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12분께 노환에 따른 폐렴합병증으로 선종(善終)했다. 향년 87세. 우리는 국가의 큰 어른이자 정신적 지도자를 잃었다. 김 추기경이 떠난 빈 자리는 오랜 기간 우리의 마음 속에 채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을 것이다. 김 추기경은 단순히 한국 천주교회를 이끄는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 교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이끄는 버팀목이었으며 어려운 시기 정신적 지주였다.
종교를 떠나 김 추기경 만큼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온 인물도 없을 것이다. 평생을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몸소 돌보며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종교를 뛰어넘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지도자였다.
1922년 5월 대구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출생한 김 추기경은 1951년 사제품을 받았고 1966년 초대 마산교구장을 거쳐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 1969년 47세의 나이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추기경으로 서임됐으며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1998년 75세 정년을 맞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그의 추기경 취임 일성은 "가난하면서도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였다. 김 추기경은 이를 실천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가톨릭 입장에서도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이 교구장을 맡은 30여년간 눈부시게 교세를 확장해 신자가 8배나 불어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다. 김 추기경은 한국 사회 속에 천주교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데 기여했으며 종교간 대화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 "교회는 자기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김 추기경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역사의 고비 마다 소신 있는 발언을 쏟아내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밝혀왔다.
김 추기경의 존재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소신 있는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던 김 추기경의 모습을 기억한다. 1971년 예수성탄대축일 자정미사에서 장기집권으로 치닫는 박정희 정권을 공개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유신독재와 싸웠다.
7.4남북공동성명 발표와 8.3 긴급조치,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는 혼란기에 시국 성명을 발표했으며 지학순 주교 등 사제들이 잇따라 구속되자 성명서와 강론을 통해 인권과 민주회복을 강조했다. 1980년대 명동성당이 민주화 운동의 해방구 역할을 할 당시 명동성당에 진입한 시위대를 강제 연행하려던 정부에 맞서기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모든 신자들에게 광주를 위한 특별기도를 요청했다. 김 추기경은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돌려 노동자 인권을 지키는데 앞장섰으며 미사를 집전할 때마다 마지막 기도와 축복은 북한 신자들을 위해 바칠 정도로 통일에 열정을 보였다.
김 추기경은 노환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와 인간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최후까지 던진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 평화와 화해였다. 그는 임종을 지킨 교구청 관계자들과 의료진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김 추기경이 평소 장기기증 의사를 밝힘에 따라 선종 직후 안구 적출 수술이 진행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김 추기경은 사회에서 종교가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종교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일생을 통해 온 몸으로 보여줬다.
이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간 김 추기경이 그 곳에서 안식을 찾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김 추기경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그 뜻이 실현되도록 마음을 모으는 것이 남은 우리가 할 일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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