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부동산 대책 '22타수 무안타'…문제는 '불통'
9년 전, 세계적인 조각가 데니스 오펜하임이 부산 해운대에 미술작품을 설치했습니다. 작품명 '꽃의 내부'.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공모를 통해 조성한 작품으로, 설치 기간 석 달에 제작비도 8억 원이나 들었습니다. 오펜하임이 2011년 초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해당 작품은 '유작'으로 남겨졌습니다. 오펜하임 유족도 해운대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작품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8년, 해운대구청은 이 예술작품을 고철과 폐기물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녹 쓸고 태풍에 훼손됐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구청은 작품 저작권을 가진 유족에게철거한 사실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똑같은 물건을 누군가는 세계적 예술작품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고작 몇 만 원짜리 고철로 판단하는 '기묘한 상황'이 빚어진 것입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 '복종' vs '오만' 국토교통부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최근까지 이어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보고 있으면 저는 이 '해운대 예술품 철거' 사건(?)이 떠오릅니다. '집값'이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이 어쩌면 이렇게도 제각각일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현 정부에게 '집값'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한 마디로 '견제', 두 마디로 '극복', 세 마디로 '정복'의 대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복을 넘어 '복종'까지 이끌어 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투기 억제와 집값 안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개원연설도 이 같은 의지를 뒷받침합니다. 반면 시장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기본마저 무시한 오만함'이라고 반발합니다.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에 바탕을 두고 시장을 이기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다. 특히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지금 같은 경우라면, 대부분이 아닌 '백 퍼센트'로 그 확률은 올라간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란 하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규제의 대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규제로부터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제각각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 '22타수 무안타'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현상이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닙니다. 세상살이 자체가 원래 이런 '불화(不和)의 연속' 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불화'를 어떻게 지혜롭고 현명하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 정부는 실패했습니다. 오해 여지없이, 깔끔하게 실패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려 송구스럽다'라는 정세균 국무총리, '집값이 올라 젊은 세대와 시장의 많은 분이 걱정하는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라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부동산 시장이 매우 불안정해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송구하다'라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 여기에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진선미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조응천 민주당 국회 국토위 간사 등도 이른바 '사과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그만큼 '실패의 색'은 짙고 또 어둡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실패의 수준'이 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지난 3년 새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6억 600만 원에서 9억 2,000만 원으로 3억 1,400만 원이나 뛰었습니다. 상승률 52%! 경이로운 기록입니다. 물론 세계 금융위기 등 여러 외부변수 등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럼에도 -3%를 기록한 이명박, +29%를 기록한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하면 적어도 부동산 정책만큼은 '실패했다'라는 결론에 큰 이견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같은 기간 늘어난 불로소득을 보면 더 말문이 막힙니다. 493조 원으로, 155조 원 늘어난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마이너스 35조 원을 기록한 이명박 정부와는 비교조차 어렵습니다. 덕분에, 주택정책을 이끌어가는 수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2타수 무안타' 라는 조롱까지 받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실패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대체 왜 실패했을까요? 그것도 이렇게 처참하게 말입니다. ● 불통, 불통, 그리고 불통 이에 대해서는 백과사전을 쓸 정도의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국토교통부를 출입하며 느낀 점을 한 단어로 꼽아보자면 그것은 바로 '불통(不通)' 이었습니다. 1. '모두 깜짝 놀랐제?!'…<시장과의 불통> 1993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육군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습니다. 취임 보름도 안 돼 하나회 출신의 군부 실세를 떨어뜨린 것입니다. 경질 직후 김 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에게 역사에 남을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모두 깜짝 놀랐제?!' 잇따르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를 보고 있자면, '모두 깜짝 놀랐제?!' 이 말이 자주 떠오릅니다. 네, 맞습니다. 전 국민 모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집값이 일정 금액 이상이면 아예 대출을 금지하고(혹은 대폭 제한하고), 집을 갖고 있거나 팔 때 내야 하는 세금도 크게 올리며, 더 나아가 특정지역에선 주택거래 자체를 일부 제한하는 것은 분명히 기존의 격을 깨는 ' 파격 '입니다. 정책을 이끌어가는 도구로서 대출, 세금, 매매 제한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파격의 수준이 높고 큰 만큼, 뒤따르는 혼돈과 부작용도 넓고 깊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규제지역 주변 집값이 최고가를 경신하며 폭등하는 '풍선효과', '역풍선효과'는 돌림노래처럼 반복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을 규제하니 강북이 오르고, 강북까지 규제하니 이른바 '수·용·성(수원·용인·성남)'으로 대표되는 서울 인근 지역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수·용·성'을 다시 막으니, 수도권 전체 더 나아가 충청지역까지 '풍선효과'가 번졌습니다. 화들짝 놀라 부랴부랴 경기 남부에 인천까지 규제하니, '어라?' 유동자금이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는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세금 부담을 늘렸으며, 매매를 제한하고, 주거기간을 의무화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정작 잡은 건, 그토록 잡고 싶던 '집값'이 아니라 애꿎은 '서민들'이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막혀버린 대출에 내 집 마련 꿈을 키우던 무주택자 서민들은 길거리로 나와 울부짖었습니다. 사실상 '실종 상태'가 된 전세물건에 서민들은 발만 동동 구릅니다. 2030세대는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의 꿈'은 물 건너갔다.'라며 하늘만 바라봅니다. 이쯤 되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습니다. '삼류 코미디' 같은 현상은, 궁극적으로 '시장과의 소통 부족'으로 귀결합니다. 시장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동산 시장의 참여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구성돼 있고, 또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더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내 머리에서 나온 이른바 '뇌피셜 대책'이 아니라 시장과 소통한 뒤 나온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소통보다는 '독단적인 파격'을 택했습니다. '모 아니면 도' 방식의 결정으로 시장을 '압박'한 것입니다. 물론 때론 이런 방식이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마치 야구경기에서 감독이 치고 달리기 즉 '히트 앤드 런' 작전을 냈는데 이것이 적중하면 순식간에 폭발적인 결과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히트 앤드 런' 작전이 실패한다면? 네, 맞습니다. 주자와 타자가 모두 죽는 '병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감독은 작전을 내기 전에 '소통'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경기 흐름은 물론 선수들이 작전을 제대로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부상은 없는지, 이기고...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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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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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