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내표남피' - 임은정과 기획사정 의혹 수사팀의 차이
...보이는 사례가 아니라, 피의사실 공표의 정황이 의심되는 언론 보도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박 장관이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4월 6일 아침에 [동아일보]에 보도된 '[단독]檢 '김학의-버닝썬-장자연 사건 靑보고과정' 조사'라는 기사가 문제가 됐습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2019년 김학의 사건에 대한 재조사했던 검사가 관련자를 면담해 작성한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뒤, 보고서에 있는 허위내용을 언론에 알려 사건을 이슈화하려고 시도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기획사정 의혹입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이날 기획사정 의혹 수사팀이 2019년 당시 재조사되고 있던 김학의 사건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한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법무부, 행정안전부, 경찰청에 요청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박범계 장관이 이 보도와 관련해 피의사실 공표(유출) 정황이 있다며 문제 삼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검찰이 법무부와 행안부, 경찰청 등에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검찰 수사팀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에 수사팀의 누군가가 기자에게 피의사실을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사 내용 중에 '검찰은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왜곡된 것으로 보고, 누가 이 과정에 개입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상당 부분이 왜곡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검찰 판단이 기사에 반영된 것 역시 피의사실이 유출되었다는 정황 아니냐는 것입니다. 해당 보도의 취재원이 누구인지 제3자 입장에서 단정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박범계 장관이 의심하는 대로 검찰 관계자를 상대로 취재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자가 검찰 관계자를 취재한 내용에 바탕을 두고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보도하는 것 자체는 정당한 일이기도 합니다. 반면 기사의 내용만 놓고 보면,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검찰 측이 아니라 자료 제출 요청을 받은 법무부나 행안부 또는 경찰청 관계자를 상대로도 취재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왜곡된 것으로 검찰이 보고 있다.'라는 대목은 검찰의 입장을 보도한 것이긴 하지만, 취재원을 밝히지 않아서 검찰의 자료 제출 요구 사실에 바탕을 둔 기자의 추정인지 아니면 검찰 관계자로부터 직접 입장을 취재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보도는 피의사실 공표 정황을 의심해볼 수 있는 자료일지는 몰라도, 임은정 검사의 페이스북 글처럼 피의사실 공표 금지 규정 위반의 명확한 근거로 보이는 자료는 아닌 것입니다. 한명숙 모해 위증 의혹에 대한 '흘리기'는 없었나? 일각에서는 설사 피의사실 공표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임은정 검사의 행위는 공개적으로 한 것이고, 김학의 관련 보도는 특정 언론에 검찰 수사팀이 은밀하게 '흘리기'한 정황이 의심되는 상황이니 진상조사의 필요성이 더욱 큰 것 아니냐는 주장도 합니다. 공개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이는 행위고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흘리기'한 정황이 있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은 행위라는 점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해봅시다. 하지만 문제는 임은정 검사가 관여했던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의 경우에도 기획사정 의혹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이상으로 피의사실 '흘리기' 정황이 의심되는 보도들도 있었지만 법무부가 한 번도 문제를 삼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임은정 검사가 한명숙 모해위증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2월 24일에 [경향신문]은 ''한명숙 뇌물 사건'…임은정 손에 운명 바뀔까'라는 기사를 보도합니다. 이 기사에는 임은정 검사에게 수사권이 생긴 후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가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김씨를 기소할 만큼 수사는 성숙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사건 담당인 대검 감찰3과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국면을 거치며 크게 위축된 것으로 아는데, 임 연구관에게 수사권한이 생기면서 돌파구가 생겼다. (한명숙 전 총리를 모해하기 위해 위증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씨 기소로 공소시효를 중단시켜 시간을 벌고 (김 씨에게 위증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검사들에 대해 보강조사를 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동아일보] 보도와 마찬가지로 [경향신문] 보도의 취재원이 임은정 검사를 비롯한 수사팀 관계자였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취재원인 '한 법조계 관계자'가 누구든 간에 수사팀의 사건 진행 상황은 물론 이후 임은정 검사 등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려고 하는지와 같은 수사 방향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임은정 검사 등은 이 보도 이후 실제로 해당 취재원이 말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가려고 시도했습니다.) 물론 [경향신문]이 관련 수사팀 관계자를 취재해 보도한 것이라고 해도 [경향신문] 기사 자체는 [동아일보] 기사와 마찬가지로 정당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제는 [동아일보] 보도와 관련해서는 피의사실 공표(유출)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에 진상확인을 해야 한다고 지지하면서도, [경향신문] 보도에 대해서는 법무부의 그 누구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내가 하거나 우리 편이 하면 표현의 자유지만, 남이 하거나 상대 편이 하면 피의사실 공표가 되는 셈이니 '내표남피'라고 불러야 할까요? '내표남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사의 피의사실 보도는 다릅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동아일보] 기사든 [경향신문] 기사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당한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조국 사태' 이후 급조된 악법(惡法)이라고 평가합니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공적인 존재 등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서도 정보 공개 자체를 사실상 어렵게 만들어서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알 권리를 위축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이 도입된 결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일반인에 대한 사건 정보는 과거와 큰 차이 없이 공개되는 반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민감하고 공적인 감시의 필요성이 훨씬 큰 사건의 경우에는 관련 정보 공개가 사실상 차단되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이 불편하게 느끼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피의사실 공표 관련 논의와 관련 규정을 개선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적이고 평등하게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 기준'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박범계 장관은 ''내로남불'식 기준 적용이라는 비판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면서, 설사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왜 가만히 있다가 지금 이러느냐는 식으로 말하면 개혁은 할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가 '일관성'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조치의 형평성과 일관성부터 회복하지 않으면 박 장관이 꿈꾸는 '니편 내편 가리지 않는 제도개선'을 이뤄질 수 없습니다. 이번 정부는 집권 초에 '적폐청산'을 할 때는 검찰의 직접수사와 특수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다가,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하기 시작한 이후 검찰 직접수사의 문제점을 집중 비판하며 '직접수사 축소'를 검찰개혁 핵심 과제로 추진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현 정부 검찰개혁 정책의 최대 문제점으로 꼽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면 표현의 자유지만 남이 하면 피의사실 공표라는 '내표남피'의 자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임은정 검사가 하면 표현의 자유고 기획사정 의혹 수사팀이 하면 피의사실 공표라는 식이라면, 권력을 잡은 진영이 바뀔 때마다 같은 논란이 반복되는 상황을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피의사실 공표 문제에 대한 일관성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임은정 검사의 페이스북 활동을 분석한 글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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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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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