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멘터리] "서울의 봄"은 이렇게 편집됐다
...통화인가,영화인가?'라고 할만큼 많은 통화씬과 대화씬으로 가득찬, 어찌보면 정적인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김성수 감독이 굉장히 많이 찍어 놨죠. 하지만 저는 (편집 감독으로서) 시간적인 제약이 있지 않습니까? (그림을 편집해서) 버릴 때마다 김 감독과 제가 뼈를 깎을 정도로 아까워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제일 중요했던 것은 '이 사이즈감(샷의 크기)이 관객한테 무엇을 줄 것이냐'와 '이 길이감(컷의 지속 길이)에서 관객들을 얼마만큼 집중시킬 수 있느냐'였습니다. 이걸 놓고 김성수 감독과 예를 들어서 바둑에서 상대 심리를 탐색하듯이 작업을 했죠…. 불과 몇 시간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에 관객을 동참시키자. 그런 생각으로 편집을 했습니다.&' 전두광과 이태신이 처음이자 사실상 마지막으로 얼굴을 맞대는 복도씬을 굉장히 흥미롭고 긴장감있게 봤다 하나회 떼거리가 전두광을 보좌하면서 오고 이태신은 혼자 모든 걸 대면하듯이 오는 이미지가 영화 마지막 부분과 연관이 돼서 내가 참 좋아하는 씬 중 하나다. 그런데 정상호 총장은 바로 앞 씬에서 전두광에게 '인사는 내가 한다'고 하고, 뒤 씬은 정총장이 이태신을 공관으로 불러 수경사령관 임무를 맡기는 씬이기 때문에 복도 씬이 없어도 드라마 흐름은 좋다. 그렇지만 하나회 집단과 이태신이 대립하는 부분이 가장 명확하게 보여지는, 서로 피할 수 없는 공간에서 찍은 복도 씬이 들어감으로써 앞뒤 씬의 연결감이 굉장히 좋아진다. 교차 편집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육참총장공관-국무총리 집무실-30경비단-연희동 전두광 사택-육군본부 벙커-수경사령부 등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을 긴박하게 돌린다. 교차 편집하면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그 작업할 때 굉장히 어려웠다.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쉬운데 처음 본 관객은 같은 군복, 같은 아군이라 처음에 (누가 이쪽 편이고 누가 저쪽 편인지) 직관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보안사 군인들은 정총장을 연행하러 가고, 전두광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찾아가고, 이태신은 연희동으로 가고, 그 시간으로 찍은 분량이 굉장히 길다. 처음 편집했을 땐 '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나가지? 와, 끔찍하게 길구나.' 생각했다. 전두광이 대통령실에서 나와 도망치는데까지 굉장히 큰 시퀀스인데 영화 속에서 이 시퀀스가 차지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한정적이고, 한정적이라는 건 아차 잘못 편집하면 관객이 구분을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제일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 부분이다. 예를 들어 총장 공관에서 정총장을 연행하러 온 보안사 군인 2명은 응접실에 앉아 있고 다른 2명은 또 저쪽에 앉아있고 이런 것까지 다 신경을 쓰면서 시간 배분을 해야 했다. 소위 '데모찌(들고 찍기를 가리키는 업계 은어)의 영화'라고 느낀 대목이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정적이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총장과 이태신의 공관 마당 대화씬에서도 카메라는 계속 움직인다. 심지어 부감샷에서도. 사실 그 부분 촬영본에서 픽스샷이 있는지 찾아봤다. 한번 붙여 보고 픽스샷에서 오는 느낌과 비교를 해보고 싶었다. 특히 이태신과 정총장이 있을 때는 좀 안정적이면 어떤가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원본에 픽스샷이 아예 없었다. 심리적으로 볼 때 정총장 같은 경우는 그 자리가 그렇게 안정적인 자리가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적당한 정도의 움직임이 있는 샷들을 찾아서 붙였다. 대화나 통화 장면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데, 12.12. 군사 쿠테타 9시간을 그린 영화에 대해 기대치가 높은 상황에서 편집에 대한 고민이 컸겠다 농담으로 그랬다. 12.12. 군인들 나오는데 '야, 우리는 뭐 전쟁 영화가 말로만 다 싸우네'(웃음) 편집을 할 때 사실은 '내가 해내겠다'고 하기보다 상대방을 믿는다. 황정민 배우와 정우성 배우, 그들이 어느 정도 이 역할을 소화하느냐가 중요했다. 김성수 감독은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촬영 초반에 김성수 감독과 통화를 많이 했다. 나는 &'촬영본 보니 느낌이 좋으니까 황정민 씨한테 너무 잘한다고 좀 알려줘&', &'정우성 씨도 잘하고 있어&' 그렇게 현장과 소통을 했다. 노태건이 전두광 집에 왔을 때 전두광이 방석을 던져주고 노태건이 앉으면서 '야 우리 여기까지 왔으면 많이 왔어. 너 가서 정총장한테 잘못했다고 빌어라' 할 때 전두광이 씩 웃는데 그 눈빛과 마지막 미소까지 전체 영화(에서의 편집점들)보다 약간 시간을 더 줬다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관객이 받아볼 때는 더 준 길이가 아니다. 김성수 감독이 배우한테 캐릭터에 대해 요구한 부분이 있고 배우들이 그걸 잘 소화했다. 그런 걸 믿고 편집을 하는 거다. 정총장이 이태신에게 &'지금 수경사령관 거절하시는 겁니까?&'하자마자 바로 컷해 이태신이 집에서 아내와 밥먹는 씬으로 넘어가고, 정총장과 대화를 해보면 어떻냐는 부하의 말에 전두광이 &'그 답답한 양반하고 무슨 말을 해&'하자마자 정총장과 전두광이 마주 앉은 씬으로 바로 컷하는 등 점프 컷으로 사건을 빠르고 압축적으로 전개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영화에 리듬을 만들고 관객들의 주의도 환기시킨다 (미소지으며) 내가 못된 버릇이 하나 있다. 관객은 물론 대단하다. 그런데 시간을 내고 표를 사서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편안하고 느긋하게 보면,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뭔가 순간순간 깜짝깜짝 (놀라면서) 화면에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약간 좀 거칠게 느끼더라도 '이게 뭐지, 왜 이렇게 되지?' 이러면서 보게끔 하고 싶은 게 내 편집 스타일이다. 어느 영화든지 시나리오를 50번 이상 읽는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시퀀스가 어떻게 나눠지는지 분석을 한다. 시나리오에서 시퀀스가 나눠진 부분이 과연 옳은가? 왜냐하면 관객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고 싶어하고 감정적인 부분에 몰입하기 때문에 큰 작업 들어가기 전에 시퀀스를 미리 정리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작업할 때 '아, 여기보다 시퀀스를 한번 더 가볼까'하거나 오히려 어쩔 때는 '관객이 뭘 기대하는데 살짝 기대치를 죽여볼까'하면서 계속 고민하고 찾는다. &'서울의 봄&'은 전부 컷 편집인데 딱 한 컷만 디졸브를 썼더라. 전두광이 &'이 문 닫히면 전두광이랑 끝까지 가는 겁니다&'하며 반란군 무리를 압박하는 씬인데 한영구 중장(안내상) 컷을 디졸브로 넘겼다 요즘 기법에서는 디졸브를 잘 안쓴다. 문학, 음악, 연극 등은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달라지는데, 이제 100년 조금 더 된 영화 역사에서 옛날 거 그런 거 없다. 고작 몇 십년 전에 쓰던 게 왜 옛날 건가? 그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쓰는냐의 문제다. 반란군 무리가 고민하는 모습을 한영구의 디졸브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걸 뭐 이 사람 저 사람 얼굴 컷으로 나열한다고 고민이 잘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심리적인 흐름을 디졸브로 보여준 거다. 그 부분은 김성수 감독도 &'형님, 우리 이런 거 안 썼잖아요&'했는데 내가 &'이게 효과적일 것 같아&' 그 말 한마디로 서로 이견없이 프레임도 안 만지고 갔다. 김성수 감독도 그런 부분에 효과가 있다는 걸 아는 거다. 화면 분할 장면도 적잖이 썼다. 어떻게 보면 만화적인 편집인데 실화 바탕의 진중한 영화에서 영화가 가볍게 느껴질 우려도 있다 노태건이 &'이러면 우리 다 죽는다. 혈연,지연,학연 다 동원해서 막아!&'하는 장면은 컷으로 나누면 더 번잡할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전화하는 모습, 그 표정을 일일이 볼 것도 아니고. 얘네들이 그때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화면분할 장면도 컷,컷,컷해서 짧게 들어가면 출동하고 철군하는 모습과 지휘관의 고뇌의 느낌을 동시에 살리기 쉽지 않은데 화면 분할로는 할 수 있었다. 자막도 많이 썼다 대개 영화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약간 노이로제가 있냐 하면,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것과 자막으로 설명하는 거, 그건 가능한 피하려고 한다. 이번에도 우리가 자막을 어느 정도 쓸 것이냐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첫 작업을 할 때 생각은, '가능한 자막은 최소화하자.' 그런데 우리도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냉정하게 봐야한다. 젊은 세대, 또 (군에 익숙치 않은) 여성 분들을 감안했을 때 과연 이해도가 어떻게 될까… 이 영화는 좋은 놈과 나쁜 놈과 우유부단한 놈, 이 세 집단의 얘기다. 쿠테타를 일으킨 집단과 이걸 혼자...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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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 |
생활 ·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