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독립영화 30여 편을 선정해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지원하는 영화진흥위원회 사업이 있는데요.
공정한 심사를 위해 외부 심사위원들을 위촉해 합숙심사까지 벌였는데, 심사위원들이 난데없이 집단 반발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조희문 위원장이 독립영화 제작 지원작 선정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이유인데요.
대학교 영화 관련 학과 교수와 독립영화 감독, 제작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오늘(20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자신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공개하며 기자회견을 시작했습니다.
칸 영화제 출장 중인 조희문 위원장이 합숙심사가 한창이던 지난 15일 전후 심사위원 9명 중 7명에게 국제전화를 해 특정 작품 세 편을 뽑아달라고 노골적으로 청탁했다는 겁니다.
[허욱 용인대 교수/심사위원: 후보작의 번호와 제목을 명시해서 '그것이 꼭 될수있게끔 통과할 수 있게끔 부탁한다'고 말했고요. 부탁한 작품 중 하나는 조희문 위원장이 직접 출연하시는 작품이었고요.]
청탁한 세 편 중에는 조 위원장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진유영 감독의 '신필림! 그 창연한 영욕의 영화제국'이란 작품인데, 고 신상옥 감독 관련한 다큐로, 조희문 위원장이 교수 재직 시절 이와 관련한 논문을 쓴 바 있어 인터뷰하겠다고 기획서에 명시한 겁니다.
해당 기획서를 직접 본 심사위원인 허욱 교수는 "조 위원장은 이 작품에서 가장 비중있는 인터뷰이로 등장하며 조 위원장이 말할 내용을 이미 인터뷰를 했다고 생각을 들만큼 아주 자세히 기재했는데 전체 기획서의 3분의 1이 이 내용으로 채워져 있더라" 라고 말했습니다.
조희문 위원장은 '신상옥 기념사업회'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중인데다 자신이 주요 인터뷰이로 예정된 다큐를 '꼭 뽑아달라'고 그것도 복수의 심사위원에게 부탁한 거죠.
심사위원 9명 전원은 조 위원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증명도 영진위에 보내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조 위원장은 사실상 외압성 전화를 건 적이 있다고 시인했습니다.
조 위원장이 배포한 해명 자료의 일부분입니다.
"칸 현지에서 국제전화로 심사에 참여해 주신데 대한 감사 표시와 더불어 독립영화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영화가 선정되길 기대하는 심정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바 있습니다."
조 위원장은 생각보다 솔직한 편이더군요. 합숙중인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건 사실은 물론, '관심을 갖고 지켜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한 바 있다'며 특정작을 추천함을 숨기지 않았고, 게다가 '다양한 영화가 선정되길 기대하는 심정으로'라며 심사에 영향을 기치려는 의도까지 낱낱이 밝힌 셈이죠.
조 위원장은 유감을 표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리란 재발 방지 약속까지 했습니다.
제가 질의응답 시간에 '외압이 왜 아닌지 설명해달라'고 묻자 조 위원장이 한 대답 보실까요?
"외압이 아니라고 하는것이 아니라.. 그거(자신의 의견표명)을 심사위원들은 전혀 다른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이거는 부당한 개입이고 간섭이라고 받았다고 하기 때문에 저도 제 입장에선 아무리 제 취지는 이거라고 설명해도 이미 당사자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고 ... "
조 위원장은 자신은 외압 의도가 없었다 해도 심사위원들이 외압이라고 느꼈다면 그건 외압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벗어난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에게 지원금과 기술, 촬영소, 장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입니다.
그런데 가장 주업무라 할 수 있는 독립영화 제작 지원작을 선정하는 데 위원장이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사퇴가 불가피한 사안이라는 게 영화계 안팎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퇴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독립영화 주요 단체들은 곧 퇴진운동을 벌일 계획인데요.
올해 초에도 '독립영화 전용관 사업자' 선정 논란'을 빚으며 조 위원장은 영화계의 신뢰를 잃은 상황입니다. 그의 신조는 독립영화계가 너무 진보성향 일색이어서 보수 성향의 영화도 만들어지도록 균형을 맞추도록 영진위가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분이 옳다해도 이번에 그의 행동은 최소한의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입니다. 또한 독립영화계의 사퇴 압박은 앞으로 더욱 구체화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