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김대벽 선생과 유인촌 씨의 경우

사랑에 굶주린 인간이 그 기아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사랑하거나, 사랑받거나,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故 김대벽 선생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라도 일이 있어야 만나지 특별히 만날 일이 없으면 잘 안봤다고 합니다. 차가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걸 저는 압니다. 그냥 그게 그 사람됨일 따름이지요.

故 김대벽 선생은 40여년 동안 우리 전통 건축물과 삶터를 필름에 담아온 '사진가'입니다.그가 찍지 않았다면 분명 가치있는 건축물은 아닐 거라고 짐작해도 될만큼 선생은 많은 양의 우리 문화재들을 '정직하게' 찍어왔습니다.  제가 '사진가'와 '정직하게'를 강조하는 이유는 선생의 삶과 성품을 이렇게 전해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항상 마치 노동처럼 굉장히 성실하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찍으시는데 주력하시고 연구하시면서 찍으셨는데 그 결과를 드러내놓거나 그런 건 좀 아니셨던것같아요. 사진도 너무 예술적으로 포장된 그런 세계보다는 사실 속에 깃들인 정신적인것, 내면적인건 그런 걸 탐구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예술가연하는 걸 안좋아하신 것 같습니다. 사진작가라는 말보다는 사진가라 불리워지는걸 더 좋아하신 것 같고." (장남 김일석 목사)

"예술 작품을 찍으시기보다는 기록을 위해서 사진을 찍으셨어요. 그러니까 그 집의 특색이 어디 있느냐 하는건 오히려 저희들이 쓴 글보다 이 어른의 사진이 더 확실한거죠. (숭례문 사진 찍으신 적도 있나요?) 그럼요.  60년대 찍으셨죠. 그런데 그런 걸 찍으시면서 남 앞에 나가서 자랑을 안하세요. 왜그러냐 하면 혹시 자기가 찍으신게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졌을까봐, 보편성을 잃어버렸을까봐. 그래서 또 가서 찍으시고 또 가서 찍으시고 하면서..."  (함께 작업했던 대목수 신영훈 /한옥문화원장)

취재하면서 선생이 부러웠습니다. 맘만 먹으면 사진계에서 '한자리'할 수 있었을테지만 선생은 자리를 추구하지 않고 스스로 프리랜서가 돼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직하게 사진을 찍고 그 노동에서 보람을 찾았습니다. 선생은 인간사 사랑의 굴레를 넘어 무언의 사랑을 이뤘습니다.

취재차 올해 74세의 부인이 지키고 있는 선생의 안암동 집을 찾았습니다. 지은지 40년이 넘은 무척 퇴락한 작은 아파트였습니다. 선생은 마지막 30년을 이 곳에서 보냈습니다. 한번은 장남 김일석 목사가 이사가자고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평소에 재산을 모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검소하게 살자', '가난하게 살자'  이런 얘기 안하셨습니다. 말보다는 실질적으로 '이 공간이면 족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충족하게 먹고 쓸 수 있으면 된다고 하시면서 재산을 축적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이 축적하지 않은 건 재산만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이 언론과 접촉을 안한 건 아니지만당신이 이룬 것에 비하면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또한 분명합니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사진을 추구하시면서 아버님이 발견하신 것은 뜻밖에도 한국인의 어떤 활력, 의연함 그런 걸 발견하시고 본인도 굉장히 고무되시고 영감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치를 언젠가 한국인들이 발견해내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 것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알고 귀하게 여길 때가 오면 당신이 한장 한장 땀흘려 찍은 사진도 또 누가 알아주지 않겠는가? 또 그것이 아직 미진하고 아직 부족할 시대일 때는 또 아버님하신 작업 뜻대로 다 이해받지 못한더라도 어쩔수없는거 아니겠느냐 그런 생각 가지지 않으셨겠나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故 김대벽 선생을 추모하는 사진전 '한옥의 향기'는 3월5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립니다.

------------------------------------------------------------------------------


최근 새 정부의 각료 내정자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왔다갔다 합니다. "내가 배우생활 35년 했는데, 그 정도 벌 수 있는 것 아니냐.  배용준을 한번 봐라"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3년 전 이라크 아르빌에 출장갔을 때 일입니다. 하루는 자이툰 부대 영내를 벗어나 아르빌 시내에 취재를 나갔습니다. 자이툰 부대의 대민 지원활동을 취재하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마을 안을 흘러다니는 오물과 폐수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네 집집마다에서 똥물과 구정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상하수도 시설은 원래부터 사람사는 곳이면 당연히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거였습니다. 없을 수도 있는 거였습니다. 누군가는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고, 누군가는 쓰레기와 오폐수를 치웠던 겁니다.

만일 누군가 능력이 있어서 배우 생활을 하든, 정치인을 하든, 기업인을 하든 그 일을 하면서 집안 쓰레기 치우고, 똥치우고, 하수처리까지 다하라고하면 그 훌륭한 능력을 아마 돈 버는데 쓰는 대신 궂은 일에 매달려야 할 겁니다. 아마 일주일만 누군가 궂은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면 더이상 돈버는 일은 하기 어렵게 될겁니다.

함께 사는게 인간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법과 시스템을 갖고는 있지만 개별 노동의 부가가치가 이렇게 엄청나게 차이나야할 어떤 선험적인 근거도 없습니다. 배우생활 수 십 년하면 그 정도 버는 게 당연하니까 왜 시비냐는 겁니까? 그렇게 번 돈은 대체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습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겁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능력을 키우고 그래서 돈 많이 벌고 하는 시스템에야 얼마나 그럴싸한 반론거리가 있겠냐마는 모두들 자기가 잘나서 그랬다는 식의 염치없고 인정머리 없는 말들에 슬쩍 부아가 나 주제넘게 한마디해봤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