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학교정보공개법 시행령안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지난 5월26일 법은 이미 발효됐는데 시행령을 마련하지 못해 사문화돼 있던 상황은 일단 해결됐습니다. 그만큼 시행령안의 내용을 둘러싼 대립이 첨예했다는 얘기이겠죠.
그중에서도 특히 쟁점으로 부각됐던 부분이 초, 중, 고의 학교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성적을 어느 수준까지, 어떤 방법으로 공개하느냐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두 교육 이념-경쟁 옹호론과 평준화 강화론-이 치열하게 다퉈왔습니다.
우선 교육과학기술부가 선택한 성적 공개안을 간단하게나마 살펴볼까요? 공개되는 성적은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로만 한정했습니다. 전 지역의 대부분 학교들이 함께 참여하는 시험은 사실 여러개 있습니다만 가장 객관성과 적합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시험은 매년 10월 국가(교과부)가 주관하는 이 시험 뿐이라는 교과부의 설명입니다.
특히 올해부터 전국의 모든 초등 6학년, 중 3, 고 1이 의무적으로 시험에 참여하도록 해 더 큰 보편성을 얻게 됐죠. 학업성취도 평가는 성적을 우수와 보통, 기초, 기초미달의 4등급으로 분류해 응시생들에게 통보합니다. 우수는 문제의 80%를 해결할 정도의 실력이고요, 보통은 50%~80%, 기초는 20%~50%, 기초미달은 20%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사실상 학업을 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그런데 교과부가 이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각 학교별로 공개할 때는 3등급 분류하도록 했습니다. 즉, 우수와 보통을 합쳐서 보통 이상, 기초, 기초미달에 해당하는 학생의 비율인 것이죠.
교과부가 왜 이런 공개 방식을 택했을까요? 당초 고려하던 안에는 학교별로 평균 성적을 공개하는 안과 개인에게 통보되는데로 4등급의 학생 비율을 그대로 학교 차원에서 공개하는 방안도 있었습니다만 이 경우 학교간 학력 격차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학교 서열화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배제됐습니다.
반면 기초미달 비율만 밝히는 안과 지역 교육청별 등급 성적만 공개하자는 안은 지나치게 학력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실익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한마디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황금율을 따졌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교과부의 설명대로 이런 성적공개방안이라면 우리에게 교육 천국을 담보해줄까요?
이번 시행령안이 발효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한번 가정해보겠습니다. 4등급 대신 3등급만 공개한다고 하지만 보통 이상 학생의 비율을 따져서 학교를 줄세우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일부 학교들은 자기 학생들의 학력을 과시하고 싶어 우수 비율을 자체적으로 산출해 공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어느 학교가 잘하고 어느 학교의 학력이 뒤떨어지는지 다 드러나겠죠.
여기에 2010년부터 시작되는 학교선택제가 연결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력이 우수한 학교로 몰리고 학력이 뒤떨어지는 학교는 기피할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른 판본으로 얘기해볼까요.
학생들이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높아 사교육을 많이 받는 동네의 학교로 몰리고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는 기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심하다고요? 우리 교육 현실이 그렇다는 걸 누가 부정할 수 있나요. 그러면 집안이 좋아 부모의 지원을 잘받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끼리 점점 모이고 그렇지 못해 공부에 관심이 없고 그래서 학업이 뒤떨어지는 학생들끼리 또 모이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양극화의 심화죠.
학교별 학력격차가 이렇게 갈수록 심해지고 뚜렷해지면 대학더러 모든 학교의 내신을 똑같이 받아들이라고 더이상 강요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고교 평준화가 실질적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부자 동네 학교에는 서로 들어가겠다고 몰려서 아우성이고, 가난한 동네 학교는 공부를 못하거나 심지어 포기한 학생들만 다니다 결국 폐교되는 상황, 바람직한 교육 환경이라 절대 말할 수 없겠죠. 물론 최악의 경우이긴 하지만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교 성적 공개가 선순환을 가져오려면 어떤 요소들이 조합을 이뤄야할까요? 먼저 드러난 학력 격차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교육 당국이 이를 해소하는데 적극 나서야 합니다.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떨어지고 그래서 사교육 여건이 좋지 않아 학력이 뒤떨어지는 지역에 정부가 집중적으로 행, 재정적 지원을 하고 우수한 교원을 우선적으로 배치해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거의 사교육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돈을 들여 빵빵하게 사교육을 받는 지역의 학생과 경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여기에 해당 학교와 선생님들의 대오각성이 뒤따라야 합니다. 내가 맡은 학교가, 학생들이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는데 크게 자극을 받아 더 선진적인 교습법을 개발하고 더 큰 열성과 정력을 투자해 다른 학교보다 뛰어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지자체의 협조도 필수적이죠. 가난한 동네, 그래서 교육이 뒤쳐지는 동네를 탈피함으로써 주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줄 수 있도록 다른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앞세워야 합니다. 이런 요소들이 융합돼 시너지를 일으킨다면 공교육은 상호 경쟁을 통해 더욱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사교육에게 빼앗겼던 학생들의 학력 신장이라는 책무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드린 것은 학교 성적 공개가 우리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느끼도록 해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이번 시행령안이 무조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교육을 업그레이드하는 천사가 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우리 교육을 적자생존의 정글로 만들어 인성은 도외시된 채 이기적인 학력 경쟁만 부추기는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지는 우리 손에 달려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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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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