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업무와 관련된 사고로 다치거나 질병을 얻을 경우 산업재해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들이 낸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일터에서 다치거나 병을 얻은 노동자를 지원하는 제도지요.
정작 본인이나 가족이 업무 중에 다치거나 병을 얻은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든 관심을 별로 갖지 않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산재 승인율, 그러니까 산재 신청자에게 산재 판정을 내려주는 비율이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산재는 사고와 질병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특히 질병 쪽 승인율이 급전직하입니다.

위 표를 보시면 크게 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오면서 승인율이 크게 떨어진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무렵 중요한 변화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뇌·심혈관 판정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원인이 무엇이든 일터에서 쓰러진 경우라면 대부분 산재 판정을 내줬습니다.
하지만 2008년 7월 이후에는 일터에서 쓰러졌다고 해도, 원인이 업무와 관련됐음을 인정받지 못하면 산재 판정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둘째, 질병판정위원회가 생겼습니다. 질병판정위원회는 업무상 질병 여부를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정하기 위해 노사정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7인의 위원들(의사와 근로복지공단 직원, 산재 전문가 등이 참여)이 환자의 진료기록 등을 검토해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합니다.
산재 승인율 하락에는 위 두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한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산재 승인율이 떨어지면서 과거 같으면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는 환자들이 속속 승인 대상에서 탈락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산재 전문가들이 주로 문제를 제기하는 곳은 질병판정위원회입니다.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회의 심사 결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한 질병판정위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2~3시간 만에 수십 건의 산재 사례를 다루다보니 꼼꼼히 사안을 볼 여력이 없다. 현장에서 의사 위원이 대략 방향을 정하면 대충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습니다.
환자의 산재 판정 여부를 정하면서 사실상 생사여탈권을 쥔 판정위원장을,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맡고 있는 것도 부적절해 보입니다.
보험 재정 관리를 맡은 근로복지공단은 보험 지출 추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곳의 직원이 질병판정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산재 판정에 입김을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업들의 소중한 사재를 바탕으로 한 산재 보험은 엄격히 관리돼야합니다. 다치지도 않은 사람이, 또는 업무로 질병을 얻은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병을 얻은 사람이 보험을 타는 것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내 회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단이 자의적으로 기준을 달리 해석해, 혜택을 받을 자격이 되는 환자가 억울하게 산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