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갤러리에 들어선다. 작가를 찾으며 그림을 찬찬히 훑어본다. 작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경찰 앞에 선다. 경찰은 00경찰서 보안과에서 나왔단다. 잠시 조사할 것이 있다며 작가를 데리고 나간다.
2006년 선무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경찰은 왜 선무 작가를 조사했을까요. 그림이 '북한 찬양' 일색이라며 관람객들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고 경찰에 신고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선무 작가가 작품을 전시할 때마다 반복되듯 이어졌습니다.
도대체 그림이 어떻기에 그럴까요?
선무 작가의 그림은 언뜻 보면 북한의 선전물 같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얼굴이 버젓이 캔버스를 차지하고 있고, 빨간 수건을 목에 맨 소년단 아이들이 그림에 등장합니다. '세상에 부럼없어라', '정말로 좋아' 같은 선전 문구도 북한 글씨체 그대로 쓰여 있습니다. '북한을 찬양한다'는 오해받기 딱 좋은 것입니다.
게다가 선무 작가는 '탈북' 작가입니다. 북한 출신이지만, 지난 1997년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넘어왔습니다. 하지만, 선무 작가는 애초에 체제가 싫어서 탈북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소년단 생활도 잠시 했었고,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북에서 미대도 다녔는데, 당시 가장 큰 꿈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탈북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습니다. 너무나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선무 작가는 잠시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나왔습니다. 온갖 돈벌이를 하고 있던 중, 북한에 선거철이 다가왔습니다. 북한에도 선거는 있습니다. 모든 인민이 100% 참여해야만 하는 '강제 선거'입니다. 만약 기권을 하면, 그것이 곧 반역이기 때문에, 선거 불참자는 정치범으로까지 몰려 바로 수용소행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당장 돌아갈 방법은 막막하고, 선거장에 나가지 않으면 정치범이 되어서 온갖 고초를 겪을 테고....... 그래서 그냥 북한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소 황당한 이유이지만, 선무 작가에게는 생과 사가 걸린 문제였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접하게 된 남한의 생활상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주체사상'이 최고인 줄 알고, '세상에 부럼 없는 줄'로만 믿고 살았던 것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중국과 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들을 거쳐 1997년 남한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라오스 감옥에 붙잡혀 갔을 때 만난 2명의 다른 북한 청년들은 생사 여부도 모릅니다. 선무 작가가 풀려나기 하루 전 어디론가 끌려 나가는 걸 목격했는데, 아마도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남한에 들어왔는데, 화가가 되고픈 꿈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특별전형으로 미대에 들어가 대학원까지 마치고 직업 작가가 됐습니다.
남한에서는 북한에서는 꿈도 못 꾸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비싸고 구하기 힘들어 한 번도 못 써 본 유화물감도 마음껏 쓸 수 있었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딱 한 번 숨어서 그려보고 얼른 불에 태웠었던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아무나 함부로 그릴 수 없는 것이었기에, 처음에는 손도 떨리고 겁도 나서 미처 그림을 다 완성하지도 못했습니다.
북한 출신 작가의 북한 소재 그림. 따라서 북한 찬양 그림이라고 오해할 만도 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먼저 김일성 그림을 볼까요.
김일성 주석이 머리를 길렀나 봅니다. 특유의 인민복에 표정인데, 머리 보양만 평소와 다릅니다. 그런데, 머리 모양이 누군가를 닮지 않았나요? 바로 예수의 머리 모양입니다. 똑같은 가발을 만들어 쓴 듯한 모습입니다. 북한에서 최고의 신은 '김일성', 남한에서 최고의 신은 '예수'. 선무 작가에게는 뭔가 비슷한 느낌이었다나요.
다음은 김정일의 전신상입니다. 포즈가 오묘하죠. 의상도 눈에 띕니다. 아디다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삼선이 간 빨간 운동복 바지에, 나이키 로고가 찍힌 상의를 입고 있습니다. 운동화도 아디다스와 나이키네요. 주체사상의 최고 지도자가 대량생산과 소비문화의 대표 아이템을 입었습니다.
소년단 복장의 이 소녀들은 수학여행중입니다.
이순신 동상이 있는 그 곳, 남한의 중심부 광화문으로 나왔습니다. 아디다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건 콜라병입니다.
단짝 친구처럼 보이는 두 소녀가 웃고 있습니다. 소년단 복장의 소녀는 손에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있습니다.
선무 작가는 통일이 되면, 위의 두 그림 같은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무 작가는 남한에서 결혼해 낳은 두 딸을 보면서,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과 현재 북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 모습과 대비해보곤 합니다. 이 아이들이 북에 살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북에 있는 아이들이 남한에 나오면 어떨까. 교육만 달랐지, 동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닫혀있는 세상을 경험했고, 그 세상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작가. 그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대단했습니다. 타임스와도 인터뷰를 했고, 미국, 호주에서 개인전도 열었습니다. 외국의 한 NGO 직원은 작가의 작업실에까지 찾아와 그림을 보고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무 작가는 그림 뒤에 자신을 숨깁니다. 아직 북에 가족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도 가명입니다. '선무'(線無)는 '선이 없다'는 뜻입니다. 뚜렷한 선이 그어진 나라에 사는 사람, 나눠진 선의 양쪽 면을 다 경험해 본 사람이지만, 아무런 선이 없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이런 이름을 지었습니다.
요즘 선무 작가는 밥상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던 날이 바로 자신의 생일날이었는데, 그 날 아침 아버지가 차려주신 생일상입니다. 쌀밥에 깍두기, 술과 지폐 한 장. 보잘 것 없는 생일상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꿈만 꾸면 고향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눈 감으면 북쪽, 눈 뜨면 남쪽"이라네요.
남한 생활 15년째이지만, 개인전을 할 때마다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고, 가족 걱정에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만 하는 선무 작가. 아직도 ‘탈북’이라는 선이 자신에게 그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언제쯤 선무 작가는 이름처럼 ‘선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