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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일본무사?

국회 출입기자는 국회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다. 기껏해야 국회 앞에 있는 당사에 나가는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앉아있는 시간이 긴 건 결코 아니다. 각 당별로 열리는 아침 회의를 시작으로 각종 회의와 기자회견, 모임, 토론회, 공청회 등등을 챙기다 보면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있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는 곳이 있다. 국회 본청의 정문 현관이다. 이 현관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한나라당의 원내대표실이 반대쪽에는 민주당의 원내대표실이 자리 잡고 있다. 기자들에게는 이른바 '노루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이 현관에 있다.


△국회 정문 현관

국회 본청의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본 것은 그렇게 정신없이 국회 안을 돌아다니던 지난해 초였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허덕이던 때라 당시에는 동상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대선과 총선도 끝날 즈음 이순신 장군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역사를 좋아하는데다 검도에도 관심이 있던 터라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 번, 두 번 관심있게 보는 사이 뭔가 어색한 게 눈에 걸렸다. 칼이었다. 칼을 쥔 모습이 일본검법의 방식과 같았다.



일본 검법의 기본인 '본'에서는 검(정확히 말하자면 날이 하나이므로 '도'(刀)가 맞다)의 날은 상하(上下) 기준으로는 '위'를, 전후(前後)로 따지자면 '뒤쪽'을 향하게 잡는다. 반면 본국검법이나 조선세법 같은 우리나라 전통검법에서는 날이 아래나 앞쪽을 향한다.




휴대하는 방법도 달라서 통상 일본무사들은 검을 허리 띠에 끼워서 찬다. 때문에 일본도에는 칼집이 허리 띠에 걸릴 수 있도록 칼집 윗쪽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끈을 이용해 허리에 칼을 찬다. 칼집에는 끈을 끼울 수 있도록 고리가 2개 달려 있다.



△안릉신영도의 환도 패용 장면

이런 점에서 국회 현관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아무리 봐도 어색했다. 그래서 몇 번인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검도할 때 배운 상식이 전부였던 터라 문제제기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달 초에야 시간도 나고 호기심도 발동해 전문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간의 확인 끝에 전문가로부터 동상의 고증에 문제가 있다는 회신을 받았다. 기사(☞ 국회 현관 충무공은 '중국갑옷 입은 일본무사'?)를 쓰기로 결정이 난 뒤 참고도 할 겸 예전에 문제가 됐던 광화문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 동상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 '칼을 오른손에 쥐고 있다는 것'과 '갑옷이 중국식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칼 자체가 일본 칼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본 결과, 국회 동상도 중국식 갑옷으로 판명이 났다. 기본적으로 조선의 갑옷은 두루마기처럼 한 벌로 이뤄진 포형(袍形)갑옷이다. 반면 중국식 갑옷은 어깨, 몸통, 하체 보호대가 각각 분리된 피박(披膊)형 갑옷이다. (피박(披膊)은 어깨, 신갑(身甲)은 몸통, 갑상(甲裳)은 하체를 보호한다)

△국회 정문 현관 동상 (중국식 갑옷)                              △아산시 동상 (조선식 갑옷)

칼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 글에서 '검'라고 표현된 칼들은 정확히 말하면 '도'(刀)가 맞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칼'과 '검'이 같은 단어로 혼용되는 점을 고려해 그냥 '검'이라고 썼다. 사전적 의미로 '칼'이라는 단어는 양날인 '검'(劍)과 한날인 '도'(刀)에 양쪽에 모두 쓰인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들 때 모델이 된 검은 '태귀연', '이무생' 두 장인이 만든 장검(보물 제326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이 이 검을 들고 있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검은 당시 파괴력과 살상력에서 앞섰던 일본도의 형태를 차용해 만든 일본식 쌍수도(雙手刀)로 이순신 장군이 실전에 사용했던 검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실제로 썼던 검은 조선의 환도인 '쌍룡검'이었다.


△이순신 장군 장검(長劍) - 보물 326호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 쌍룡검 (조선미술대관)

따라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동상에 담는다면 포형식 갑옷을 입고 허리에 환도를 찬 모습이 가장 역사적 고증에 부합할 것이다.

그렇다면 광화문이나 국회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잘못 제작된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동상이 세워질 6, 70년대 당시에는 관련 연구자가 거의 없었고 이런 이유로 제대로 된 자문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조선시대 무기와 관련된 전문가는 전쟁기념관의 박재광 학예연구관을 비롯해 단 몇 명에 불과하다. 민간인의 접근이 제한된 무기 분야인데다 실제 유물을 보면서 연구할 수 있는 곳도 '전쟁기념관'이나 '육군박물관' 같은 곳을 제외하면 찾기 힘들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지난 1973년 국회에 설치됐다. 한국의 무인을 대표하는 이순신 장군이 중국식 갑옷을 입고 일본 무사처럼 칼을 쥔 채 30년 넘게 서 있는 셈이다. 국회 정문 현관은 중국, 일본은 물론 각국의 외교사절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30년동안 우리도 모르고 지나쳤으니 그들도 그냥 지나쳤길, 또 앞으로도 그렇게 지나치길 바라야 하는가?

 

[편집자주] 예리한 시각과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남승모 기자는 2000년 SBS 공채 8기로 입사해 사회부,경제부를 거쳐 정치부 정당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특유의 적극성으로 활발한 현장취재를 통해 복잡한 정치 현장의 맥을 짚어주는 기사들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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