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유령 블로그에 악마의 편집까지…이것이 과연 하버드 논문인가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를 위안소 운영자와 매춘 계약을 맺어 실제 돈도 많이 받고 저축도 상당히 하며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처럼 논문에 묘사해놨습니다. 이 부분의 출처는 (KIH, 2016b)로 표현돼 있습니다. 하지만 논문 검증단이 이걸 따라가 보니 이건 정식 출판물도 아니고 그냥 국내 인터넷 블로그에 떠 있는 영어 번역문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실제 링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이 블로그는 어느 극우 성향 인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여러 글을 모아놓은 국내 유령 사이트에 불과했습니다. Korea Institute of History(한국역사협회)라는 제목이 있는데 소개 페이지에는 관리자 사진도 없고, 이메일이 달랑 하나 걸려 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 이메일에 실제 관리자가 있는지 질문을 보내 놨지만, 아직 답이 없습니다. 2016년에 39개의 글을 올린 뒤 활동 없이 버려진 이른바 '흉가 블로그'였습니다. 게시물들은 외부 링크를 많이 걸어놨는데, '일베'로 널리 알려진 극우 성향의 일간 베스트 사이트는 물론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게시판으로 연결되는 게 상당수였습니다. 내용은 하나같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체를 부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뉴스가 나간 뒤 인터넷 댓글 중에 '망한 조별 과제도 블로그를 출처로 하지는 않는다'는 시청자 의견도 있었지만, 하버드 교수가 자신의 논문을 이런 식으로 쓴 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램지어 교수는 이 유령 블로그 글마저 악마의 편집을 했습니다. 유령 블로그에도 '나는 양곤에서 전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기는 했다. 물론 완전히 자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한국인 위안소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었다'고 표현돼 있었습니다. 자신이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라는 걸 유령 블로그도 표현을 해놨던 건데, 램지어 교수는 이 문장을 빼버리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부터 논문에 넣었습니다. '나는 인력거를 타고 쇼핑가는 게 재미있었다. 나는 양곤 시장에서 쇼핑하는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고 시작됩니다. 신체적인 억압 상태라는 걸 쏙 빼버리고 돈 벌어서 미얀마 양곤을 누비며 대놓고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니는 직업 매춘 여성처럼 보이게 하려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을 한 것입니다. 램지어 교수는 문옥주 할머니를 표현하면서 자신의 논문에 '은행 계좌가 있던 한국 위안부 가운데 문옥주가 가장 거침없이 현란하게 저축을 한 것으로 보였다'고 표현해놨습니다. 풍족한 생활을 영위한 사람이라는 약간의 비아냥거림까지 느껴지는 이 표현은 보는 것도 거슬립니다. 그것도 위안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악마의 편집까지 해가며 학자가 이런 표현을 논문에 써놨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만약 방송 기자가 전쟁 피해자를 인터뷰해 맥락을 이런 식으로 앞뒤를 자르고 방송에 낸다면 더 이상 기자직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로벌 학자들은 문옥주 할머니를 실제 인터뷰했던 모리카와 씨의 책을 일일이 뒤져서 전체 맥락이 무엇인지 서술해놨습니다. 보고서는 문 할머니가 1940년 만주의 위안소에 잡혀가 겪은 끔찍한 일부터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살 소녀가 대구에서 잡혀와 만주에서 처음 자신이 위안부가 됐으며, 하루 20,30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는 걸 알게 됐을 때 하루 종일 울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일본 헌병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곳을 탈출했지만, 1942년 문옥자 할머니는 해외에 있는 군 구내식당에 식모살이를 하러 가자는 꼬임에 넘어가 미얀마까지 가게 됐습니다. 출발하면서 항구에 집결했던 조선의 소녀들은 타이완, 사이공, 싱가포르, 양곤에 차례차례 내려야 했습니다. 문 할머니는 자신이 미얀마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곳에 가게 됐다고 합니다. (일전 인터뷰에서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런 어린 소녀들의 해외 이동은 일본 정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군인 가운데 한국말하는 사람들이 와서 '너 속아서 여기 왔다. 너 위안부로 가게 된 거야'라는 말을 듣고 진상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위안소 관리인들은 군인들을 상대하면 티켓을 받게 될 것이고, 그 티켓을 한국에 갈 때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 열심히 일하라고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노동의 대가라기보다는 그저 꼬드김에 불과했습니다. 학자들은 문 할머니가 매춘 계약을 맺고 돈을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나마 만주에서는 이런 티켓 따위도 받았다는 흔적이 없다고 담담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 할머니의 실제 회고록은 일련의 과정이 강압(force)과 사기(deception)를 가리키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령 블로그는 물론 램지어 교수조차 논문에 문 할머니가 팁으로 돈을 많이 모았다고 써놨습니다. (I saved a considerable amount of money from tips). 위안소에서 주는 돈으로 모은 게 아니라 군인들이 개별적으로 주는 돈을 모았다는 의미입니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문 할머니는 지옥굴을 탈출하기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으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모노세키 우체국에 입금된 이 돈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의해 문 할머니가 더 이상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지급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그 돈을 한 푼도 손에 못 만져본 채 문 할머니는 지난 1996년 사망했습니다. 비극적인 전쟁의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모리카와 씨와 인터뷰를 통해 진상을 밝혔던 것인데,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자신의 공식에 맞추기 위해 피해자의 역사를 완전히 뒤틀어놨던 것입니다.(각 챕터별로 이런 왜곡 사례가 보고서에는 계속 나열돼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램지어의 논문은 학문적 사기라고 표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자들의 진상 보고서에도 이에 대한 분노가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집필자 여러 명과 접촉했는데, 모두 화상 인터뷰는 거절했습니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에이미 스탠리 교수가 대표로 서면 답변을 짧게 보내줬는데 '논문이 실리는 국제 법경제 리뷰가 우리 보고서를 참고해 논문을 철회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에게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한일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벌어진 '역사 왜곡 폭동'을 학자들의 방식으로 제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논문 초안 내리고 윤리위 가동…'엄격한 사실 확인 검토 진행' 위안부 피해자 왜곡 논문과 별도로 램지어 교수의 하버드 토론 자료집의 심각한 문제는 이미 보도로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사실 수위로만 보면 토론 자료는 '혐한 논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간토 대지진 한국인 학살을 왜곡한 <자경단: 일본 경찰, 조선일 학살과 사립 보안업체>라는 제목의 토론 자료의 경우 정식 학술지로 출간하기로 했던 케임브리지 출판부가 사전 공개 사이트(SSRN)에서 우선 내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스라엘 히브루 대학 로스쿨의 앨론 해럴 교수가 편집장이었는데, 왜 이렇게 한 건지 이메일을 보냈더니 현지 시간 자정이 훨씬 넘었는데도 답을 보내줬습니다. 메일을 보내면서 이 문제는 이스라엘이 겪은 홀로코스트를 왜곡한 것과 비슷하게 한국인들이 받아들인다고 좀 세게 말을 했는데, 해럴 교수가 많이 놀란 느낌이었습니다. 그 늦은 시간에 답을 주리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인터뷰는 안 하겠다면서도 서면으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출간 전 논문의 사실 확인을 위한 엄격한 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논문은 절대로 초안처럼 실리지는 않는다고 확인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케임브리지 출판부의 편집인에게도 이메일을 넘겨서 답을 달라고 스스로 요청했는데, 매트 갤라웨이 선임 편집인은 '윤리위를 가동해서 검토 중이다'는 답을 보내줬습니다. ● 위안부 피해 당사국 한국…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이번 사안이 미국에서 벌어진 게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관찰할 수 있고,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흥행 요건을 갖춘 인물이 일본 극우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논문에 쓰려다 전 세계 학계가 연합해 이를 좌절시킨 것은 큰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역사는 공방의...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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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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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2 |
국제