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졸기拙記(죽음의 기록)는 간단하다. '연지시살지 시년이십육 然至是殺之 時年二十六' 실록은 왕이 (그 정직함을 미워해) 결국 그를 죽이니 그 나이는 26세 때였다고 간단하게 전한다. 실록이 전하지 않는, 그 열 글자 속에 숨은 스물 여섯 살의 회한과 아쉬움과 슬픔을 헤아리는 것은 모두 다 내 몫이다. 카드 결제일과 원고마감일 같은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이런 것까지 마음 속에 짊어 지고 살아야 하니 여간 고달픈 인생이 아니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사건 기자는 늘 죽음과 가까이 있다. 전국의 사건 사고를 뚠 눈으로 감시하는 밤, 전화기 너머의 소방관/경찰관들과 줄다리기를 하며, 나는 늘 죽음의 이유와 과정을 묻는다. "오늘 새벽 00시 서울 00동에서 00살 000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사망 기사의 첫 문장.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타이핑을 치다 보면, 나는 어느새 누군가의 죽음을 육하六何에 단출하게 정리한다.
2010년에는 유독 죽음이 많았다. 사건기자로서 나는 현장 한 가운데를 지나쳐왔다. 이 글은 2010년에 있덨던 사회적 죽음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천안함. 그 날은 금요일 밤이었다. 나는 청와대를 출입하는 선배 기자들과 사건팀의 회식 자리에 있었다. 노래방에서 누군가의 전화기가 먼저 울렸다. 곧이어 모두의 전화기가 하나 둘 씩 울렸고, 다 같이 회사로 돌아간 우리는 전쟁같은 상황으로 빨려들어갔다.
평택 2함대 사령부 정문 앞에 하루 종일 기다리며 유족들을 만나던 기억. 겨우 인연의 끈을 만들어 낸 전사자 어머니 1명과 두부전골을 함께 먹었던 저녁. 배를 타고 백령도로 들어갈 때 구토를 하던 동료들. 함미가 물 위로 올라올 때의 경악. 꽃비가 뿌리던 46 전사자의 영결식. 모든 것이 종료된 날. 나는 백령도에 남았다. 어부들은 영결식이 끝난 뒤에도 파도가 잔잔해지기만 하면 천안함이 가라 앉은 해역으로 나가 술과 고기를 바쳤다.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항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 기사는 원혼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됐을까 곱씹어봤다.
박용하 씨의 죽음도 기억난다. 아직까지도 그가 왜 목숨을 끊었는지 모르겠다. 장례식장에서의 지리한 기다림. 일본 팬들의 비명 속에 성남의 화장장으로 옮겨지던 시신. 납골묘 앞에서 울먹이던 스타들. 나는 엎드려 흐느끼는 그들을 비를 맞으며 지켜봤다. 누군가는 정말로 울먹이며 가늘게 어깨를 떨었고, 누군가는 어서 고개를 들고 싶은 지루함에 다리를 떨었다. 수십 명의 기자들과 함께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죽었을 때 누가 어깨를 떨고, 누가 다리를 떨지 생각했다.
삼성가 3세 이재찬 씨가 숨진 장소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잘못 찾아간 줄 알았다. 재벌가의 일원이 기거하기에는 너무나 누추한 곳이었다. 동네 세탁소 주인과 경비원들에게 고인의 일상을 물었다. 열린 창문마다 돌아다니며 투신의 흔적도 찾았다. 범 삼성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 말고는 주목할 이유가 없었던 사람. 그러나 나는 한 때 거대 기업의 수장이었던 귀공자의 쓸쓸한 죽음에 가슴이 아려왔다.
리영희 선생의 죽음.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훌륭한 분이라 사적인 감상이 생기지 않았다. 그의 회고록과 그의 대담집, 그의 저술들을 다시 찾아 읽었다. 정말 훌륭한 저널리스트, 정말 훌륭한 정치외교안보 전문가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백낙청, 박원순 등 명사들의 잇따른 축사와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 시민사회의 홍수같은 담론들 속에...나 같은 사람은 감정이입이 안 됐다. 다만 의사인 리영희 선생의 아들이 울먹이며 조사를 읽어내려갈 때, 선생도 '위인'이기에 앞서 '인간'이구나 싶었다.
연평도에서 숨진 서 병장. 순직한 젋은이는 1계급을 높여 서정우 하사가 됐지만, 나의 기억 속에 그는 언제나 해병 병장 서병장이다. 미니 홈피 대문에 걸려 있던 문장. "배야 제발 좀 떠라 휴가 좀 가자" 2006년 3월 내가 말년 휴가를 떠나기 전날 밤이 떠올랐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뒤척이던 기억. 후임들의 익살스런 모포말이. 개구리 마크를 단 A급 전투복에 반짝이는 군화를 신고 영문을 나설 때 벅찬 가슴. 이 모든 추억들이 떠오르자 나는 서병장의 죽음이 진심으로 서러워졌다. 가장 슬픈 죽음이었다.
이 모든 기억들은 이제 2010년 한 해와 함께 저물어 간다. 부모님과 여자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기에도 벅찬 기억력이지만 이들의 죽음은 기록해두고 싶었다. 모두 좋은 곳으로 가시길.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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