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궤가 일본으로부터 반환된다는 공식 발표가 있던 다음 날, '약탈 문화재 환수'와 관련해 추가 취재를 했습니다. 의궤와 관련해서 처음부터 궁금했던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는 의궤는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또 하나는 '국보급'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붙는데 국보면 국보지, '국보급'은 대체 뭘까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조선왕실의궤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우 교수님(서울대 명예교수·이화여대 석좌교수)을 찾아 뵈었습니다.
조선왕실의궤는 '국보급' 유산이지만, 국보는 아닙니다. 그런데 벌써 3년 전인 2007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죠. 한교수님은 이런 황당한 상황을 '걷지도 못하는데 날기부터 했다'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정리하셨습니다. 문제는 해외에서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본 조선왕실의궤가 정작 우리나라 안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조선왕실의궤가 대체 뭘까, 의궤에 대한 한교수님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조선 왕조 때 왕실의 주요 행사가 있어요. 예를 들면 혼례식, 장례식 또 궁중의 잔치, 국가의 여러 가지 제사, 이런 의식을 치르고 나서 그 의식에 대한 보고서로써 만든 책이 의궤입니다.
그런데 이 의궤의 기록적 가치가 높은 이유는, 행사의 절차라든지 비용이라든지 참가한 사람이라든지 이런 내역을 상세하게 적었을 뿐만 아니라, 행사에 쓰인 주요 도구들, 행사의 주요 장면들을 국가의 화원들의 손을 빌려서 이것을 천연색으로 그려놨기 때문입니다. 그 시각적인 효과가 굉장히 강한 큰 자료죠.
그래서 이 의궤는 우리가 보통 '조선왕조 기록문화의 꽃이다' 이렇게 부르죠. 그런 것이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아서 몇 년 전에 이제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상으로 등록이 됐죠. 그래서 이제는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그런 자료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국보로 지정되지 못한 걸까요.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은 1973년에, '승정원일기(국보 제303호)'는 1999년에 국보로 지정됐다는 점과 비교하면 참 의아한 부분이죠. 그 이유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합니다. 국보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서지학적인 정리와 목록화, 판본 여부 조사 등등의 사전 작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한 마디로 양이 너무 방대하고 국내외에 흩어져있어서 이런 작업이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조선왕조실록 같은 활자본이 아니라, 대부분은 필사로 하나하나 그렸기 때문에, 똑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하나하나 비교 검토한 결과물이 축적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조 작업이 완벽하게 이뤄져야만 국보 지정을 위한 서류 작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엄청난 인력과 노력,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죠. 아울러 서류 절차를 밟는 데 꼭 필요한 연구 성과물이 책이나 보고서 형태로 나온 것도 최근의 일이라고 하지요. 이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저서 가운데 하나가 한영우 교수님이 내신 책입니다. 덕분에 이제 문화재 지정을 위한 사전 작업은 상당 부분 완료된 상태입니다.
문제는 해외에 흩어져있는 의궤에 대한 조사와 연구 작업인데, 이번에 일본에서 돌아오는 의궤는 똑 같은 필사본이 국내에도 있기 때문에 이미 내용에 대한 연구작업은 끝난 상태입니다. 바꿔 말하면 반환 의궤는 국보급 유산의 일부지만, 현 시점에서 그 자체로는 학술적 가치가 크지 않다는 거죠.
반면 최근 논란이 된,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조금 다릅니다. 외규장각에 보관돼있던 의궤는 '어람용'입니다. 즉 임금님 보시라고 만든 의궤로, 글씨와 그림을 정성스럽게 쓰고 그린 것은 물론이고, 일반 닥종이가 아닌 목화솜으로 만든 비단에, 제본도 최고급으로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소장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는 국내외에 같은 것이 없는 '유일본'이 많습니다. 191종 가운데 18종이 유일본입니다. 규장각 연구원들이 프랑스 현지를 찾아가 조사연구하고 최근에는 해제집을 내긴 했지만,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의궤는 총 637종. 이 가운데 서울대 규장각에 553종, 장서각에 293종(유일본 68종), 파리에 191종(유일본 18종), 일본에 69종이 소장돼 있었습니다.(한영우 著 ‘조선왕조 의궤’에서 발췌) 이제 일본으로부터 반환되면 파리에 있는 의궤를 제외하곤 연구나 접근이 쉬워지겠죠.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도 시급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인력과 자금 지원을 아끼지 말고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의궤부터 제대로 연구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국보 지정을 고려해볼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번 취재파일 내용 대부분은 한영우 교수님 인터뷰 내용과 저서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