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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88만원세대', "자동차 별 매력없어요"

[유영수 기자의 좌충우돌 일본정착기]일본 자동차 이야기(1)

                     

일본 50, 60대 '스포츠카' 열풍

매끄럽게 잘 빠진 스포츠카가 날렵하게 질주합니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최신형 2인용 오픈 스포츠카입니다. '누가 탔을까?'부러움의 눈길로 운전 석을 보니...'어?' 예상과 달리 핸들을 잡은 이는 아무리 젊게 봐도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할아버지(?)가 계시네요. 여유롭게 흰 머리를 바람에 날리시며, 흡족한 표정으로 드라이브를 즐기십니다.
 
일본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 광경입니다. '스포츠카'하면 젊은 층의 전유물을 떠올리게 되는 우리의 통념과 달리, 일본에서는 멋쟁이 노 신사가 스포츠카를 유유히 몰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당연한 것 가지고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이 돌아온 대답은 "일본에서는 돈을 대부분 50대 이상이 가지고 있는데, 특히 최근에 퇴직금으로 스포츠카를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젊었을 때 스포츠카 못 탄 것이 한(恨)이 된 사람들이 뒤늦게 아쉬움을 달래기위해 많이 구입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이들이 그 유명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이른바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퇴직금만 50조 엔에 이를 정도여서 구매력이 높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대단하구나 싶었습니다. 

실제 지난 2005년 이후 스포츠  카를 포함해 대당 5백만 엔 이상의 고급 자동차 판매가 늘고 있는데, 구매 층의 상당수가 이들 단카이 세대라고 합니다. 스포츠카 외에도 이들 세대가 젊은 시절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이른바 '회고 소비' 제품이 인기인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가 잘 팔리고 통기타 학원이 다시 느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하네요.

일본 자동차업계, 젊은층 구매감소에 '씁쓸'

그러나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50, 60대가 스포츠카의 주 고객이 되고 있는 이런 현상을 마냥 반가워 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다소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자동차 구매 감소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카이 세대가 적극적으로 구매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역시 스포츠카 수요의 가장 큰 몫은 20,30대가 차지해야 바람직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죠. 얼마나 젊은 층의 자동차 구매가 저조했으면,50,60대의 스포츠카 구입이 이렇게 두드러져 보이겠냐며 울상을 짓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를 생산하는 일본 자동차 업계가 엄살을 떠는구나 싶지만, 실제 최근 일본 자동차 내수시장에서 판매 부진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20, 30대의 저조한 자동차 구입'입니다. 지난해 일본 내수시장은 574만 대 규모로 내려 앉으며, 3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절정기였던 1990년도의 780만 대와 비교하면 30%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승용차는 372만대가 판매돼,지난 1990년도의 590만 대와 비교할 때 40%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올해도 부진이 계속돼 예상 연간 판매대수가 350만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잘 나가는 도요타도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172만대의 판매목표를 세웠지만, 결국 160만대로 목표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해외에서 잘 나가더라도 내수시장에서 어느 정도 든든하게 받쳐줘야 되는데, 지금과 같이 계속 감소하면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이유가 미래의 고객인 젊은 층의 구매 감소 때문이라면, 무언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죠.

                    

젊은층 구매감소,  저출산·장기불황 여파

그래서 일본 자동차 공업협회가 처음으로 '신차가 판매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고 합니다.여러 가지 이유가 언급됐는데, 먼저 저 출산과 장기불황의 여파가 근본적인 이유로 지적됐다고 합니다. 사회가 고령화 되면서 젊은 층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오랜 불황 속에 위축된 일본인들이 목돈을 써야 하는 자동차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죠.

특히 최근 다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예전과 달리 가구의 소득증가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구매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혹독한 구조 조정을 거치며 연 소득 3백 만 엔 이하의 가구가 크게 늘었고, 또 비 정규 직의 비율도 30%를 넘으면서 구매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5년 이상 자동차를 장기간 보유하는 가구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는 것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공교통망이 발달한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고 싱글 족이 늘어 나면서 갈수록 자동차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도쿄같은 대도시에서 각종 세금과 보험료, 주차료 등 자동차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실례로 3000CC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는 일본인 친구의 경우, 자동차세로 해마다 5만 엔(우리와 비슷한 CC에 따른 차등 부과 방식),보험료로 한 달에 13000엔(월 단위라는 것이 특이하고 다소 많이 내는 편이라고 합니다), 자동차 정기 검사비용으로 2년마다 10만엔(따로 세금이 붙어서 비싸다고 합니다. 이상이 없는 경우가 이 가격이고, 더 비쌀 수도 있다고 하네요), 주차료로 월 4만엔 정도(중심지는 5만엔 대, 외곽은 3만엔 대 안팎)를 낸다고 합니다. 대충 따져봐도 기본적으로 한 달에 6만엔 이상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연료비와 각종 부품 교체 비,고장 수리비까지 따지면 정말 자동차는 '돈 먹는 하마'인 셈이죠. 물론 경차를 사면 여러 가지 항목에서 비용이 크게 줄어듭니다(그래서인지 일본에서 경차 판매는 요즘 계속 호조입니다). 어찌 됐건 우리보다는 많이 든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상당수 가정에서 우리처럼 주중에 출퇴근용으로 차를 가지고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살인적인 도심 주차장의 주차료와 각종 톨게이트 비용(대부분 전철로 1시간 이상 되는 거리에서 출퇴근)등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겨우 주말에 레저용으로만 쓴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주말 정체가 극심하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웬만한 유명 관광지 주변과 고속도로는 심한 정체로 몸살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것 저것 다 따져보니 정말 부자이거나 차가 생업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동차 구입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젊은층 '자동차는 돈먹는 하마' 인식

보고서는 이런 이유 등으로 젊은 층에게 '자동차는 값이 비싸고 유지비가 많이 들지만 효용은 그다지 크지 않은 소비재'라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마디로 가격에 비해 만족도가 떨어지는 매력 없는 제품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더욱이 20~30대는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자란 세대여서 미래의 수입과 가계 부담에 대한 불안감이 이전 세대보다 훨씬 높아,자동차 구입과 같은 '모험'을 망설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자동차에 대한 흥미 감소와 행동 변화로 이어지고 있어 향후 자동차 내수 시장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우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빈 자리를 대신 초박형 TV나 노트북, 휴대전화, 디카와 게임기 같은 최신 디지털 가전들로 채우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동차 보다 훨씬 저렴한데다 관리가 부담스럽지 않은 디지털 가전을 구매 1순위로 올려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전제품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이어서 디지털 가전을 편해 하고,자연스럽게 생활의 필수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죠. 또 따분한(?) 자동차보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형 버전을 쏟아내는 디지털 가? 떨어졌고,특히 향후 구매경향을 보여주는 자동차 구매 희망 율이 지난 2천년의 48.2% 에서 25.3%로 거의 반 토막 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21세기의 소비자인 일본의 젊은 세대가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급격히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일본 자동차 업계는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문제의 성격 자체가 업계가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각종 제도가 빚은 하나의 사회 흐름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좌시할 수는 없는 문제니까 말입니다.그래서 중장기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멀어져 가고 있는 젊은 층을 유인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자동차업계 '젊은이를 위한 자동차' 개발 고심

우선 초기 기획 단계부터 아예 '일본 젊은이를 위한 자동차'를 만든다는 방침입니다. 이전에는 자동차하면 모든 연령에게 인기가 있는 제품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식의 안이한 접근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젊은 층을 '타겟 고객'으로 확실히 잡고 철저하게 일본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자동차를 기획하고 개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특유한 '니즈(needs)'에 맞춘 독창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계속 외면당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표적인 개념이 '재미있는 자동차'입니다. 여기에는 업계 최고지만 바닐라같이 밋밋한 디자인과 재미없는 자동차를 만든다고 혹평을 받기도 하는 도요타가 앞장을 섰다고 합니다. 사내에 위원회까지 만들었으며, 또 도요타는 그 동안 등한시했던 스포츠카와 스포티한 자동차의 개발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현재 진행중인 '자동차의 전자제품화'-자동차가 점차 기계가 아니라 전자제품이 되고 있는 현상으로 고급 외제차 중에는 부품의 40%이상이 전자 부품인 경우도 있음-에 이런 '재미있는 자동차'라는 컨셉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즉 전자 제품화가 대부분 '안전'과 '사용 편의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여기에 '재미'라는 개념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또 자동차 디자인과 각종 기능에도 첨단 디지털 제품의 특징을 가능한 한 많이 채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동차도 하나의 디지털 가전으로 일본의 젊은 층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이런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맺을 지는 모릅니다. 업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요인들이 더 큰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비슷한 고민을 겪게 될, 아니 이미 겪고 있는 우리 자동차 내수시장에 어느 정도 시사하는 바는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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