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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세르비아'…코소보 독립선언 현장르포

코소보 전역 밤새 열광…"독립하면 다 좋아질 것"

"자유를 얻기 위해 500년을 기다렸습니다."(아르탄.45.코소보 프리슈티나 거주)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코소보 최종 지위 협상이 시작된 지 2년 만이고, 내전 종결 이후로 따지면 8년여 만이지만, 많은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은 터키와 세르비아의 500년에 걸친 지배에서 이제야 벗어났다고 한다.

터키와 세르비아 영토의 일부분이었던 지난 500년이 알바니아인들에겐 자유의 공기를 마시지 못했던 그토록 암울한 피지배의 역사였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독립 선언을 맞은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의 얼굴은 온통 환희로 가득했다. 모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지난 16일 오후 하심 타치 총리가 다음 날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이미 코소보 전역이 들끓기 시작했다.

30만 인구의 프리슈티나 거리거리에는 거의 모든 시민이 다 나온 것 처럼 느껴지는 인파가 쏟아졌다.

이날 저녁 때부터 수은주는 갑자기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졌고 살을 에는 눈보라에 눈을 뜨기도 어려웠지만 알바니아 전통 의상을 입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동포들과 기쁨을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모든 알바니아인들에게 오늘은 위대한 날"(나지프.상업), "마냥 행복하다"(베르타.미용사), "독립이 되면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도 잡을 수 있다. 모든 게 다 좋을 질 거다"(아르심.고교생), "직업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전기 사정이 좋아질 것"(피올라.대학생)

외국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 할 말이 많다고 자청하기도 한다. 등에 '굿바이 세르비아'(Goodbye Serbia)라고 쓴 셔츠를 입은 한 청년은 자기 옷을 촬영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차들의 경적 소리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택시, 버스, 자가용 할 것 없이 모든 차량에는 붉은 색 바탕에 검은 독수리가 그려진 알바니아 국기와 성조기, 유니언 잭이 내걸렸다.

간헐적으로 터지는 폭죽 소리는 '위험 지역' 코소보에 취재 온 외국 기자들을 순간 놀라게 했지만 알바니아인들은 여성이며 어린아이들까지 놀라는 기색이 없다. 소리 지르고, 웃고, 깃발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언제까지고 독립의 기쁨을 만끽하는 알바니아인들의 축제는 밤새도록 끝도 없이 이어졌다.

독립이 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는 시민들의 희망과 기대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코소보는 지금 더 이상 나빠질 게 별로 없는 그야말로 바닥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코소보의 실업률은 45%에 달한다. 인구의 절반은 직업이 없다.

어느 곳에 가나 공장은 찾아보기 어렵고, 지하경제 만이 200만 인구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전통적으로 대가족 형태로 살아가는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은 일가 중 한 사람이 해외에 나가 벌어 보내주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전체의 37%가 하루 1.5유로 이하로 살아가고 15%가 1달러가 채 안 되는 돈으로 끼니를 잇는다.

프로드 모링 유엔개발계획(UNDP) 코소보 대표는 "코소보에서 10명 중 1명은 아침에 배가 고프고 저녁에도 배가 고프다"는 말로 궁핍한 코소보의 현실을 표현했다.

독립해서 주권국이 되면 정치적 안정이 이뤄질 것이며, 이어 외국인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많은 코소보 주민들의 희망이다.

나아가 유럽연합(EU)에도 가입하면 언젠가는 명실상부한 유럽의 일원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도 꾼다.

코소보 알바니아인으로는 흔치 않게 영국 유학을 다녀오고 현재 세계은행에 다니는 룬드림 알리우(32)는 "코소보가 반드시 독립돼야 하는 이유는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독립이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소보인들이 이처럼 기대에 부풀 수 있는 것은 초강대국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EU의 주요 회원국들이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르비아가 경제 제재를 가하고 러시아가 국제기구 가입을 방해해도 코소보에겐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방 강대국이 언제까지나 알바니아인들의 편을 들어줄 리는 없다.

코소보가 독립함에 따라 언젠가는 이른바 '대(大) 알바니아주의'가 고개를 들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 알바니아주의란 알바니아와 알바니아인이 90%를 차지하는 코소보, 마케도니아 인구의 20%인 알바니아인 등이 알바니아인들로만 이뤄진 하나의 거대한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발칸 반도에서 특정 국가의 세력 확대를 억눌러온 서방의 전통적인 정책으로만 봐도 미국과 EU에 대 알바니아주의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알바니아인들은 이 같은 자신들만의 거대 국가 건설의 꿈을 대부분 부인한다. 최소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스코폐에서 만난 한 알바니아인은 "비록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같은 민족끼리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진심일 수 있다.

민족과 언어와 문화가 같은 두 민족이 바로 이웃한 채 다른 국가로 살아간다는 게 언젠가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코소보라는 이름은 '지빠귀의 땅'(The land of blackbird)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코소보에서는 어디서나 검은 지빠귀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떼를 지어 다니는 지빠귀들의 습성에서 코소보가 난관 속에서도 독립을 쟁취하고 나아가 언젠가는 알바니아인들끼리 모여 사는 국가도 만들려 하지 않을까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프리슈티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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