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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카다피의 '10만 양병설'

[취재파일] 카다피의 '10만 양병설'

벼랑 끝에 몰려있다고 할까요? 시민군의 트리폴리 함락 이후 계속 행방이 묘연한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유럽을 한방에 보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10만 양병설'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0만 양병설'이라! 임진왜란 당시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도 아니고,  과연 카다피의 10만 양병설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위의 사진 속에 보이는 청년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청년들은 누구일까요? 아래 4가지 항목 중에서 답을 골라 보셨으면 합니다.

1)리비아 특수부대  2) 아프리카 용병 부대  3) 아프리카 난민 4) 알 카에다

네, 답은 3번. 아프리카 난민들입니다. 영국의 일간지인 '더 인디펜던트'가 보도한 내용인데, 카다피는 시민군을 지원한 유럽에 대한 최후의 보복으로 아프리카 난민 10만 명을 유럽으로 보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북아프리카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 문제가 큰 골칫덩이인 유럽에 난민 10만 명을 풀어놓으면 유럽이 대혼란에 빠져들 것이고, 시민군에 대한 지원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보입니다.
 

                

                                   유럽으로 가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태운 선박

카다피의 10만 양병설은 '무스타파 파우지'라는 리비아의 밀입국 알선업자가 폭로한 내용입니다. 파우지는 유럽에 가기 위해 리비아로 몰래 들어온 아프리카 난민들의 밀입국을 알선하다 지난해 카다피 정권의 비밀경찰에 체포돼 극심한 고초를 겪었고, 3달 만에 뇌물을 주고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랬던 파우지가 올들어 지난 5월말 다시 비밀 경찰에 연행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다시 끔찍한 고문과 구타에 시달릴까 두려웠던 파우지에게 이번에는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비밀경찰이 파우지가 좋아하는 담배까지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카다피 국가원수가 사하라 사막 이남 출신 아프리카 난민 10만 명을 유럽으로 보내고 싶어한다. 이를 돕는 것이 애국적 임무다. 밀입국 알선을 더 열심히 해라!"

이후 파우지는 평소와 달리 리비아 관리들이 뇌물도 받지 않았다면서, 심지어 일부 난민들의 경우에는 정부가 밀입국 비용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유럽으로 가는 선박에 탄 아프리카 난민들의 모습

실제로  카다피는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 국가들, 특히 난민들의 1차 목적지이자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인 이탈리아 정부의 부탁을 받고 난민을 태운 선박을 엄격하게 단속해 줬습니다.

아래 지도에 나와있습니다만,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들을 태운 선박이 1차적으로 도착하는 곳은 이탈리아의 '람페두사'라는 섬이니다. 이곳  난민 수용소에 일정기간 살다가 난민 인정을 받은 뒤,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로 흩어져 가게 됩니다.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탈리아 람페두사섬

올들어 북아프리카에서 람페두사섬에 도착한 난민은 최소 4~5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탈리아 정부는 앞으로도 20-30만 명의 난민들이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연합 국가들도 난민 문제 책임을 똑같이 나눠가져야 한다면서 난민 분산 수용을 촉구하고 있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은 분산 수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 국가들 사이의 내부 갈등도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시민군이 트리폴리를 장악하고 카다피를 쫓아낸 뒤 유럽행 불법 이민을 막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일부에서 은밀하게 불법 이민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시민군 지도부 일부가 난민들의 밀입국을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리비아로 들어온 흑인들을 리비아에서 쫓아낼 수 있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로 보고, 이를 은밀하게 돕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흑인들 역시 리비아가 혼란에 휩싸인 지금이 유럽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리비아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시민군들이 흑인들을 카다피의 용병으로 오인하고 닥치는 대로 살해하고 있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리비아로 들어와 불법 이민 행렬에 몸을 싣는 흑인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시민군에 체포된 카다피의 아프리카 용병들

리비아에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당장 아프리카 난민 문제가 해결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정도 단속은 강화되겠지만, 아프리카 빈곤 국가들의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유럽으로 목숨을 걸고 가려는 난민들과  이들 난민들의 밀입국을 알선해주고 돈을 챙기는 업자들의 수요-공급이 맞아 떨어지면서 난민들의 불법 이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프리카 불법 난민의 문제는 리비아의 문제가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람페두사섬 수용소에 있는 아프리카 난민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난민 행렬이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갈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숱한 희생이 뒤따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럽이라는 신기루같은 꿈을 향해 목숨을 걸고 낡은 어선을 타고가다가 유럽에는 발도 딛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빠져 죽는 난민들의 희생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구명조끼 같은 기본 안전장비도 없이 지중해를 건너는 데다 먹을거리와 식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수영도 제대로 못해 익사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카다피의 행방이나 시리아를 비롯한 다른 중동 국가들의 민주화 혁명이 더 시급한 관심사로 다뤄지고 있습니다만, 멀지 않은 시기에 아프리카 불법 난민 문제가 커다란 국제 문제가 될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카다피의 10만 양병설!  그 실체의 사실 여부가 아직 정확하게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두고 봐.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는 카다피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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