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 및 BBK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경준씨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특수관계'를 입증할 지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20일 김 씨 가족의 기자회견은 일단 '맥빠진 드라마'로 끝났다.
김 씨 가족이 이 후보가 친필 사인을 위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면 합의서' 원본공개를 거부한 데다가 김 씨 누나 대신에 부인이 회견에 나서 관련 의혹을 소상히 해명하기보다 질의응답도 회피한 채 남편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눈물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0...김 씨 가족은 이날 아침부터 에리카 김 씨 사무실에서 출입문을 굳게 잠그고 현지에서 김 씨 가족을 변호해온 에릭 호닉 변호사 등과 공지했던 회견시간을 1시간 50여분 넘기도록 대책회의를 가지며 회견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회견소식을 듣고 100여명의 취재진과 일부 이 후보 지지자들이 몰려들자 당초 에리카 김씨 사무실이었던 회견 장소를 인근 호텔로 옮겼으며, 회견장 출입구를 봉쇄한 뒤 출입자들의 신분증과 명함을 일일이 확인해 기자들만 출입을 허용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회견이 열린 호텔 주변에선 일찍부터 한나라당 이 후보 지지자 50여 명이 '꼭같은 수법 보고 우리는 분노했다' 등의 내용을 적은 피켓을 들고 김 씨 가족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초 이날 회견은 그동안 김 씨의 입장을 적극 대변해온 김 씨의 누나 에리카 김(한국명 김미혜.43)씨가 나설 것으로 예상됐으나 김씨 가족은 회견 직전에야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가 회견을 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김 씨 가족은 회견 시작 직전 이 후보의 비서출신인 이진영 씨가 미 연방검찰 조사 증언 내용을 담은 DVD, 다스가 김 씨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의 판결문, 연방정부 재산 압류 소송 1차 소송 승소 판결문, 이 후보를 대표이사 회장, 김 씨를 사장으로 소개한 eBankKorea 홍보물 등을 회견문과 함께 배포했다.
0...이날 오후 1시20분께 호닉 변호사와 함께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씨는 남편의 결백과 이 후보가 BBK의 실질적 소유주라고 주장하는 회견문을 가냘픈 목소리로 낭독해 내려갔으며 남편이 서울 구치소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뒷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씨는 "어느 한 곳에서도 제 남편인 김경준 씨가 사기혐의로 판결을 받았거나 주가조작을 범했다는 판결문이 없다"며 "판결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제 남편을 국제금융사기꾼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어긋날 뿐 만아니라 왜곡된 표현"이라고 남편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씨는 회견에서 김 씨와 이 후보가 만난 것이 2000년 1월이라는 이 후보의 주장과는 달리 1999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이 후보 주장의 신빙성 문제를 우회적으로 지적했으며 현장에서 사전에 설치한 TV모니터를 통해 DVD에 담긴 이진영 씨의 증언내용을 방영하며 BBK가 이 후보 소유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위조된 것이라는 이 후보의 주장을 반박했다.
0..이날 회견은 김 씨 가족이 '이면계약서' 원본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 씨가 밝히면서 관심도가 뚝 떨어졌다. 일부 기자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한 채 김 씨 가족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 씨는 "오늘 새벽 뉴스를 보고 그(이면계약서 원본을 공개하려던) 입장을 바꾸게 됐다"면서 그 이유로 원본을 먼저 공개하면 이 후보가 친필을 위장하기 위해 변조된 사인을 하거나 아예 다른 사람을 시켜 사인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에 이 씨는 이 후보의 친필사인이 돼 있다고 주장하는 이면 계약서의 사본을 꺼내들고 잠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지만 "기자들에게 배부는 하지 않겠다"며 다시 집어 넣었다.
그러자 회견장 여기 저기에선 "이럴려면 회견은 왜 한 거냐" 등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이 씨는 이 후보에 대해 역공에 나서기도 했다.
이 씨는 한나라당이 원본이라고 주장하며 보유하고 있는 이면계약서에 대해서도 진위여부를 확인할 것을 요구했던 것.
또 이 씨는 한국 검찰에 이면계약서를 제출하는 것과 별도로 미국의 감정기관에서 이면계약서의 진의성을 확인하는 검증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국 검찰에 공정한 수사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 씨는 이어 김 씨 가족들이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굳은 각오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이 씨는 "검찰이 수사감정을 요청할 적에 이 후보는 진실되게 본인의 친필사인을 검찰에 속히 전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검찰의) 조사진실이 왜곡되거나 다른 쪽으로 이용될 때에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견문을 낭독한 뒤 이 씨는 기자들의 쇄도하는 질문에 일언반구도 없이 신속히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