씨를 살해했다는 겁니다. 숨진 김 씨의 친구와 직접 통화도 했습니다. 실제 김 씨는 숨지기 전 친구들에게 “여자 친구를 사령 카페의 소굴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의 계획 살인 범죄라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사령 카페 때문이라니 그 충격은 배가됐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미친 10대의 엽기적인 행각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일 발표된 1차 수사 결과는 또 달라졌습니다. 사령 카페와 관련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자주 채팅을 하던 사이였는데, 피의자들이 숨진 김 씨를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고 합니다. 피의자들은 김 씨를 채팅방에서 쫓아내기 위해 새로운 채팅방을 만들었고, 이 때문에 폭언이 오갔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이 과정에서 숨진 김 씨가 두 남녀 고등학생에게 헤어지라고 한 것도 맞고, 사령카페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도 맞지만 그게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결국 이들은 김 씨를 살해하기로 모의했고, 참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 고등학생이 사령카페에 가입한 것은 맞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었고 간간히 댓글을 다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피의자 가운데 10대 대학생은 사령 카페에 가입한 적도 없었습니다. 아직 1차 수사결과가 발표된 것일 뿐이라 내용이 변할 여지는 있습니다.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10대의 ‘일그러진 우정’에 더 가깝다는 게 경찰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사령 카페는 금세 공공의 적으로 변했습니다. 사령 카페들도 자못 당황한 분위기였습니다.
사령 카페는 왜 마녀사냥을 당했을까.
사령 카페가 정말 청소년들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곳일까. 솔직히 기자의 눈에는 그렇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죽음, 영혼, 악마, 이런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뜻을 알 수 없는 애매한 용어들이 자주 나온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청소년들의 오컬트 문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분신사바’, ‘학교괴담’은 학생들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악마를 숭배하는 음악 장르인 ‘데쓰 메탈’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건 제가 학교 다닐 때에도 쉽게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니 10년도 훨씬 넘은 얘깁니다. 시대를 초월해 있어왔던, 나쁘게 말하면 하수구 문화며 좋게 말하면 대안문화였던 셈입니다. 그간 구술로 전해지던 오컬트 문화의 공간이 인터넷으로 옮겨간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어른들도 사령과 만나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모든 화살이 사령 카페로 향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들이 클래식 음악 동호회 카페에서 만났고 이런 참극이 빚어졌다면,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에 돌을 던졌을까요. 클래식 음악이 청소년의 정신에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사령 카페는 이들을 만나게 한 일종의 가교에 불가했습니다. 아니, 실제 이들의 인연도 코스프레 인터넷 동호회에서 시작됐다니 엄밀히 따지면 가교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이들은 사령카페에서 제대로 활동도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이 주로 소통했던 수많은 공간 가운데 하나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없어진 채, 이들이 사령 카페에 가입한 이력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오컬트라는 하수구 문화, 대안 문화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담론이 쏟아집니다.
경찰 브리핑이 끝난 뒤에도 온통 사령 카페 이야기뿐입니다. 분명 큰 관련이 없다고 했는데도 사령 카페에 대한 비난은 여전합니다. 물론 경찰도 수사 초기 단계라 그런지 사령 카페에 대한 부분은 더 수사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경찰의 추가 조사와 검찰의 조사도 진행될 테고, 법원의 최종 판단도 남았습니다. 사령 카페가 이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추가로 더 나올 여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증거만을 볼 때 사령 카페와 이들의 범행을 연관 짓는 것은 무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개인적으로 언론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수사 상황을 사건의 최전선에서 알려주는 통로는 오직 언론뿐이니까요. 기자 생활을 오래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의 생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사들의 속보 경쟁 속에서, 기존 사건과 다른 ‘재미난’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하고, 또 그것을 부풀리면서 이 같은 오해가 생긴 게 아닐는지요. 그러면서 사령 카페와 관련이 없다는 경찰의 브리핑 내용도 그냥 묻혀버린 것은 아닐는지요. 결국 이번 사건은 언론의 '희망사항'대로 사건이 흘러간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청소년들의 이색 문화를 '못참는 사회'
결정적으로 대안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도 아쉽습니다. 물론 오컬트 문화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 역시 가톨릭 신자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문화를 진지하게 살펴보지도 않고 ‘살인의 원흉’으로 단정 짓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문화의 다양성에서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여성가족부가 사령 카페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니까요.
과거를 살펴봐도, 청소년들이 조금만 이색적인 문화에 접근하는 모습만 봐도 우리 사회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노래방이 처음 들어왔을 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큰 인기를 끌었을 때, 모두 청소년 탈선의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단속'이 시작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인터넷 때문에 허구한 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윤리적 엄정주의야 말로 오히려 청소년 탈선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요. 해방을 찾기 위해 이색 문화에 접근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문화의 해로움에 대한 검증도 없이 단속을 하는 것은 오히려 반감만 낳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요. 청소년들이 찾는 하수구 문화, 대안 문화를 일단 이해해주고 이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교육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건의 원인 규명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단속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를 부추기는 언론, 또 이에 부응해 단속부터 하겠다는 정부 당국의 철학적 빈곤이 아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