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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측근 외압의혹' 보도, 일주일의 스트레이트 싸움

흥분 속의 1보

올림픽 열기가 최고조였던 8월 23일 토요일. 한국과 쿠바의 결승전 경기가 있던 날, 서울중앙지검에선 전직 사업가의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있었다. 야구 열기 덕에 사건사고 없이 조용한 토요일을 보내던 우리 팀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베이징에선 1회 이승엽의 홈런이 터질 무렵,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 지능1팀은 전직 대통령 측근의 외압의혹 사건의 1막을 여는 영장을 받고 돌아오고 있었다. 강남 출입 내 동기 기자의 첫 보고가 있었고, 캡(시경출입 수석 사건기자)은 내게 지시했다. "기사 써라. 심상치 않다."

서모 씨가 청와대 전직 비서관 ? 행정관과의 친분을 과시해, 공사 수주를 해주겠다며 5억원이 넘는 돈을 하청건설업체로부터 받아갔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5억이 9억으로, 친분이 '호형호제'로, 친분과시가 '실제 외압'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강남서는 기자들로 들끓었다. 혜화도봉 라인을 출입하는 나도 강남으로 출근을 했다. 강남 1진과 동기말진, 법조 출입하던 경력 선배가 한 팀이 됐다. 광진 출입 선배도 며칠 뒤 합류했다.

스트레이트 진검승부가 시작되다

얼떨결에 1보를 썼지만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월요일 아침만 해도 조간 가운데 한 군데서만 SBS보도 내용을 확인해 기사화한 상태였다. 그러나 서 씨에 대한 구속영장 내용이 확인되면서 공사수주를 대가로 한 실세들의 '외압의혹'이 사건 전면에 떠올랐다. 단 4줄짜리 방송기사를 보고, 별 사건 아니라고 판단해 보고한 타사 기자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수사과장과 해당 팀장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을 하며 취재공세를 피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취재를 할수록, 실제 조사 진척사항이 없었다. 서모 씨와 절친한 홍경태 전 행정관이 그 부탁을 받고 여기저기 공사 수주 외압을 넣었다는 것이 영장 내용이었다. 경찰이 ‘피의자’로 지목한 명단엔 홍경태, 정상문, D건설의 박모 전 사장과 신모 상무, 토공의 김모 전 사장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경찰도 9억원의 돈이 한 중견 건설업체에서 서모 씨에게로 갔고, 실제 홍 전 행정관과의 친분을 활용해 공사 수주외압이 있었다고 본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우리 팀은 물론 모두가 흥분했고, 취재 경쟁이 시작됐다.

'수상한 기수'. 선배들은 지난해 10월 입사해 올해 3월 수습을 뗀 우리 동기들을 이렇게 부른다. 12월의 강화 총기피탈사건, 1월의 이천화재참사, 2월의 숭례문 방화, 중앙청사화재, 그리고 3월 까지 계속된 이호성 모녀납치살해와 일산 초등생 성폭행 미수사건까지. 사건사고를 만들며(?) 다닌 기수들이니 수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 많던 사건사고처럼, 강남 말진 동기의 첫 보고로 이번 사건도 세상에 나왔지만, 이번 취재는 옛 경험과는 다른 새로운 도전 그 자체였다. '실체'로 볼 수 있는 두 전직 측근 수사가 전혀 안 된 까닭이었다. 수사상황 자체를 취재하는 상황. 일주일의 시간동안 스트레이트 진검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누구든 만나라

신참기자의 취재는 모든 게 배움이다. 우리 취재팀 반장인 강남일진 선배의 지휘아래 스트레이트 발굴부대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반장 선배는 말했다. "이제부턴 모든 게 기사다. 누구든 만나자!"

첫 날인 월요일(8월 25일). 경찰 취재가 잘 되지 않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서 씨에게 돈을 주고도 제대로 청탁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하청업체를 가 볼 수밖에 없었다. 업체 사무실은 강남서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난 2005년 당시 돈을 건넨 모 건설 부사장 장모  씨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든 처음 취재를 시도한 기자에게 프리미엄이 있는 법. 그는 맨 처음 그리고 반복적으로 걸려오는 내 전화를 받았다. 무조건 경찰에 할 말을 다했다고만 하는 그에게 난, 해명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설득했다. 결국 그와 만났다. 결정적인 대답은 철저히 피했지만, 여운을 담은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제가 왜 믿었겠어요? 그건 기자분께서 더 잘 아는 부분이잖아요."

월요일엔 사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팩트들을 정리해 반장 선배가 리포트를 했다. 화요일부턴 첫 보고를 멋지게 올린 강남 말진 동기가 훌륭한 스트레이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토공 전 사장이 월요일 밤 소환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8뉴스로 나갔다. 타사는 또 한 번 놀랐고, 부랴부랴 소환조사 내용을 확인해 타전했다. 수사방향을 따라갈 무렵, 소환조사 본격화 된 사실도 먼저 치고 나간 것이었다. 동기는 월요일 밤 모두 퇴근한 강남서를 다시 들렀다가 큰 팩트를 확인했다. 토공 전 사장 김모 씨가 조사를 받은 뒤 초췌한 모습으로 서를 떠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소환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자들은 경찰서 현관에서 대낮부터 소위 '뻗치기'를 했다. 서정근 전 청와대 비서관과 D건설 박모 전 사장이 조사를 받으러 왔다가 갔다. 서씨가 검찰에 송치되는 금요일까지 경찰수사는 빠르게 치닫고 있었다.

결국 건설사 사장들이 청탁성 전화를 받은 사실, 그리고 홍경태 - 브로커 서씨 - 서정근의 삼각만남이 청와대에서 이뤄졌다는 사실 등이 확인됐다. 서정근 전 비서관은 경찰 조사에서 해괴한 주장을 했다. "통화를 한 사실은 있지만, 자연인 서정근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외압은 없었다."

금요일. 홍경태 전 행정관의 말레이시아 출국사실이 알려졌고, 서씨는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늑장 출금의 질타 속에 숨고르기를 하는 모양새였다. 핵심피의자 한 명은 부랴부랴 검찰로, 또 다른 지목대상인 한 명은 국외에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홍경태가 돌아왔다

일요일인 지난 6일, 홍경태 전 행정관이 입국했다. 곧바로 체포되지도 않고 여유 있게 서울로 들어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토공 등에 외압을 행사한 핵심 인물인 만큼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지난 8일 밤 홍 씨는 귀가했다. 그에 대한 조사는 진행 중이다. 브로커 서 씨와 D건설 전 사장과 전 상무 등은 오늘 검찰에 기소됐다.

올림픽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사건팀은 사건기자들이 한판 승부를 펼치는 게임의 신호탄을 쐈다. 뻗치고, 뒤쫓고, 묻고 또 물으며 '의혹'의 실체를 찾는 스트레이트 경쟁을 했다. 그 일주일이 내겐, 큰 사건을 마주할 때 작은 팀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취재원을 만나는데도 보다 의미 있고 정확한 팩트를 찾아내는 선배, 동기의 역량을 보았다. 강남서는 잠시 조용하다. 그러나 다시 시끄러워지는 날이 오면, 나는 조금 더 노련한 취재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편집자주]  사회2부 사건팀의 최우철 기자는 2007년에 SBS에 입사한 새내기 기자입니다. 특유의 적극성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사건 현장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작지만 빛나는' 진실을 찾아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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