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우리 학교 수업과 평가,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을까
...그러면 더 활용력이나 적용력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교사 입장에서는 수업이 더 힘들어진 거 아닌가요?) 아, 힘듭니다. 힘들다는 이야기 하면 안 되는데, 많이 힘듭니다. 정말 힘듭니다. 왜 힘드냐면 전에는 가르쳐야할 내용이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까', 이걸 많이 고민을 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내용에서 애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용, 방법, 나중에 적용까지 다 생각을 해야 되니, 더 힘들다고 해야 할까요. 많이 고민이에요.&' '유레카'의 순간을 위해…개념을 이해하고 답을 찾아가자 대구 포산중학교를 방문했을 땐, 문학 작품의 관점을 배우는 국어 수업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청자, 화자, 주제 같은 제시어를 놓고 모둠별로 다양한 주제문을 만들었는데, 수업이 끝날 때쯤 교사는 이들이 만든 주제문을 앞서 읽었던 문학 작품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제안했습니다. 학생들은 지난 3주간 읽었던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과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 나희덕의 시 '귀뚜라미'에 각자 만든 주제문을 적용해 작가와 독자의 관점에 대한 분석을 해냈고, 선생님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동백꽃은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제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 토속적·해학적이라고 밑줄 치면서 국어를 배웠던 저로서는 개념 이해로부터 출발해 답을 찾아가는 새로운 방식의 수업에 완전히 빠져들어 학생들이 마지막 해답을 찾아냈을 때는 '유레카!'라고 속으로 외쳤을 정도였습니다. 김연진 / 대구 포산중학교 교사 &'이 수업이 한 달 정도가 걸리는 수업이거든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어요. 처음 부분에서 아이들이 개념어, 이 낯선 단어들에 대해서 본인들이 직접 생활을 적용해서 연계를 시켜보고, '이 개념이 뭐지' 라는 것들을 관계도 맺어보고, 집중도 해보는 단계를 거쳤어요. 중간 부분에선 보통 학교에서 흔히 하는 '시의 주제가 뭘까' '표현법이 뭘까'라는 것들을 모두 다 거쳐갑니다. 다만 그 사실들을 학습한 걸 가지고 일반 학교에서 하지 않는 '결론맺기'를 하는 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분절적으로 작품을 보고나서 주제는 뭐다, 시 따로, 소설 따로이거든요. 그래서 국가교육과정의 성취 기준은 '말하는 이의 관점을 수용해서 작품을 판단하고 감상한다'는 건데, 그거를 연계시키지 못해요. 사실 20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예전엔) 저도 그렇게 안 했었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결론짓는 오늘의 과정이 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아이들이 귀납적으로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이고, 이 결론을 가지고 내가 배운 소설 '동백꽃'이, 혹은 내가 배운 '귀뚜라미' 시가, 앞으로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세상 밖에 나갔을 때 항상 말하는 이의 관점을 세우라는 원리를 가지고 세상을 사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단계가 가장 재미있고 가장 의미 있고 짜릿한 수업의 한 파트라고 생각해요.&' 오늘 이 시간의 '유레카'를 위해 지난 한 달 동안 과정을 쌓아왔다는 설명입니다. 우리나라도 2015 교육과정부터 학생 참여 수업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렇게 학생이 한 단계 한 단계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시간을 들이고, 또 해답을 찾도록 기다려주는 수업은 결코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김연진 / 대구 포산중학교 교사 &'전체 수업을 모두 이렇게 열린 탐구로 가져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그게 반드시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희가 열린 탐구를 할 때는 반드시 아이들에게 기반을 깔아줘야 됩니다. 근데 그 기반 없이 무조건 열린 탐구를 한다는 건 내 생각만 말하고 내 감상을 얘기하는 건 수업이 아니에요. 그래서 열린 탐구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밑작업을 정말 많이 해야 됩니다. 보통 IB에 대한 오해는, 그런 밑작업이 없다고 생각하시죠. 그렇게 되면 수업이 불가능합니다.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돌아가는 길이 더 효과적인가요?) 물론입니다. 왜냐면 직진해서 결론이 보일 때 아이들은 생각하지 않아요. 그 결론이 바로 주어지면 내 것이 아니거든요. 근데 돌아 돌아가는 그 길을 통해서는 본인이 스스로 간단 말이죠. 내가 가는 길이에요. 내가 가는 길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을 저기까지 스스로 가봤어'가 중요한 거예요. 아까 마지막에 대답했던 친구 있잖아요. 번쩍 손 들고 '그 시점을 여기 넣으세요' 했던 친구요. 일반적인 전통식 수업을 할 때는 굉장히 오래 앉아 있기 좀 힘들어하는 친구예요. 그런데, 이 친구가 굉장히 관찰력이 있어요, 예리해요. 그래서 본인이 '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라고 번쩍 손을 들잖아요. 이런 부분이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보람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어요. 특별히 예쁜 자세를 보여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걸 해내는데 너무 감사했습니다.&' 수업과 평가의 일치…논술·구술평가 절반 이상 수업 방식은 그대로 평가로 이어집니다. 객관식 문제와 간단한 서술형 문제가 출제되는 중간.기말고사가 있고, 논술/구술형으로 진행되는 수행평가 (IB에선 총괄평가라고 부릅니다)도 있습니다. 지금까진 50:50으로 책정하고 있지만, 앞으로 학생과 교사의 적응도가 높아지면 논술/구술형 평가 비중을 60%로 더 높일 계획입니다. 김연진 / 대구 포산중학교 교사 &'애들이 써놓은 결과물만을 보시면 '중학교 2학년이 이렇게 긴 글을 쓴다고? 너무 어려운 거 아니야? 애들이 이거 못하지' 라고 생각하세요. 중간 단계를 못 보셨기 때문에 그래요. 이런 평가를 가져가기까지 평가를 배우게 하는, 역량을 길러주는 '형성평가' 단계가 있어요. 형성평가는 보통 수업하고 나면 끝날 때 '애들아 이거 답 뭐지 1, 2, 3 중에 골라봐' 해서 한두 문제 주는 게 형성평가였던 적이 있었죠. 근데, 우리 형성평가는 총괄평가에 나오는 문항 패턴을 연습시키는 거예요. 오늘 보셨던 이 진술문을 가지고 아이들이 배운 작품을 가지고 근거를 찾게 하는 과정을 훈련시켜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기회를 가집니다. 이 기회를 가지고 제가 '이런 부분을 이런 방향으로 수정해봐야 되지 않겠니?' 라는 피드백을 줍니다. 모든 아이가 자신의 수준에 맞는 피드백을 받고 거기서 한 단계로 올라가는 거예요. 아이들이 혼자 외롭게 두지 않아요. 저희가 함께 가기 때문에, (다른) 학생만 함께 가는 게 아니라 저희도 아이들과 함께 갑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저는 한 번 맛본 사람이라서 이걸 놓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힘은 들지만, 그게 너무 보람이 있고 즐거운 거죠.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수능 시험에도 논술/서술형 문제 출제할 수 있을까 수업에서도, 평가에서도 학생들이 단순히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라고 던져지는 게 아니며, 학습과 평가를 위한 체계적인 틀이 잡혀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논술/구술형 평가는 교사 (또는 채점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작용해 공정하지 못하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대입 수능 시험에 논술/서술형 문제를 포함시켜야한다는 강력한 요구에도 지금껏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학생과 교사가 IB 교육처럼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거친다면 우리도 대입 시험에 논술/서술형 문제 출제를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B 프로그램, 사교육 열풍 부추길까? 그렇다면, 이런 수업과 평가 방식에서 사교육은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대입 논술 시험도 속성 과외로 준비가 가능한데, IB 수업도 학원이나 과외를 받으면 최고 성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IB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은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들 학교가 대구의 8학군이라는 수성구처럼 뜨거운 교육열로 유명한 지역에 위치하지 않아 학생들이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겠지만, 영어나 수학 외에는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대답이 많았습니다. 박주연 / 대구 영선초등학교 6학년 &'영어 학원은 가는데 수학 학원은 안 가요. (수학도 탐구하는 형태로 배워서 그런가요?) 수학도 혼자서 푸는 게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랑 대화해가면서 내가 부족한 거나 모르는 거를 공유하고 알려주면서 하면 내가 조금 더 얻는 게 많고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학원의 필요성을 느끼진 않나요?) 제가 모르는 게 있더라도 모든 친구들이나 저희 반 친구들한테 서로 자기가 얻은 것을 공유해가면서 하면 내가 한 것보다 1.5배 정도는 더 많이 얻게 되니까 뭔가 그...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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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