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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녀 정체 까발리기가 언론의 사명?

'4억 명품녀' 이야기로 몇 일째 언론이 시끄럽습니다. 방송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둥, 주민등록상 주소가 소형아파트다, 실제 사는 곳은 고급 대형 평수의 빌라다, 모델 출신이다 등등 그녀와 관련된 사실 하나, 하나가 기사화 되고 있습니다. 전 남편이라는 사람이 '명품녀'에 대해 떠들고 나서더니, 급기야 관련 소송이 법원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막장에 다다른 것이죠.

제가 몸 담고 있는 SBS는 정규 뉴스에서 이 명품녀 사건에 대해 일절 다루지 않았습니다. 제가 편집회의에 들어가는 신분이 아닌지라 왜 이 뉴스를 보도하지 않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만...현재 뉴스화 되는 관련 내용이 지나치게 가십성이어서 TV 뉴스로 보도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추측합니다. 만약 그런 이유로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이라면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또 그 연장 선상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언론의 보도 행태에 불만이 많습니다.

도대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치스럽게 산다고 떠벌인 여성이 실제 부자인지, 아니면 사기꾼이나 허풍선이인지 온 언론이 나서서 검증을 해야할 이유가 무엇이죠? 그 여자의 실체가 무엇인지가 4천만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인가요? 그녀가 개당 수천만원의 명품백을 몇개를 사서 들고 다니든, 듣도 보도 못한 핑크색 벤틀리 차량을 굴리든, 일반 대중에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런 정도의 내용이라면 연예 전문지나 프로그램에서 가십으로 소화하면 되지, 이른바 정론 보도를 표방하는 언론사들까지 벌떼처럼 나서서 이 난리를 피울 필요가 있나요?

그렇다고 해서 저는 이 문제를 아예 외면하는 SBS를 포함한 몇개 언론의 태도가 완전히 옳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현재 불거진 현상의 이면, 내지 수면 아래 잠겨 있는 빙산의 큰 덩어리를 짚어줬어야 합니다. 명품녀가 실제 수억원 어치의 가방을 부모로부터 받은 용돈으로 산 것이라면 마땅히 증여세를 냈어야 합니다. 하지만 명품녀는 방송에 나와서 스스로 떠들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것이지, 우리 상류층이 그런 비싼 물건을 자제들에게 사주면서 증여세를 꼬박꼬박 무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요?

지금도 서울 강남에 가면 도저히 자기 힘으로 살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값 비싼 외제차를 모는 많은 젊은이들이 우글우글 한데 이 가운데 증여세를 제대로 납부하고 차를 부모로부터 받은 경우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명품녀로 인해 불거진 우리 상류층의 증여세 탈세 문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짚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스템의 흠결인지, 담당자들의 업무태만인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 어느 신문이나 방송도 이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증여세 문제가 너무 복잡해 다루기 어렵다면 명품녀 사건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 상류층의 무배려와 몰염치를 분석해보든지요.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던 재산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서 받은 혜택이 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더더욱 큰 책임감과 배려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는 커녕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사치를 떠벌이는 세태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부 방송의 행태에 대해서 비판할 만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PD는 반드시 기획의도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프로그램은 그 기획의도가 무엇인지, 저로서는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이번에 출연한 명품녀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서 그렇지 이 프로그램에는 그동안 비슷한 류의 출연자들이 비슷한 류의 화제를 들고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랑하고, 뽐내고 했다는군요. 그런 정보가 시청자들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줍니까? 동경, 부러움, 아니면 대리만족? 저는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의의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본질적인 부분은 등한히 하거나 게을리 다루면서 표피적인 내용만 선정적으로 쫓는 것은 언론의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본질을 얘기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이런 뉴스는 안다루는 것이 더 났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저는 또한번 논쟁적인 사회 현상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저급한 능력에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론이 나서서 그 문제에 대한 발전 대안을 제시하는 커녕 사회에 오히려 부작용만 확산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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