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아랍 여성의 비애

남성 타락하게 만드는 '잠재적 유혹자'로 보는 종교적 관점때문에 부당한 대우받아

이슬람 문화권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부분은 이 지역 여성들이 겪고 있는 도무지 말이 안되는 불평등과 끝이 보이지 않는 질곡입니다.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도대체 납득이 안되거나 오래 전에 이미 극복한 악습들이 이 곳에서는 여전히 위력을 떨치며 무수한 여성들을 한탄과 실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베일을 안 썼다는 이유로,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염산 테러를 자행하거나 심지어 사형에까지 처한 탈레반의 미치광이 놀음은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슬람의 본고장 사우디에서는 가족이 아닌 손자뻘의 남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70대 노파에게 수십대 태형이 선고되고, 남자와 동행하지 않고는 여성들의 외출이 여전히 금지돼 있습니다.

상당수 아랍국가에서는 아버지의 허락없이 남자와 연애한 것이 집안의 수치라며 여성의 오빠가 이른바 '명예살인'을 저질러도 몇주에서 몇개월이면 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사촌 오빠가 결혼상대로 지목하고 아버지가 허락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혼인해야만 하는 풍습 또한 거의 대부분 아랍국가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할례나 10대 초반 조혼 풍습 등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폭력은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무궁무진합니다.

아랍이나 이슬람권에서 여성들이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근본적 원인은 여성의 존재를 남성의 조력자, 또는 남성을 타락하게 만드는 '잠재적 유혹자'로 보는 종교적 관점에 기인합니다.

이 때문에 여성은 되도록 집안에만 머물며 외간 남자와의 대면을 피해야 하고 부득이 외출할 경우엔 두 눈만 남기고 온몸을 감싸도록 요구받는 것입니다. (사우디에서는 최근 한쪽 눈만 망사를 통해 앞을 보게 하고 나머지 한쪽 눈은 마저 가려야 한다는 믿지 못할 주장이 유력 종교지도자로부터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역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남녀칠세부동석'으로 대표되는 엄격한 유교문화에서 살아 온 만큼 이네들의 정서가 100% 생경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빠르게 변화하고 교정해 온 우리와 달리 아랍과 이슬람권에서는 여성 '비하' 시각 (물론, 약자로서의 여성을 배려하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이 그 투철한 신앙심과 맞물려 균열의 여지가 거의 안보이게 공고화됐다는 점입니다.

숱한 여성들이 시대착오적인 율법 해석과 관습 아래 억울하게 희생되고 불이익을 받아 왔지만 종교가 모든 삶의 영역을 지배하는 이슬람권의 현실에서 고루하고 완고하기 짝이 없는 남성 종교지도자들의 인식이 바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입니다.

척박하고 극단적인 자연 환경에, 부당한 관습의 굴레까지 씌운 채 인고의 세월을 보내 온 이 지역 여성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할 지... 그저 안타깝게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이방인 남성의 마음은 먹먹하기만 합니다.

  [편집자주]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종군기자 가운데 한사람인 이민주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스포츠,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쳐 2008년 7월부터는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활약 중입니다. 오랜 중동지역 취재경험과 연수 경력으로 2001년 아프간전 당시에는 미항모 키티호크 동승취재, 2003년 이라크전 때는 바그다드 현지취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SBS 취재파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