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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박 반장] '정치인' 박근혜

정치부 박병일 기자입니다. 최근 한나라당이 계파 갈등에 휩싸이면서 또 다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로 많이 보셨으니 최근의 일들이야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오늘은, 이른바 '박근혜 정치'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1) 고집

박 전 대표는 한때 '수첩 공주'라고 불린 적 있었다는 것 기억하실 겁니다. 그의 정치력이나 스타일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이면을 보면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첩 공주'는 그가 미리 준비해 온 글을 읽기만 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하지만, 한번 정해놓은 기준이나 원칙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박 전 대표는 상대방이 뭔가를 제시하면 '된다' 또는 '안 된다'만 말합니다. 자신이 역 제의를 하거나 다른 조건을 걸어 협상하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엔 답답한 쪽이 양보하게 됩니다. 그를 대신해 협상에 나선 실무진조차 상대방보다 오히려 박 전 대표를 설득해 그의 마음을 돌려놓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도 그랬습니다. 작년 대선 경선 때도 그랬고, 과거 사학법 개정 논란 때도 그랬습니다. 박 전 대표의 이 고집은 자기 사람을 잡아이끄는 힘이기도 합니다. 작년 한나라당 공천 갈등 당시 그는 "계파 수장으로 전락했다"는 일부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친이측 공천 주도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에 힘입어 한나라당내 친박 의원들은 물론이고 친박 무소속 연대와 친박 연대를 대거 입성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2) 기다림

취재현장에서 박 전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1년쯤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이회창 총재가 당권을 쥐고 있을 때 박 전 대표는 전형적인 비주류 부총재였습니다. 매 회의 때마다 그가 이회창 총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급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쇄신하자는 내용입니다. 이 총재와 주류 측의 압박에 급기야 탈당했고 미래연합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말진 기자였던 저는 미래연합도 커버해야 했습니다. 한동안 지켜보다 보니 미래연합은 곧 망하겠다 싶었습니다. "박근혜의 정치 생명도  미래연합과 함께 사라지겠구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차분히 때를 기다렸고, 한나라당의 당권을 거머진 뒤 '천막 당사'라는 결단력과 '선거의 여인'으로 부활하는 저력도 보여줬습니다. 대선 경선 패배 후 그는 또다시 비주류가 됐습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또다시 비주류로 전환되는 운명을 겪었지만, 그는 또 차분히 기다립니다.

(3) 절제

박 전 대표만한 절제력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매일같이 언론의 각광을 받던 정치인 중 언론으로부터 멀어지면 금단 현상에 시달립니다. 언론 노출을 갈구하다가 자멸하는 정치인들 여럿 봤습니다. 박 전 대표는 반대로 철저히 언론 노출을 피합니다. 잦은 언론 노출로 실수가 드러나게 되면 곧바로 공격을 받을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생활도 웬만해선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를 놓고 과거의 유산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오랜 청와대 생활과 선친의 정치에서 원본을 찾으려는 이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의 흐트러진 머리나 복장을 본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4) 언변

박 전 대표는 즉흥 연설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준비된 연설을 합니다. 기자간담회에서도 질문을 예상하고 미리 머릿속에 답변을 준비해 놓는 듯합니다. 지난 2004년 천막 당사 시절 저는 당시 박근혜 당시 대표에게 돌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박 전 대표가 시장 통을 돌면서 우리 아줌마들의 심경을 잘 안다고 여러 차례 말했을 때 저는 이렇게 질문한 바 있습니다.  "대표님.. 대표님은 결혼도 안 했고, 애도 낳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줌마 심정을 이해합니까?" 주변에 있던 측근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당시 그는 미간을 잠깐 찌푸린 뒤 이렇게 답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전 결혼도, 출산도 안 해 봤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피 묻은 옷을 제가 빨았고, 어머니를 대신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어요. 진짜 엄마로서의 심경은 모를지 모르겠지만, 나름 이해는 할 수 있을 거예요." 즉흥 연설은 안 하지만, 일대 일 대화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 '기'가 있습니다. 

(5) 표정

언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는 달변가는 아닙니다. 오히려 어눌해 보이기 조차 합니다. 글씨로 얘기하자면, 박 전 대표의 발언 스타일은 볼펜으로 흘려 쓰는 대중 서체나 만년필로 가뜩 멋을 낸 필기체라기보다는 잘 깍은 연필로 한자 한자 차분히 눌러 쓰는 정자체 같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 필기도 그러합니다.) 힘을 줘 말할 때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을 나오지 않을 만큼 단호해 보이면서도, 상대에게 호감을 보이고 싶을 때는 눈가에 가는 미소를 띠우면서 사정없이 자신을 낮추기도 합니다. 정적에게 결코 여자라고 얕볼 수 없게 하면서 동시에 대중에게는 인기를 끌어당기는 힘일 겁니다.      

(6) 용병술

"박 전 대표는 어느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이 얘기는 정치부 기자는 물론 친박계 인사들로부터도 자주 듣는 얘깁니다. 친박 진영의 인사들을 구주류니 신주류니 나누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겁니다.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거부한 것을 놓고도 이런 시각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느 특정 인사들에 힘을 실었다가도 그 힘이 너무 강해진다 싶으면 다른 인사에게로 힘을 옮겨 싣습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유지하고, 동시에 서로 경쟁하게 하는 원천이라는 해석도 그래서 나옵니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용병술을 선친으로부터 배운 유산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여하튼 원칙에 대한 고집, 놀라운 절제력이 겸비돼 있어야만 이런 용병술도 가능할 겁니다.

(7) 학습

박 전 대표는 대권을 차분히 준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산업자원위, 통일외교통상위, 과학기술위, 여성위, 국방위, 행정자치위, 환경노동위, 그리고 현재의 보건복지위까지 무려 8개 상임위를 거쳤습니다. 특정 상임위에서 전문성을 쌓기보다 각 분야별로 국정 현안을 학습하고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박 전 대표는 천막 당사 시절 대표실에 큼직한 그래프를 잔뜩 붙여놓게 했습니다. 당일 당일의 경제 상황과 지역별 판세 등이 잔뜩 적힌 것들로 매일매일 자신은 물론 측근들에게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 활용했습니다. 더 큰 학습 효과는 경험에 의한 정치 학습인 듯합니다. 앞서 말했듯 비주류에서 주류로 또다시 비주류로 전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해야 생존하고 세를 키울 수 있는지를 터득한 듯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할까 합니다.

(8) 철옹성

박 전 대표를 마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큰 불만이 하나 있습니다. 박 전 대표가 지나치게 철옹성에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철옹성은 측근들입니다. 박 전 대표에게는 자유로운 질문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본회의장에 오르는 그를 붙잡고 물어봐도 때가 아니다 싶으면 대답하지 않습니다. 기자들에게 일문일답의 기회를 줄 때조차 측근들이 질문의 개수와 내용을 조율합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과잉 충성 내지 과보호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반면, 그의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으로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옹호론도 들립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미래연합을 만들었을 당시, 저는 가끔 미래연합 당사에 들러 썰렁한 당사에서 박 전 대표와 차를 마시곤 했습니다. 한나라당에 당 대표로 복귀한 이후 여의도 한복판 천막 당사에서 기자들은 사전에 요청만 되면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측근들에 의해 그런 기회가 차단돼 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박 전 대표가 기자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을 때 민감한 정치적 질문만 아니라면 그는 흔쾌히 대화에 응합니다. 굳이 과보호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친박과 친이가 나뉘어 서로를 경계하고 감시하는 풍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통'이 화두인 이때 박 전 대표의 소통은 꽉 막혀 있는 듯합니다. 성곽이 두터워지고 높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1960년대와 유신시대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변해가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9) "반사 이익"

박 전 대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특히 친이계 들은 "반사 이익의 달인"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원칙을 강조하고 그 원칙으로 포장해 실리를 챙긴다는 얘깁니다. 언론 관련법을 놓고 여야가 1차 입법전쟁을 벌였던 지난 연말연초 박 전 대표는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법은 처리돼선 안 된다며 여권을 비판했었다가 그 다음달 2차 입법 전쟁 때는 한나라당이 언론 법 처리를 위해 똘똘 뭉치자 로텐더 홀로 찾아와 야당을 비판하며 의원들을 격려한 것을 친이 측은 예로 들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 박 전 대표는 정치적 학습을 통해 자신의 세를 키우는 방법을 익힌 듯합니다. 미래연합의 실패에서 자기 세력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겁니다. 천막당사 대표시절 어떻게 세력을 유지하는지를 배웠을 겁니다. 또 다시 비주류로 바뀐 지금, 스스로 피해자임을 부각시켜 여론의 동정을 이끌고 동시에 여론의 흐름을 읽어 그것을 자기 힘을 배가시키는데 활용하는 듯합니다.

(10) 적개심

이는 박 전 대표보다는 친박 진영의 인사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대목입니다. 친이측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야당보다도 오히려 친이 친박 간의 적개심이 더 클 때가 적지 않습니다. 권력을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했듯이 권력을 향한 경선의 후유증이 공천 파동을 거치면서 친박 진영 내 적개심을 더 키우고 그것이 소수 비주류의 단결력을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박 전 대표 역시 이 적개심을 포용력으로 바꿔주려 하지 않는 듯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비주류에서 주류로 바뀐 이후 이런 모습은 또 하나의 유산으로 남을 겁니다.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은 국민들에게 피해자로 비춰지고 있는 만큼 이런 적개심에 대한 공감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여론의 호된 질책으로 되돌아올지 모를 일입니다. 박 전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인 듯 합니다. 

현역 정치인, 그것도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를 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 측은 물론 친이 측에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거니와 자칫 '박사모'들로 부터나 반대로 '재오 사랑'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는 최근에 만난 지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제 생각을 정리한 바 있습니다만, 이번 글 역시, 최근에 "박 전 대표를 옆에서 보니까 어떻던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 왔기에 단편적이나마, 그리고 그것이 객관적 진실이라고 100% 장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관찰과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공감하는 내용들을 토대로 정리해 본 겁니다. 세인들은 확실히 '정치'보다는 '정치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합니다. 앞으로 누군가 특정 정치인이 그리고 제가 어느 정도 아는 정치인이 화제 거리에 오른다면 정리할 기회가 또 있을 겁니다.

 

[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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