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특히 계란말이, 계란찜, 계란후라이 등등 계란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한때 '란'이라는 이름이 '알 卵' 아니냐는 놀림도 많이 받았습니다.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고, 맛도 영양도 있는 계란.
이런 계란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페닐케톤뇨증 환자들입니다.
이 병은 선청선 질환인데, 단백질, 좀 더 정확하게는 단백질 성분의 일종인 페닐알라닌을 먹으면 소화·흡수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대사물질이 뇌나 몸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병입니다.
쉽게 말하면,
단백질을 먹으면 지능이 떨어지는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생 단백질 섭취를 가능한 한 하지 말아야만 하는 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5~6명이 이 병을 갖고 태어나고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모두 140명 정도가 있습니다.
주식이 되는 '쌀'도 '저단백'으로만 먹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저단백 쌀'이 없어서 이웃나라 일본에서 비싸게 들여오고 있습니다.
그 조차도 밍숭밍숭 맛이 너무나 없지만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전분미' 아니면 감자나 채소가 먹을 수 있는 전부입니다.
페닐케톤뇨증을 앓고 있는 5살 배기 하영이네 밥상입니다.
부모님과 하영이, 또 하영이의 쌍둥이 동생 하은이가 함께 하는 밥상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과 두부, 햄까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반찬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영이는 하은이와 달리 계란과 두부, 햄을 먹을 수 없습니다.
아빠가 물어봅니다. "하영이는 이거 왜 먹으면 안되지?"
하영이가 대답합니다. "머리가 아파서요."
하영이가 먹는 반찬입니다. 감자와 씻은 김치, 시금치 정도입니다.
밥상을 앞에 두고 너무 잔인한 일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영이 아버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병….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걸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
한창 먹고 싶은 게 많을 나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하영이 아버지는 언젠가 한 번 하영이 어머니 모르게 식빵을 손톱 만큼 떼어 하영이에게 건넸다고 합니다.
하영이가 그 빵을 받아 바로 먹을 줄 알았는데… 하영이는 그 빵을 먹지 않았습니다.
손에 들고 다니며 빵 냄새만 맡았습니다.
"냄새가 너무 좋아요."
식품회사에 다니는 하영이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사장과의 대화 시간에 딸의 병을 이야기하며,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제품을 개발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에, 식품회사 사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제품 출시를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지난 3월 제품 개발에 들어가게 됐고, 7달에 거친 연구 끝에 '저단백 즉석밥'이 출시되게 됐습니다.
일반쌀밥보다 단백질 함량은 10분의 1 정도일 뿐 아니라,
일본제품보다 훨씬 맛도 좋습니다.
가격도 일본 제품은 4천 원인데 이 제품은 천8백 원으로 그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업체가 이 제품 개발을 위해 투자한 돈만 8억 원입니다.
하지만, 1년 매출은 5천만 원이 나올까 말까 합니다.
개발비 회수는 커녕, 영원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없는 제품인 셈입니다.
이런 제품은 또 있습니다.
국내 한 분유업체가 이미 10년 전부터 만들어오고 있는 '저단백 분유'입니다.
제조 공정상 라인을 한 번 돌리면 분유를 최소한 만 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수요는 단 140명이기 때문에 90% 이상은 폐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업체로선 정말로 '남는게 없는 장사', '밑지는 장사'지만, 식품업체로서, 분유업체로서 일종의 사명감과 보람을 갖고 하는 일입니다.
아무거나 먹을 수 없어 먹기 전에 식품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무엇무엇이 들었는지 일일이 물을 때마다 "회사 기밀사항이라 말해줄 수 없다", "싫으면 먹지 마라". 이런 대답만 들었었던 환자와 그 가족들에겐 손해를 감수하고도 이런 제품을 내준 업체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이왕이면 이런 업체들이 더 많아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저단백 밀가루'도 나와서 '빵과 과자'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한 환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전분미'에 입맛이 길들여져서 다행이다. '저단백 즉석밥'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일단 출시를 했지만, 업체가 손실을 거듭하다보면 생산을 중단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이미 입맛을 버린 아이는 전분미마저도 입에 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페닐케톤뇨증 뿐만 아니라, 이름도 알 수 없는, 증상도 다양한 많은 질병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하나 다 맞춰서, 모든 손해를 다 감수하고, 제품을 만들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업체들이 만든 음식은 단순한 '밥 한 공기', '우유 한 잔'이 아닙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에게도 진정한 '먹는 기쁨'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 한 번 먹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저도 할 일이 생겼습니다.
한 3년 뒤쯤 이 제품들의 생산과 판매는 물론, 상황이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취재를 해봐야겠습니다.
'반짝 관심'에 끝나지 않고, '손해보는 장사'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 때쯤이면 하영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일텐데요.
'저단백 쌀'로 만든 흰 쌀밥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저단백 밀가루'로 만든 '빵'과 '과자'를 친구들과 함께 먹고 즐기며 밝게 크는 모습을 꼭 보여드릴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