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무역수지 흑자가 무려 32억 9천 5백만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2007년 6월 이후 최대폭의 흑자입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습니다. 수출이 늘어나서 그런게 아니니까요.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줄었습니다. 하지만 수입은 무려 30.9%가 줄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흑자'인 셈이죠.
이런 일은 11년 전에도 벌어졌습니다. IMF 첫해였던 1998년 수출은 전년보다 2.8% 줄었는데 수입이 35.5%나 줄어들면서 한해동안 390억 달러에 이르는 흑자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IMF 신탁통치 국가에서 이런 대규모 흑자라니... 그 때 우리 국민들 과연 기쁜 심정으로 '흑자' 뉴스를 즐겼을까요?
당시엔 이런 무역 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면서 결과적으론 IMF 조기 졸업을 이뤄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무역 수지 흑자의 배경과 앞으로의 전망을 전문가에게 들어볼까요. 먼저, 송원근 한국 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입니다.
- 무역수지가 흑자를 낸 이유를 무엇으로 보나요?
2월 무역수지 흑자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수입의 감소에 있습니다. 원유, 철강 등 여러 원자재 가격이 상당히 낮아졌고요. 거기다 국내 자본재, 소비재 수요가... 급격히 내수가 줄어들면서 수요도 줄어들었습니다.
- 환율효과도 있지 않았나요?
환율이 높았던 것이 수출엔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예상이 가능하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워낙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수출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나빠지고 있습니다.(수출이 어렵다는 거죠) 2월 무역수지에서 봐도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에 대한 수출 실적이 상당히 저조합니다. 그 쪽도 경기 침체가 심하기 때문이죠.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한 수출이 환율에 의해 급격히 증가한다는 건 전망하기 어렵습니다.
- 수출 목표 전망치는 수정할 필요가 있나요?
올 한해동안 정부가 계획한 수출실적이나 수출목표치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특히 금융부문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진정되지 않는 한 수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다만 수출 시장이 상당히 다변화 돼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고려해서 수출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FTA 같은 것을 통해 수출 확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같은 질문을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게도 했습니다.
- 33억불 흑자를 낸 큰 이유는 뭐라 봅니까?
수출이 안 좋은데 흑자 보였다, 이건 그만큼 내수경기도 안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제 유가가 안정되고 최근 고환율이 무역수지 개선에 기여한 점도 물론 있지만요.
- 환율효과 덕은 어떻게 보죠?
지금같은 고환율이 지속되면 수출 측면에선 효과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위기 중요 변수라서, 수출이 크게 개선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입은 내수가 안좋은 상황에서는 크게 위축되니까요. 고환율이 유지되면 무역수지 개선 효과는 있을 겁니다. 다만 수출도 안좋은 상황에서 무역수지 흑자는 결국 내수경기가 계속 안좋다 내지는 고환율 유지를 의미하는 겁니다. 금융시장이 혼란스럽게 되는 거죠. 무역수지 개선이 썩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 무역수지 올해 전망은?
환율이 중요 변수입니다. 환율이 추세적으로 낮아진다해도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걸로 예상됩니다. 수출 경기가 계속 안좋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무역 수지는 흑자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요?
경기 대응과 무역수지 대응은 다른 문제입니다. 무역 수지 대응을 할 때는 아닙니다. 결국 우리나라가 세계 경기를 컨트롤 하지 못하니까요. 세계 경기가 안 좋기 때문에 수출 부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내수 부진으로 경기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내수를 살리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내수가 상대적으로 살아난다는 것은 무역수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촉진해야 빠른 경기 침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내수 부양 정책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금융시장이 계속 불안한 것은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2천억 달러 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경상수지가 흑자기조를 유지해야 합니다. 경상수지를 위해 무역수지를 위축시킨다는 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금융시장 불안은 유동성 확대, 확보 등 다른 차원에서 치유돼야 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환율이 높은 수준이어서 어느 정도 내수 부양해도 무역수지 흑자는 유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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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 보면
1. 수출이 줄었는데도 무역수지가 흑자를 낸 건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2. 환율이 높은게 무역수지 흑자 유지에 도움은 되겠지만 세계 경기가 다 안 좋기 때문에 우리 능력만으로 수출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3. 다만 수출 시장이 다변화된만큼 그 부분을 공략해야 한다.
4. 또 정책적으로 내수 부양에 신경써야 한다. 내수가 어느 정도 살아나도 환율이 워낙 높아서 무역수지 흑자기조는 어느 정도 유지될 것이다.... 등등 입니다.
보통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전문가 집단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번 상황에선 원인분석과 진단, 그리고 대책이 거의 비슷하네요.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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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제부 산업팀에서 활약 중인 홍순준 기자는 삼성.LG등 전자업계와 공정위, 소비자원을 출입하고 있는 고참 기자입니다. 1995년 입사 후에는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잔뼈가 굵었고 사건팀의 리더인 '시경 캡'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특유의 돌파력과 폭넓은 취재로 보내오는 기업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