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석권한 퀴리부부 얘기 어렴풋하게 들어보신 분들 많으시죠. 이 똑똑한 부부가 거둔 업적 중 하나가 방사성 원소인 라듐의 발견입니다. 190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기념연설에서 남편인 피에르 퀴리는 이같은 말을 남겼죠.
"라듐은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위험한 물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 비밀을 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인류는 성숙한가 하고……."
남편인 피에르 퀴리는 3년 뒤 마차에 치여 죽고, 부인인 마리 퀴리는 1934년 백혈병으로 죽습니다. 퀴리부인의 동료 연구원들도 백혈병이나 악성 빈혈로 속속 쓰러져 요절했고요...후세의 많은 과학자들은 라듐 때문일 거라고 말합니다.
이 라듐이 자연 붕괴하면서 생기는 것이 라돈 가스입니다. 무색무취에 공기보다 무거운 비활성 기체죠...WHO에서 규정하고 있는 1급 발암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라돈 가스가 퀴리부부의 실험실에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자연 상태의 암석, 토양, 물 속에 포함돼 있는 극미량의 라듐이 지속적으로 라돈 가스를 방출하고 있죠.
라돈 가스는 자연 상태에서는 잘 흩어져, 흡입하더라도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극소량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 축적돼 농도가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실제로 이 라돈가스는 주택 벽의 균열이나 파이프, 우수관, 저층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실내에 쌓이고 있습니다. 공기보다 무거운 기체다 보니, 단독주택이나 반지하방, 아파트 1층이 더 취약한데요, 특히 환기를 잘 안시키는 겨울철에 그 농도가 높아집니다.
환경부가 지난해 단독주택 540여채의 겨울철 실내공기질을 측정한 결과, 세 집 가운데 한집 꼴(33.3%)로 라돈이 기준치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 그럼 이 라돈의 기준치라는게 뭔지 살펴볼까요?
라돈의 기준치는 148 Bq/m³로 나타내는데요, 이는 '방사선을 내뿜는 활성화된 라돈 원자가 1m³의 공간에 148개가 떠다닌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기준치는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가진걸까요? 깐깐하기로 소문난 미국의 환경보건청이 알아듣기 쉽게 비교치를 올려놓았습니다.
비흡연자가 기준치(148 Bq/m³)의 라돈에 일생동안 노출됐을 경우 폐암에 걸릴 확률은 1000명 당 7명 꼴. 이는 자동차 사망사고를 당할 확률.
기준치 정도의 라돈을 흡입할 경우가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과 같다는 뜻입니다.
라돈 농도가 기준치의 2배가 된다면 폐암에 걸릴 확률은 1000명 당 18명 꼴. 이는 돌연사 확률의 4배. 기준치의 5배가 된다면 폐암에 걸릴 확률은 1000명 당 36명 꼴이고, 이는 익사 위험의 35배.
재미있는 것은 '비흡연자일 경우'에 해당하는 확률이라는 겁니다. 흡연자가 라돈에 노출될 경우 위험성은 상상 이상입니다.
흡연자가 기준치의 라돈에 일생동안 노출됐을 경우 폐암 발병 확률은 1000명당 62명 꼴. 이는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의 5배.
흡연자가 기준치의 2배 라돈에 노출됐을 경우 폐암 발병 확률은 1000명당 120명 꼴. 이는 돌연사 확률의 30배.
흡연자가 기준치의 5배 라돈에 노출됐을 경우 폐암 발병 확률 1000명당 260명 꼴. 이는 익사사고 확률의 250배.
위에 제시된 위험성 중 최고치가 라돈이 기준치의 5배에 달할 때인 '익사사고 확률의 250배'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환경부가 측정한 가정주택내 라돈농도의 최고치는 1508.7Bq/m³로 기준치의 10배를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라돈은 어떤 방식으로 인체에 해를 줄까요? 서균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라돈은 반감기가 나흘, 생체에 흡수됐을 경우 반감기는 이틀입니다. 일단 방안에 라돈이 쌓여 있다면 최소 나흘 내내 X레이를 쬐시는 것 같다고 보시면 되고, 흡입하신다면 이틀간 X레이를 쬐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X레이선의 강도 기준이 있으니, 이 말이 엄밀하게 볼 때 정확한건 아닙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할 때, 이 정도로 잘 이해가 되는 표현도 찾기 힘듭니다.
라돈을 만약 흡입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균열 교수의 말입니다.
"물을 마셔서 물리적으로 쓸려 배출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인체 내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방사선을 방출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정도라면 예방이 상책이라는 결론이 쉽게 도출되는군요. 하루 종일 물을 마시며 요행수로 라돈 입자가 쓸려내려오길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예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이남호 환경공단 환경보건정책팀 차장의 설명입니다.
"추워서 창문을 닫아놓는 겨울철이 오히려 취약합니다. 정기적으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잘 시켜주시고, 벽의 균열이나, 창문 틈 등을 잘 막아주시면, 생각보다 라돈때문에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라돈은 WHO에서 흡연 다음에 가장 큰 폐암 원인으로 꼽는 물질입니다.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해도, 쉽게 넘길 문제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집구석 어디엔가에도 이 '침묵의 살인자'가 날아다니고 있을지 모를 노릇입니다. 이런 무서운 놈들은 피해다니는게 상책이죠. 환기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