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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과의 마지막 10년'

- 만나서 이야기 해봅시다.

인터뷰를 해주십사 장황하게 부탁한 기자에게 老神父는 간단하게 답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지인 용인 묘역에서 하관식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후배기자를 통해 미리 서울대교구측에 청탁을 넣어두긴 했지만 희수의 노신부가 거기에 크게 괘념치는 않을 터, 더구나 신부님들은 평소에도 인터뷰는 잘 응하지 않는다.

가톨릭 대학교 총장을 지낸 최승룡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한 98년 이후 혜화동 주교관에서 추기경과 10년을 동거했다.

김수환 주교가 추기경이 된 69년도에는 추기경 서임 환영준비위원도 맡았으니 40년 인연인 셈이다.

- 카메라로 촬영하는 줄은 몰랐는데. 그랬으면 안한다고 했을텐데.

평화방송 3층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취재팀에게 한 첫 일성이었다.

- 아니, 방송기자와 인터뷰하는데 카메라없이 어떻게 합니까? 라고 얘기할 엄두도 못내고 그저 갑작스럽게 예의에 어긋난 요청을 드렸다고 싹싹.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꼬장꼬장한 인터뷰이였지만,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노신부는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연세에도 불구하고 사리분별이 밝은 분 같았다.

▲ 추기경 선종하시고 지난 일주일이 어떠셨습니까?

= 그동안 아주 입원하신게 7개월간이고 가끔 위중하시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그래서 사실 교구청이나 가까운 분들이 거의 다 비상 상태였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해외출장도 불안해서 못 가실 정도로.

그런 면으로 많이들 고생을 했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가능성을 놓고 준비를 철저히 한 것 같아요. 큰 차질없이 큰 사고없이 잘 치룬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다 우리가 얘기하기론 돌아가신 김 추기경 은덕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 오늘 장지까지 갔다오셨는데 어떠셨습니까?

= 글쎄, 뭐라고 그럴까요.  참 추기경님이 이 모양을 상상하셨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마라 했을 것들이 상당히 많았을 것 같아요. 가령 옆에 지나가는 차들도 못가게 하는 교통 차단이라던가 아주 질색을 하셨을텐데... 다행히 저 양반이 못보시게 돼서 뭐..

추기경님이 가지고 계시던 '배려' 전 그거를 아주 그 양반한테서 인상깊게 받은게, 가령 예를 들면 로마에 갔을때 밤에 잠이 들지 않아서 엽서를 쓰시는데요. 그 엽서를 매 신부들한테 다 써요.

젊은 신부한테도 친필로 엽서를 다써요. 그 사람특성이 뭔가? 그사람한테 뭐를 수고했다하고 뭐를 잘해달라 부탁할까 이걸 다 친필로 쓰시고 보내시는... 이걸 받는 입장에선 '아 이걸 나한테만 보냈구나', '나만 특별히 생각해주시는구나' 그런 배려... 그것이 그분이 가지고 있는 그런 좋은 성품 뿐 아니라 그런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게 그런 대우를 남에게 해주도록 감염을 시켜준다는 얘기죠.

가령 예를 들어서 신부가 본명첨례를 당하면, 생일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때 전화를 걸어요. 거시는데 이걸 비서 수녀 나쁘게 말하면 교환을 시켜서 걸 수 있는데 옛날에 돌리는 전화기로 직접 전화를 하셨어요. 그래가지고 가령 전화받았을때 "나 추기경인데", "야 니가 추기경이면 나는 교황이다" 이런 실언을 할 정도로 뜻밖에 그 전화를 받는 사람들한텐 뜻밖인데 그 양반한텐 일상적인 일이에요.

그런 경우에는 '아,나도 어떤 사람한테 전화를 걸땐 내가 직접 걸어야하는구나'..이런거를 깨닫는거죠. 그런 것들이 간접적인 교육이랄까? 그분의 성품에 감염되는거죠.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추기경과 첫 인연은 언제였습니까?

= 1960년대 말, 그 양반이 50대부터죠 그때 난 30이 안됐을땐데... 그 양반이 (서울대교구에) 오셔서 젊은신부들한테 희망을 걸고 좀 복잡한 문제가 있고 협조자를 구하기 힘들 때 우리는 신부된지 얼마되지 않고, 그래서 많은 협조를 드렸어요.

추기경님 주위에서 말하자면 우리 동창들 셋이 경제분야에서 전부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됐고 그래서 적극 협조를 해드렸고 말하자면 경상도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왔을 때 우리가 많이 위로가 돼드렸다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40년동안 충성을 했다고 하는데... 옆에서 그냥 모신거죠.

▲ 추기경님 은퇴하시고 혜화동 주교관에 오셨는데, 신부님과 동거했다는 표현을 써야되나요?

= 우린 동거죠. 동거고 추기경님도 열다섯 명 중의 하나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고. 공동 생활 하셔야하고 공동 식당와서 잡수셔야하고, 그런 관계였었죠. 같이 미사 지내고 같이 산책도 하고, 그러니까 무슨 종적인 관계는 없었습니다. 횡적으로 뭐 동거인이죠.

(십년동안이요?) 십년동안이요. (혜화동에서 산책한다면...?) 그 앞에 조그만 뜰이 있어요. 거기 그냥 한 댓바퀴 도는거죠. 돌면서 얘기하고 조금 시간이 남으면 성벽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계절마다 다르고 굉장히 호젓해요. 뭐 추기경님이 운동 좋아하신 것은 없었으니까 그저 산보하는 운동 밖에 없었어요. (주로 산보하면 무슨 얘기하셨습니까?) 온갖 잡사에 대해서 다 얘기하고 뭐 특별한 주제가 없었죠.

▲ 추기경님께서 좋아하시거나 피하시는 것 있었나요? 언행이나 음식, 옷 등등...

(다음 편에 계속...)

 

[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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