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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러시아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설치…접근 어려워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에서 일본의 조선 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 민족의 기개를 높인 안중근 의사의 거사전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비석(碑石), '단지동맹비'가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어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주)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승용차로 4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두만강이 멀지 않은 러시아-북한 국경 민간인통제구역 추카노프카 마을(한국식 명칭 연추하리).

이 마을은 안중근 의사가 1908년 4월 러시아 지역 최초의 의병 조직인 동의회를 조직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고 이듬해 2월 7일 동료 11명과 함께 왼손 무명지를 끊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것을 맹세하고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네 글자를 썼던 역사의 현장이다.

지난 2001년 10월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안 의사의 단지동맹을 기념하기 위해 높이 3m, 너비 1.5m크기의 화강암으로 만든 단지동맹비를 마을 입구에 설치했으나 쓰러져 방치된 것을 2007년 11월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관이 인근에서 약초재배를 하는 유니젠(옛 남양알로에) 농장 앞 공터로 이전했다.

그러나 비석이 설치된 장소가 국경 안 민간인통제구역으로부터 300여m 떨어진 지점이어서 러시아 당국의 허가 없이는 출입을 할 수 없다. 또한 별도의 안내표지판은 고사하고 울타리조차 없다.

유니젠 구원모 지사장은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최초로 허가받은 자리가 다리 밑이어서 툭하면 침수됐고 급기야 쓰러져 방치된 것을 한국총영사관에서 관리상 문제로 우리 농장 공터로 이전한 것"이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이어 "당시 비문이 러시아 사람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됐기 때문에 지난 6월 광복회에서 옛 비문 위에 새로운 동판을 실리콘으로 덧붙여 놓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곳은 민간인통제구역이어서 한국 관광객이 허가받고 들어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이라며 "올 들어 이곳에 무단으로 들어왔던 한국인 관광객 2명이 러시아 당국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벌금을 문 뒤 풀려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만주·시베리아 항일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있는 수원대 박환 교수는 "비석이 국경 안에 있어 한국인의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하천 옆이어서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적당한 장소로 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복회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처음에 세웠던 비석이 러시아인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돼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도록 민간인통제구역 내에 있는 농장 앞으로 이전한 것"이라며 "비문 가운데 철자가 잘못된 것과 당시 상황에 맞지 않게 쓰인 '대한민국'이라는 표현 등은 조만간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는 외국인의 동상을 세우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동상을 세운 것도 큰 일"이라고 덧붙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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