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2일 환율이 폭등하고 산업생산이 가파르게 위축되면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세계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국내에 그대로 전이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수출이 급감하면서 생산활동이 약화되고 있고, 글로벌 투자자금의 회수로 국내 금융시장이 직접적인 충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환율이 장중 1,600원 부근으로 급등한 상황은 실물경기에 대한 우려나 외환시장의 수급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투기수요 개입 등 시장불안 요인에 대한 명확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외국 투자자의 자본유출에 대한 우려로 환율이 오르고 있다. 구조조정과 관련해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다 보니 `리먼 사태' 수준은 아니더라도 금융기관 부실이나 신용경색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내 외환시장이 여전히 취약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보니 불안해하는 것이다.
산업생산은 세계 경제 침체로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제조업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산이 빠르게 줄고, 출하가 안 되고 투자지표도 하락하고 있다. 특히 수출 제조업의 경기 하락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6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고용조정 압력이 커질 우려가 크다. 고용사정이 악화하고 임금이 줄면 아직 큰 충격을 받지 않았던 소비 쪽이 하반기에 흔들릴 수 있다.
◇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전략부장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침체의 악순환 고리가 현재 진행형이다. 환율 급등과 주가 급락, 그리고 산업생산 급감 등은 어느 정도 시장에서 예상한 상황이다. 1월 산업생산이 전달보다 25% 감소한 것도 연휴를 포함한 계절적 요인에다 주요 기업들의 감산 및 조업단축 등을 감안하면 시장의 예상치 수준이다.
다만, 가격 변동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시장의 실망감도 큰 것으로 보인다. 정책 기대감으로 1~2월 코스피지수가 900~1,200의 제한적인 범위에서 상단 돌파를 시도했다면 3월 시장은 하단의 지지력을 시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주식시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동향과 외국인 매매 방향, 환율 움직임 등에 연동해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년 10월의 위기 상황보다는 글로벌 신용지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정부의 정책적 개입 여지가 충분해 투자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다소 완화된 상태다.
◇ 오용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산업생산이 급감하는 등 실물경제 상황도 나쁘지만 현재의 외환시장은 반드시 실물시장과 연계돼 돌아가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일단은 외환시장이 어떤 요인에 의해 급변동하는지를 정확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수급 요인으로는 우선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세, 수입업체의 결제수요를 꼽을 수 있고, 여기에 달러화에 대한 투기 수요의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들 요인이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느냐는 점이다. 외국인이 계속 주식을 순매도할 정도로 증시 전망이 나쁜지, 앞으로도 달러 가치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투기수요가 몰리는지 분명치 않다. 이 세 가지 요인이 시장에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모니터를 해야만 이에 따라 심리를 돌릴 방법도 찾을 수 있다.
◇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1997년처럼 달러가 부족해서 지급불능 사태로 가는 위기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환율이 오르는 모습은 당시와 비슷하다. 지금 환율 상승은 한국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볼 유동성이 부족한 데 따른 현상이다. 한마디로 금융기관들이 달러를 보유하면서 유통되는 달러가 줄어든 것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에는 기여하지만 수입업체들이 타격을 입는다. 특히 일본과의 거래기업들이 피해를 많이 볼 것이다. 이에 따라 내수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 정상적인 기업거래도 어려워진다. 특히 외환시장에 공포감이 형성되면 기업들에 외화가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
외환 당국으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시점에 개입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다행스러운 것은 물가와 금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세라는 점이다.
◇ 김영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동유럽 불안 등으로 외국에서 한국을 보는 불안한 시각이 높아지면서 환율이 급등하는 것 같다. 특히 외신에서 한국의 외채 비중이 높다는 류의 기사가 나오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에 따라 최근의 환율 상승은 외국인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관련 지표가 불안하다 보니 외인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매수 물량을 계속 내고 있다. 규모를 볼 때 주식 매도 자체가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환율이 급등하면 불안심리가 확산돼 거래량이 위축되고 매수 물량이 조금만 나와도 다시 폭등할 수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1,600원 돌파도 가능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든지, 수출 등에서 한국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개선된 지표가 나와야만 불안 심리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